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같이 브런치를 먹던 독일 친구가 안절부절못하는 나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독일식 직설화법으로 걱정하고 불안해한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나는 현재 3개의 기말 텀페이퍼와 1개의 시험을 앞두고 있다. 매 순간 집중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불안감에 휩싸여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폭발한 모양이다. 친구의 말을 듣고 어제 하루는 아무 생각 없이 쉬었는데 덕분에 오늘은 정말 생산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오늘 다른 학교에서 공부하는 친한 친구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 친구는 워낙 커리어에 대한 확신과 잘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서 평소에도 쉬고 싶어도 잘 쉬지 못하겠다고 얘기해왔다. 하지만 온종일 공부만 붙잡고 있으니 인간관계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신체적인 휴식이 부족한 것이 고민이었다. 한 시간 가량의 대화 끝에 내가 내린 응급처방은 플래너에 그날 해야 할 일을 적고 임무를 모두 완수하면 강제적으로라도 로그오프 하자는 것이었다. 하루의 할 일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지금은 이 이상한 말이 이해가 되는 때이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 수업을 하다 보니 공과 사의 구분이 모호해진 경향이 있다. 학교 건물에 직접 왔다 갔다 한다면 강의를 마친 후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그룹 모임까지 모두 끝낸 다음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 마음 놓고 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이 없다 보니 일과 공부가 매일의 삶에서 분리되지 못하고 계속 이어진다. 밥을 먹다가도 뭔가 생각나면 갑자기 모니터 앞으로 가 작업을 하고 강의 후에 잠깐 쉬는 동안에도 여전히 모니터 앞에 앉아 끊임없이 타이핑을 한다. 다시 말해 완전한 휴식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학부 때 너무 많은 일에 치여서 번아웃이 심하게 온 적이 있었다. 회복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고, 당연히 그 기간 동안 했던 일들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제대로 쉬지 못하면 정말 모든 에너지가 연소되어 완전히 지쳐버리는 번아웃을 또 겪게 될 것이다. 재택 시대의 스트레스 관리는 집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공과 사를 얼마나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슈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