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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이란 Oct 23. 2021

팬데믹과 함께하는 학생의 삶

몸은 한 개지만 한 공간에 있지 않다

워크숍 캡처


"너 그럼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최근 몇 달간 내가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다. 나의 이번 학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독일 대학교 페이퍼를 쓰지만, 중국 대학교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으며, 홍콩 대학교의 강연을 듣고, 일본 대학교에서 개최하는 워크숍에 참가하는데, 이 모든 것을 한국에서 하고 있다.


지난 9월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쁜 한 달이었다고 생각한다. 6월 말, 1년 간의 독일 생활을 잠시 접고 상해 교통대에서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갑작스럽게 변경된 중국 비자 정책과 늘어난 자가격리 기간 때문에 학기 시작 후 1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한국에 있다. 연말에는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9월 말까지 이어지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학기와 9월 초부터 시작하는 상해 교통대학교의 학기가 겹쳐 과제는 두 배가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9월 말에 교토 대학교에서 열리는 워크숍에 선발되어 준비를 해야 했다. 워크숍에 참여하고 나서는 코멘테이터였던 핀란드 대학교의 교수님과 계속 소통하면서 페이퍼를 수정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이 상황이 재미있긴 했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독일에서 한국에 왔다가 상해 기숙사에 짐을 풀고 교토에 가서 워크숍에 참여하고 다시 상해로 돌아왔다가 학기가 끝나면 독일로 날아가야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물리적으로 말도 안 되게 바쁠 수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비행만 하다가는 뭐 하나 제대로 끝낼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실제로 그 공간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은 여전히 아쉽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꽤나 편리했다.


Gather Town 홈페이지 캡처


학업적인 것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학 생활에서도 신기한 일이 많았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학생회를 하고 있어서 학과 학생들을 위한 이벤트를 꽤 자주 열어야 했다. 그때 자주 사용했던 플랫폼은 Gather Town인데, 일종의 메타버스라고 볼 수 있다. 아바타를 통해 가상공간에 접속해서 사진에서처럼 테이블에 앉으면 저 테이블에 속한 사람들끼리 영상과 음성을 통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우리끼리는 바(Bar)라고 부르며 마치 진짜 술집에 와서 수다 떠는 것처럼 각자 맥주를 한 병 놓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며 세계 곳곳에 있는 동기들과 편리하게 친목 활동을 했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굳이" 이런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공간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이 시점, 내가 물리적으로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사실 가상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이미 너무 오래 전이어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즉, 팬데믹은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엄청나게 앞당겨서 우리의 일상에 보다 빨리 상용화시켰을 뿐 그 방향을 바꾸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변화가 너무나도 필수적이고 강력해서 꽤나 보수적인 학계까지도 흔들어놨다는 점이다.


예상보다 길어진 팬데믹은 사람들의 일상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그것을 오랫동안 유지시켜서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개념은 생각하기 어렵다. 아마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위드 코로나가 되더라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라이프는 뉴 노멀로 자리 잡고 우리는 여러 개의 몸으로 어디에나 존재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 학생의 삶도 예전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팬데믹과 함께하는 학생의 삶'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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