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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밤의 새벽별 Aug 14. 2021

못난 울보 아기오리

여린 가슴에 띄우는 편지 ... 다시 쓰는 안데르센 명작「미운 아기오리」


 아직 해 뜨기 전 이른 새벽, 작은 연못은 물안개의 품에 안겨 고요히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얀 솜털이 안개처럼 둘러싸인 둥지에 오리알들도 어미의 품에 따스히 잠들어 있습니다. 아침 해가 안개를 걷어내며 연못 식구들을 깨우면 어미 오리도 일어나 솜털로 알들을 꼼꼼히 덮어두고서 둥지를 나섭니다. 자신의 가슴에서 뽑아 둔 부드러운 솜털이 알들의 온기를 지켜주는 동안 어미 오리는 연못 물에 목욕을 하고 아침 식사도 합니다. 몸은 분주히 움직이지만, 마음은 온통 알들 생각뿐입니다. 재빨리 배를 채우고 둥지로 돌아가는데, 그토록 기다리던 아가들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아가들아, 깨어났구나! 세상에 어쩜!”

 둥지에는 아직 눈도 못 뜬 아기 오리 네 마리가 바둥거리고 있습니다. 한가운데 놓인 제일 작은 알 하나만이 아직 그대로입니다. 좀 더 품을까 부리로 두들겨줄까 어미가 잠시 고민하던 찰나, 몸집 큰 첫째의 발길질에 부딪혀 막내도 힘겹게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아침 햇살이 눈 부신 봄날에 태어난 아기 오리 다섯 형제는 어미의 보살핌을 받으며 하루하루 건강하게 커갑니다.

 몸집이 가장 큰 첫째는 힘도 제일 셉니다. 형제 중 누구도 첫째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둘째는 몸놀림이 빠르고 헤엄을 가장 잘 칩니다. 먹이도 제일 잘 잡아서 엄마 오리에게 칭찬받지만, 가끔 힘센 첫째에게 입에 문 걸 뺏기기도 합니다. 셋째는 외양이 아주 빼어나고 예쁩니다. 지나가던 거위들도 가끔씩 “어머, 저기 저 예쁜 아기 오리 봐봐!”하며 감탄하곤 합니다. 넷째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화내는 소리마저 아름다워서 넷째와는 여간해서 다툼도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노래도 퍽 잘해서 넷째가 노래하면 다른 연못 식구들도 다가와 감상하곤 합니다.

 “참 재간둥이 오리 가족이야!”

 “아이들이 하나같이 빼어나지!”

 “막내만 빼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우리 막내 아기 오리는 다섯 형제 중에서 가장 못났습니다. 생김새도 못났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습니다. 성격도 심약해서 툭하면 잘 울곤 했죠. 그래서 ‘못난이 울보’라고 불리며 놀림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화창한 오후, 아기 오리들이 엄마 오리를 올망졸망 따라다니며 연못에서 헤엄을 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첨벙 소리가 나며 물방울이 튑니다. 놀란 막내가 허둥지둥 엄마 등에 폴짝 올라가 엎드립니다. 첫째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합니다.

 “못난이 울보는 겁도 많지!”

 “울보 막내야, 놀라서 울면 더 못생겨질 텐데!” 둘째도 막내를 놀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형제들의 줄줄이 막내 놀리기가 시작되려는 찰나에 넷째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외칩니다.

 “우와! 저기 봐봐!”

 모두의 시선이 넷째의 부리가 가리키는 곳을 향합니다. 연못 중앙에 엄마 오리보다 조금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떠올라 있습니다.

 “바보 남생이 올라왔네!”

 두꺼비가 큰 소리로 말하자, 연못가에 서 있던 거위가 발로 돌멩이를 툭 차서 물에 던져 넣으며 말합니다.

 “옜다, 여기 네 알이야!”

 여기저기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놀려대는 말이 들립니다.

 “돌대가리 멍청이, 바보 남생이래요!”

 평소 형제들에게 자주 놀림을 받는 울보 아기 오리는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남생이 할멈이구나. 우리 연못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르신인데….” 엄마 오리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근데 왜 다들 바보라고 놀리는 거예요?” 셋째가 예쁜 얼굴을 갸웃거리며 묻습니다.

 “엄마가 어릴 때 할머니께 듣기로는, 남생이 할멈이 젊었을 적엔 성품도 참하고 등딱지가 아주 곱고 윤이 나서 인기가 많았다고 하더구나. 귀여운 아가들을 많이 낳아 행복한 엄마가 되는 게 아주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지. 남생이들은 짝짓기를 할 수 있을 만큼 크려면 우리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단다. 그 긴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드디어 알을 낳게 되자 종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뻐했지. 그런데 그 소중한 알들을 족제비들이 죄다 훔쳐 가고, 다음 해 두 번째 낳은 알들은 들쥐들이 날름 다 먹어 치워버렸지. 세 번째 낳은 알들은 꼭꼭 숨겨두고, 아주 열심히 감시하면서 돌봤어. 그런데 어느 날 냄새가 이상해서 살펴봤더니 알이 모두 깨져 있던 거야. 꼭꼭 숨겨둔다고 너무 깊은 곳에 묻어둔 탓일까 싶어 네 번째 알들은 얕은 곳에 낳아봤지만, 그것도 부화되기 전에 다 깨져버리고 말았지. 온 정성을 쏟으며 보살폈던 다섯 번째 알들도 깨졌을 때, 남생이 할멈은 깨닫게 되었어. 자신은 껍데기가 너무 얇아 부화되지 못할 알만 낳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결코 귀여운 아가를 가질 수도, 행복한 엄마가 될 수도 없다는 걸 말이야. 그동안 알을 잃을 때마다 느꼈던 상실감, 희망으로 꾹꾹 눌러뒀던 가슴 속 상처들이 마지막 절망과 함께 터져 나오면서 할멈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말았지. 한 해가 다 가도록 먹지도 않고 등딱지 안에서 웅크리고만 있었고,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한없이 슬퍼했다고 해. 처음에는 찾아와 위로해주던 이들도 있었지만, 하도 오래 그러고 있다 보니 무심함 속에 잊혀 갔어.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연못 바닥에서 둥글고 매끈한 돌 몇 개를 알처럼 품기 시작했다고 해.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않고, 오랜 마음고생으로 상할 대로 상한 몰골을 하고서 말이야. 가끔 숨 쉬러 물 위에 올라올 때 빼고는 종일 돌멩이 알을 품고 있는 게 10년도 넘었을 거야. 이제는 그 모습만 보고 바보 남생이라고 놀리는 게지.”

  울보 아기 오리는 남생이 할멈의 사연을 듣고 나니 마음이 짠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우는 모습을 보이면 또 못난이 울보라고 놀림을 받을 것 같아서 엄마 등에서 뛰어내려 혼자 멀리 헤엄쳐 나갔습니다. 가랑가랑 맺힌 눈물을 떨구고 나니 눈앞에 남생이 할멈이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이 보입니다. 울보 아기 오리는 고개를 물속에 집어넣어 봅니다. 심술궂은 메기들이 남생이 할멈이 물 위로 올라간 사이 바닥을 헤집어 놓아 돌멩이 알 서너 개가 반쯤 솟아 나와 있습니다. 남생이 할멈이 내려가 조심스럽게 돌멩이 알을 다시 묻고 천천히 그 위에 몸을 포갭니다. 울보 아기 오리는 아직 잠수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이내 고개를 물 밖에 빼내어 포르르 포르르 물기를 털어냅니다.  

 “이봐, 이 몸에 물이 몹시 튀고 있다구! 집중이 흐트러졌잖아! 개굴!”  

 고개를 돌려보니 연둣빛 개구리가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뒷다리가 없는 게 아직 올챙이 같기도 한데 꼬리는 거의 없어진 상태입니다. 보통 꼬리가 짧아지기 전에 뒷다리가 먼저 생기기 마련인데, 신기한 모습입니다. 아기 오리를 향해 한마디하고서는 다시 원래 하던 동작을 반복합니다. 앞다리를 한 쪽씩 차례로 뻗으며 수초를 툭툭 치고 있습니다.

 “미안해, 옆에 있는 줄 몰랐어. 근데, 뭘 하고 있는 거야?”

 “특별한 수련 중이지. 이 몸은 언젠가 전설적인 개구리 점프왕이 될 거거든. 그래서 보통 개구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련을 하고 있다구. 레프트! 라이트! 점프! 훅! 훅! 개굴!” 

 듣고 보니 사뭇 진지하게 수련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근처를 지나가던 두꺼비가 한마디 합니다. 

 “점프왕은 무슨! 꼬리가 다 없어져 가도록 뒷다리도 안 난 게. 너랑 같이 알에서 난 녀석들은 진작에 저 연못 밖까지 점프하고 다니는구만. 반푼이 반챙이같으니!” 

 두꺼비는 보란 듯이 네 다리로 점프해서 저 멀리 뛰어갑니다.

 “이 뭣도 모르는 못생긴 두꺼비 녀석아! 나중에 이 점프왕 개구리님이 네 녀석보다 훨씬 멀리 뛸 테니 두고 봐! 아주 그냥, 개굴! 개굴개굴!” 

 울보 아기 오리는 자신이 이런 상황에서 저런 말을 들었다면 몹시 속상해서 울고 말았을 텐데, 전혀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받아치는 이 개구리가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챙이와 개구리 사이 어딘가에 갇혀버린 이 친구의 사정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왠지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래, 미래의 점프왕! 네가 언젠가 저 두꺼비보다 더 멀리 멋지게 뛰게 될 거야!” 

 “흠흠, 당연하지! 이 몸의 뒷다리는 아주 비범하게 튼튼히 준비되고 있어서, 나오는 데 좀 오래 걸리고 있는 거라구. 거참, 아주 똑똑한 아기 오리일세! 흠, 그러니 특별히, 그대의 오리발이 이 점프왕의 비범한 뒷다리가 나올 자리를 영접할 기회를 주지.” 

 의기양양하게 뭔가 대단한 듯 말했지만, 개구리 뒷다리가 나올 자리를 아기 오리에게 마사지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울보 아기 오리는 어쩐지 이 개구리가 좋았고, 그래서 기꺼이 마사지를 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울보 아기 오리에게는, 좀 짓궂기는 해도 함께 노는 형제들도 있고 보살펴주는 엄마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점프왕을 꿈꾸는 개구리는 홀로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린 올챙이들과는 꼬리가 없어서, 다 큰 개구리들과는 뒷다리가 없어서 함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눈물 많은 울보 아기 오리의 눈시울이 또 붉어지기 시작합니다.  

 “왕이란 외로운 법이지. 그냥 왕도 아닌, 전설적인 개구리 점프왕이 되는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구. 아기 오리야, 너도 오늘 나와 함께했으니 그 위대한 전설에 한 부분으로 등장할 거야.”

 아직 점프왕은 못 되었으나 허세왕은 충분히 되고도 남은 이 개구리에게 맞장구쳐주며 놀다 보니, 어느새 눈물도 쏙 들어가고 시간도 금세 흘러갑니다. 엄마 오리가 부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내일 또 올게, 점프왕!” 

 “그래, 똑똑한 아기 오리야. 즐거웠어!” 

 둘은 친구가 되어 하루하루 우정을 쌓아갑니다. 연못 한가운데서 둘이 놀다 보면, 가끔씩 물 위로 올라오는 남생이 할멈을 보게 됩니다. 울보 아기 오리에게 들어 사정을 알게 된 개구리는, 바보 남생이라고 놀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더 놀리지 못하게 외칩니다. 

 “아니, 개굴! 누구보고 바보라는 거야! 남생이 할멈만큼 오래 살아보지도 못한 것들이!”

 울보 아기 오리는 남생이 할멈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눈가가 시큰해지기도 하고, 다가가 뭔가 해주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고 어려워집니다. 막상 남생이 할멈을 만나면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근처를 종종거리며 말없이 헤엄칠 뿐입니다. 물 밖에 나온 남생이 할멈이 다시 가라앉기 시작하면 고개를 물속에 넣고 할멈이 연못 바닥까지 내려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울보 아기 오리는 연못 위로 올라온 남생이 할멈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이 연못에서 제일 오래 사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알을 품고 있으시다고요. 음... 할멈의 알은 아주아주 특별해서 깨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어쩌면 위대한 전설의 존재가 될 아이들일지도 몰라요. 그런 알들을 품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닐 거예요. 그러니 먹이도 많이 드시고 잠도 잘 주무시고 건강하고 튼튼하셔야 해요!

 울보 아기 오리는 마지막 말을 아주 힘주어 말합니다. 남생이 할멈은 울보 아기 오리를 한참 말없이 쳐다보다가 천천히 눈을 끔뻑입니다. 울보 아기 오리는 할멈의 등딱지 한쪽에 고개를 살며시 부볐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딱딱한 등딱지 표면이 여기저기 긁히고 금이 가 있습니다. 남생이 할멈이 물속으로 들어가자 지켜보던 개구리가 한마디 합니다.

 “아기 오리야, 어째 이 미래의 점프왕님이 했던 말씀이랑 많이 비슷한 거 같다?”

 울보 아기 오리는 대답 없이 괜시리 “삐유 삐유”거리며 개구리의 뒷다리 나올 자리를 마사지해주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엄마 오리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인사를 하고 돌아갑니다. 그 후로 남생이 할멈은 연못 위로 올라올 때면 개구리와 울보 아기 오리를 지긋이 바라보다 눈을 몇 번 끔뻑이고 돌아가곤 합니다. 그 짧고 말 없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그들의 마음은 자신들도 모르게 조금씩 가까워져 갑니다.




 그동안 연못은 아웅다웅하면서도 각자의 아기자기한 삶이 조화롭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연못에 급작스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전부터 서서히 시작되던 것이 임계점을 지나 두드러진 모양새로 나타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턴가 비가 내리지 않고 날은 점점 더워졌습니다. 전에는 가끔 한두 마리 나타나던 여우, 족제비, 살쾡이 같은 야생동물들이 목이 말라 툭하면 연못을 찾아왔습니다. 목을 축이고 나면 먹잇감도 노리기 시작하니 아기 오리들은 전처럼 마음 편히 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연못 물이 줄어들어서 영역 다툼도 잦아졌습니다. 불안과 긴장으로 연못의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합니다.

 “얼른 비가 와야 할 텐데.” 엄마 오리가 걱정스럽게 말합니다.

 “요정들이 비구름을 잔뜩 불러와 주면 좋겠어요.” 구름 한 점 없이 뜨거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셋째 아기 오리가 얘기합니다.

 “그럼 우리 다 같이 비를 부르는 노래를 불러보자.” 목소리 고운 넷째가 선창을 하자 모두들 함께 따라부릅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비를 기다려 봅니다.  

   

 그러나 비는 계속 오지 않았습니다. 연못은 절반 가까이 줄었고 물은 탁한 녹색으로 변해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힘없이 둥둥 떠 오르며 죽어가는 물고기들이 생겨나고, 매와 독수리들이 몰려와 매섭게 날아다닙니다. 타는 듯한 비명과 아우성들이 잔인한 태양의 열기와 함께 연못을 짓누릅니다.

 “엄마, 너무 무서워요. 밥도 편하게 못 먹고 잠잘 때도 불안해요.” 늘 씩씩할 것만 같던 첫째 아기 오리가 말합니다.

 “연못물도 이제 시원하지 않아요. 목욕해도 깨끗해지지 않는 것 같고 가려워요.” 헤엄치기 좋아하는 둘째 아기 오리가 슬프게 말합니다.

 “아무래도 여기 말고 다른 곳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해야겠어. 거위들도 곧 떠난다고 하더구나.” 엄마 오리가 착잡한 심정으로 얘기합니다.

 “여기 말고 다른 연못이 있어요?”

 “글쎄 엄마도 잘 모른단다. 예전에 남쪽에서 왔다는 나그네새가 이곳에 다녀간 적이 있어서 다들 남쪽으로 가보려는 모양이야. 너희들 날개가 좀 더 자라야 제대로 날 수 있을 테니 먹이도 부지런히 먹고 매일 나는 연습도 하자꾸나.”

  울보 아기 오리는 지금의 연못이 너무 무섭고 살기 힘들지만, 정처 없이 떠나야만 하는 것도 두렵고 막막합니다. 개구리와 남생이 할멈을 못 본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포식자들이 잠잠해진 틈에 아기 오리들은 열심히 나는 연습을 합니다. 울보 아기 오리는 비행 연습을 하며 개구리가 있던 곳에 가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연못에 넣어 남생이 할멈이 있는 곳이라도 살펴보려 했지만, 물이 탁해서 도무지 보이질 않습니다. 가슴이 갑갑하고 눈가가 먹먹해집니다. 연못을 떠나기 전에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오리 가족이 연못을 떠나기 전날의 해는 유난히 길었고, 뜨거운 태양이 지고 난 후에도 숨 막힐 듯 더운 밤이 이어졌습니다. 아침에 눈을 뜬 엄마 오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날이 크기가 줄어갔지만 그래도 꽤 남아있던 연못물이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다 말라버린 것입니다. 충격과 참담함이 거세게 밀려들었지만, 엄마 오리는 아기 오리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얘들아, 너희 날개가 좀 더 자랐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떠날 수밖에 없구나. 출발하기 전에, 일단 각자 자기 자리에서 가볍게 날개를 움직여보자.”

 엄마 오리가 마지막으로 아기 오리들의 날갯짓을 꼼꼼히 살펴봅니다.

 “좋아. 이만하면 어느 정도는 갈 수 있겠어. 다들 엄마를 잘 따라와야 한다!”

 엄마 오리가 날아오르기 시작하자 이제 제법 자란 아기 오리들도 차례로 날갯짓을 시작합니다. 울보 아기 오리도 있는 힘을 다해 날개를 펄럭입니다. 하늘로 날아오르며 마지막으로 정든 연못을 내려다봅니다. 연못 한가운데가 눈에 들어온 순간, 울보 아기 오리는 날갯짓도 잊은 채 굳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대로 마른 진흙 바닥에 철푸덕 떨어졌습니다. 죽어가는 물고기들이 널려있는 바닥에 거북 등딱지 하나가 덩그러니 있습니다. 여기저기 갈라진 거북 등딱지 안에 남생이 할멈은 없고 매 깃털만 묻어 있습니다. 할멈이 품던 돌멩이 알들 사이에 개구리가 뒤집힌 채 쓰러져있습니다.

 “점… 점프왕… 점프왕…”

 울보 아기 오리가 불러보지만, 개구리는 대답도 움직임도 없습니다. 아기 오리가 마사지해주던 자리에는 뒷다리가 나올 것처럼 작은 돌기가 돋아나 있습니다. 말라버린 뱃가죽이 보일 듯 말 듯 미약하게 부풀었다 줄어듭니다. 차마 보기 힘들 만큼 애처롭습니다. 울보 아기 오리는 태어나 처음으로 가슴이 미어지고 깨질 듯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숨을 거둔 남생이 할멈과 숨이 끊어져 가는 개구리를 위해 아기 오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엄마와 형제들은 멀어져가지만, 울보 아기 오리는 도저히 날아갈 수 없습니다. 개구리와의 즐거웠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남생이 할멈의 말없이 그윽한 눈빛이 떠오릅니다. 그들의 애틋한 사연들이 떠오릅니다. 한때 맑고 아름다웠던 연못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립니다. 울보 아기 오리는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눈물이 개구리를 적시고, 돌멩이 알을 적시고, 소리 없는 죽음들을 적십니다. 그렇게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눈물을 흘리던 울보 아기 오리는 그 작은 존재가 지닌 모든 것을 쏟아내고 쓰러졌습니다.






 

 기나긴 가뭄과 전에 없던 뜨거운 날씨가 연못에 살던 동물들에게만 가혹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도 몹시 고통을 겪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여기저기 우물을 파보거나 새로운 물줄기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 중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저 멀리 하늘에서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고 그쪽으로 떠났습니다. 그들이 마침내 그곳에 도착한 순간, 모두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전설에 나오는 우아하고 신성한 새, 백조. 멀리서 보았던 그 새가 순백의 구름이 되어 비를 뿌리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영롱한 사파이어빛 푸른 호수가 있었습니다. 호수에는 둥근달을 닮은 초록 잎들과 눈부시게 희고 커다란 꽃송이들이 밤하늘에 별처럼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혼까지 맑게 해줄 듯한 그윽한 향기가 투명한 안개가 되어 감돌고 있었습니다. 경이로움이 모든 생각과 말을 비워낸 자리에 지극한 아름다움과 신비가 스며들며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파란 하늘에 뜬 단 한 점의 백조 구름. 오직 그 구름 아래서만 내리는 비가 온몸을 적시며 흐르고 사람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백조 구름은 점점 커지며 대지를 촉촉히 적셨습니다. 그렇게 한참 비를 뿌리다가 서서히 옅어지며 사라졌습니다. 비가 그치자 어디선가 들려오던 개구리 울음소리도 그쳤습니다. 호수 한가운데서 연둣빛 점이 높이 솟아올라 햇살에 반짝이다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호수 근처에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호수에 피는 꽃의 그윽한 향기는 아주 멀리까지 퍼져서 사람들이 이끌려오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이 꽃이 가장 오래된 요정 설화에 나오는 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맑은 영혼을 지닌 존재가 오랫동안 큰 슬픔을 품으면 생겨나는 이 꽃의 씨앗은 돌처럼 단단해서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잠들어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깊은 연민의 사랑에 닿으면 비로소 깨어나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데, 그 꽃에서 태어나는 요정은 향기가 닿는 모든 곳을 정화하고 치유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호수 마을은 세월이 흘러도 가뭄이나 물이 부족해서 곤란해지는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마음이 힘든 이가 이 호수를 찾아와 눈물을 흘릴 때면 어김없이 하늘에 백조 구름이 나타나 보슬비를 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비는 마음 깊이 스며들어 사람들의 가슴 또한 메마르는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호수 위로 순백의 백조 구름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잠시 멈춰 주변의 모든 생명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백조의 눈물은 결코 홀로 우는 눈물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글쓴이의 덧말


21세기 지구별에도 못난 울보 아기오리들이 있다면  

자신 안에 가장 연약한 곳에서 백조의 날개를 발견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부서짐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슬픔과 절망이 돌덩이가 되어버리기 전에

그 곁에 따뜻한 눈물을 만나 녹아내릴 수 있기를

이미 오래 굳은 돌덩이가 있다면 그 가슴에 백조의 보슬비가 깊이깊이 내리기를     


인간들의 잘못으로

비정상적인 삶과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하는 동물들이 없기를

하늘과 땅과 물의 맑은 아름다움이 파괴되지 않기를

순하고 귀여운 남생이들과 그들이 살 수 있는 깨끗한 터전이

우리 강산에 많아지기를   

  

나 홀로 뒤처지게 되더라도,

내 잘못이 아닌 것들로 내쳐짐과 비웃음을 당하더라도,

점프왕 개구리처럼 씩씩하게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그 굳셈을 응원하는 마음들을 만나게 되기를     


빼어난 외모, 강한 힘, 특출난 재능, 등수와 액수 같은 것만이 귀하게 대접받는 곳에서

그것들을 허겁지겁 쫓아가도록 자꾸만 부추겨질 때,

우리가 차분히 기억할 수 있기를

어쩌면 지금

부서지고 병드는 지구와

어딘가 병든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서 상처받은 마음들이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해 줄, 아니 그들의 아픔이 이미 자신의 아픔임을 아는

진심어린 연민의 사랑임을

그 귀한 연민의 사랑에서

지치지 않는 힘과 마르지 않는 지혜가 솟아 나와

치유와 정화의 꽃을 피워내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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