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독일 친구의 한국어 공부를 도와주러 갔다가 흥미로운 질문을 받았다. 가을학기에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가는데, 자기는 K-pop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도대체 이 친구는 K-pop을 싫어하면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을 왜 하게 됐을까?
2020년 한 해를 돌아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행했던 단어 중 하나는 "K-"였다고 생각한다. K-방역, K-드라마, K-뷰티 등 K-ㅇㅇ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다 보니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K-대학, K-명절 등 문자 그대로 모든 단어에 "K-"를 붙이는 자조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실 이렇게 한국에서 만들어진 모든 것에 K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시아권에서 음악과 드라마 등 한국의 대중문화가 유행할 때 우리는 K-pop이 아닌 한류라는 보다 넓은 의미의 단어를 사용했다. 실제로 해당 시기에 쓰인 논문들도 한국 대중문화의 유행을 "Hallyu"라고 명명했다. 즉, K-pop은 한국 대중음악의 소비 범위가 동아시아를 넘어 확대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거대한 이웃들에 다소 가려져왔던 한국이 각 분야에서 활약하며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조명받는 일이 많아졌다. 이 흐름을 적극 활용해 정부, 일반기업, 국민 모두 한국의 브랜딩을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다시 말해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아느냐고 물어볼 때 꼭 물어봐야 하는 "두유노클럽(Do you know club)"이나 애국심을 유발하는 마약이라는 뜻의 "국뽕" 같은 단어들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브랜딩 한 한국을 확인하기 위해 한동안 "당신이 몰랐던 한국의 위대함"이나 "외국인 반응" 유튜브 동영상들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는 문화를 만들고, 그것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 속에서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입증된 것을 한국의 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는 역시 K-pop이다. K-pop은 말 그대로 Korean popular music(한국 대중가요)의 줄임말이다. 한국 대중가요는 우리가 K-pop이라고 부르는 빠른 비트의 아이돌 중심 댄스 음악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인의 상당수는 노래방에서 발라드 음악을 부르는 것을 즐기며, 최근 5060 세대를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트로트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발라드와 트로트는 한국 대중가요임에도 K-pop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K-pop과 한국 대중가요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은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향유하는 대중문화와 세계에 알려진 한국 대중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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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우리가 보는 한국이 아니라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이다. 즉, 지금 한국은 가치 판단 기준을 세계의 시선에 두고 한국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K-"가 "국뽕", 즉 자문화 중심주의를 가져온다고 비판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K-"때문에 문화 사대주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스스로돌아볼 기회를 놓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모든 것을 "K-"라는 원산지 표기에 가둬버리면 우리는 머지않아 "모든 한국인은 K-pop을 좋아할 것이다"라고 생각한 내 친구와 같은 수많은 "K-편견"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