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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밤의 새벽별 Jun 15. 2021

회색도시의 가로수



회색도시의 가로수          



나는 기다려

바람이 간질이는 손길에 살랑살랑 웃음이 흘러나올 때에

너도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나는 기다려

햇살이 내 잎사귀 한올한올 환하게 단장해 줄 때에

반짝거리는 나를 네가 바라봐 주기를

  

나는 기다려

빗방울 악단이 찾아와 나를 방울방울 연주할 때에

너와 같이 합창할 수 있기를

     

나는 기다려

뜨거운 햇볕에, 무더운 열기에, 무거운 일상에 지치거든

내 그늘로 다가와 함께 쉬어주기를

     

나는 기다려

잠시 내 곁에 멈춰서서 나의 숨결을 가만히 느껴주기를

너를 기다리며 도시의 한숨을 들이키고 

너를 그리며 싱그럽게 미소를 내쉬는

이 수줍게 설레는 숨결을 

 

불현듯 찾아온 잔인한 톱날들이 

기다림을 비웃듯 나를 마구 잘라내던 그 날

고통에 울부짖으며 너를 부르고 또 불렀어...

       

나는.. 또 기다려...

내가 지쳐 소리 없이 울 때에

너도 같이 눈물 흘려주기를    

 

태양이 내어주는 한없는 사랑으로,

너를 그리는 가없는 사랑으로,

가까스로 생의 경계에 싹을 틔워보아.

네가 있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러 보려

    

도시의 분주한 소음에 묻혀버린 네 영혼의 울음소리와

삶에서 아스라이 멀어져만가는 네 미약한 심장소리가 

자꾸만 맴돌아 나는 못내 기다려


언제고 네가 맞잡을 수 있도록

누추해져 버린 손을 차마 내밀고서 







 나무 함부로 치지마라 :잘려나가는 도시의 나무들, 대안은 없을까 (한겨레21)


 팔다리·몸통까지 '싹둑'.. 가로수 죽이는 가지치기 (한국일보)


 “올바른 전정은 나무의 아름다움을 존중하고, 나무의 방어 체계를 존중하며, 나무의 품위를 존중한다. 그릇된 전정은 나무의 아름다움을 훼손하고, 나무의 방어 체계를 파괴하며, 나무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풍성해진 가로수가 점포 간판을 가린다고, 일조권을 침해한다고, 낙엽을 치우기 힘들다고, 냄새가 난다고, 벌레가 많다고, 쓰러지면 위험하다고, 이런저런 이유로 강한 가지치기가 일상화됐다."


 "지자체나 한전의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위탁업체 입장에선 이윤을 남기기 위해 최대한 빨리, 마구 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결국 탐욕과 무지가 만들어 낸 슬픈 결과.."


"가지치기는 나무의 생장을 돕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극단적인 가지치기는 나무의 골격을 훼손할 수 있고, 잘린 절단면의 상처가 썩어들어갈 경우 천공성 해충으로 인해 병원체에 쉽게 감염될 수 있다. 강전정으로 가지의 거의 전부가 제거된 '닭발 가로수'는, 사실상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자본논리의 잔인한 톱날에 강전정(과도한 가지치기)당한 가로수들을 보게 된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름답던 가지들이 마구 잘려나간 채 아프고 흉한 몰골이 되어있었다.

도시의 일상에서 작은 싱그러움과 여유를 전해주던 고마운 나무들이었는데.    

  

심약하고 어딘가 유별난 구석이 있는 데다, 그럴듯한 능력이나 배경도 없는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처 입고 마음 여기저기가 잘려 나가기 일쑤였다.    

  

길가에서 우리는 소리 없이 함께 울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채 바쁘게 지나친다. 자본의 채찍질에 생채기 난 이들이 함께 눈물 흘려줄 것만 같지만, 정작 그런 이들일수록 우리를 바라봐 줄 여유가 더 없는 것만 같다.

탐욕과 무지에 눈먼 인간들의 사회는 정신없이 돈을 좇아가지만 실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듯하다.     


아픔과 절망 속에서 생명력이 바래가는 나와 달리 

회색 도시의 가로수들은 안간힘을 써서 잘려 나간 자리에 싹을 틔우고 잎을 낸다.

흉한 몰골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그리 만든 자들의 마음이다.

나무들은 슬프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위태롭지만 경이롭게 삶으로 뻗어나간다.

그리고 나약한 나에게 손 내밀어 준다. 

    

이제 꽤 오랫동안, 가로수길을 지날 때면

더없이 화창하고 한없이 기분 좋은 날에도 내 마음 한켠은 슬픔으로 시릴 것이다.     

나무들의 해사한 미소 속을 거닐던 때가 그리워 눈 감으면, 마음속에 시린 하늘이 펼져진다.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손을 마주잡고 삶을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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