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습고 창피하다. 얼마 전 글에도 나는 36개월까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계획이 없다고 당당하게 적고도 제목에 저렇게 큼지막하게 24개월 어린이집이라는 말을 올리다니. 창피하다 창피해.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진심으로 보낼 생각이라곤 1도 없었다. 당연히 내년에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보낼 거였다. 안 그래도 게으른 내가 당장 닥친 일도 안 하는데 1년 뒤에 보낼 어린이집을 알아봤을리도 없다. 아무런 정보도 없고, 어린이집에 보내면 얼마가 나오는지도 몰랐다. 근처 어디에 어린이집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집 바로 앞에 단지 내 어린이집 한개가 있는데, 당연히 거기 보내야겠거니 했을 뿐이다.
그런데 주변 육아의 신 언니가 그러는 거다. 1년 전에는 대기를 걸어놔야 한다고. 사실 집 주변에 YMCA가 있어서 5살쯤 되면 그리로 체육활동이나 열심히 보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게을러서리 아이를 5살까지 단 둘이 보고 있기는 힘들 것 같았다. 게다가 보는 육아서적마다, 듣는 교육 유튜브마다 36개월이 지나거든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좋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순히 36개월이라는 숫자만을 가지고 어린이집 대기를 걸었다. 따라서 봄의 어린이집 입소 예약일은 22년 3월이었다.
아직 21년 3월인데 오늘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3세반에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우리 집 앞 어린이집은 4세반부터 있었는데. 어쩌다 3세인 봄이에게 전화가 왔을까 생각했다. 사실 이 대기도 내가 건게 아니라 남편이 건 거라서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나에게 전화가 왔노라고 통보하기에, 상담을 해볼까 말까 생각했다.
언제가 됐든 어린이집 분위기는 한 번 봐야할 터였다.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무시무시한 어린이집 사태가 뉴스로 나오는걸 보면서 나는 굉장한 공포감을 갖고 있었다. 어린이집 원장님 얼굴도 좀 보고, 선생님들 분위기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당장 상담을 잡았다. 계획은 상담만 하고 내년에 오겠다고 말하고 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어린이집을 보낼지 말지에 대한 일말의 여지도 없었다.
그곳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두분이서 원장님과 부원장님을 맡고 계셨다.
봄이는 낯가리기를 시작하면서 남자를 보면 굉장한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모르는척 하고 지나가면 자기가 흥미를 갖지만, 자기가 마음을 열지 않았는데도 남자가 먼저 다가오면 내 뒤로 숨는다.
봄인 들어가자 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워낙 낯을 안 가리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당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온갖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자기에게 시선을 두니 꽤 겁이 났던 모양이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상황에 정봄은 그야말로 앙앙 울어댔다. 음. 그럼 그렇지. 어차피 보낼 생각이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설명만 듣고 자연스럽게 집으로 가면 되겠다 싶었다.
봄인 아빠에게 맡기고 나는 상담실로 들어갔다. 원장님의 교육철학이 나와 잘 맞아 떨어졌다. 열심히 놀아주시는 곳 같아서 내년에 여기에 오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언제쯤 집에 간다고 말해야 하나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남편이었다. 하지만 옆에는 봄이가 없었다.
"봄이는?"
"저기서 놀고있어"
.....
상담을 마치고 나가자 봄이가 신나서 놀고 있었다.
봄이에게 다가가려고 문을 열자 봄인 나와 남편에게 소리쳤다. "저리가!! 놔둬!!"
아니 그게 무슨말이야..
봄이는 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더 놀겠단다. 어린이집에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봄이만 남아 있었다. 내가 상담을 늦게 한 탓에 다들 퇴근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봄이를 들쳐매고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기 싫다고 엉엉 울던 봄이는 집에 가기 싫다고 엉엉 울고 있었다.
돌아가면서 봄이에게 물었다. 어린이집이 재미있었냐고.
너무 재미있단다. 선생님이 예쁘단다. 내일도 갈거란다. 장난감 다 자기 거란다.
나는 내 신념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36개월까지 함께 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나는 일도 안 하는 전업이니 그걸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물론 내가 집에서 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밥도 반찬 없이 대충 줄 때도 많다. 그래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데리고 있는게 맞는건가?
내가 봄이의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내 맘 편하자고 봄이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 건 아닌가?
남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남편은 보내고 싶지 않아 하는 눈치다. 그래도 보낼지 말지는 내가 선택하란다. 너무 가혹한 바톤터치다.
고민이다. 또 고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할지, 혹시 봄이가 상처를 받더라도 어린이집을 보내는 게 맞는건지 정말 모르겠다.
봄이는 말을 잘 한다. 바깥을 좋아한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노래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일종의 자기최면을 걸어본다. 흔히들 합리화라고 하지...
그리고 나는 사람인을 뒤지고 있다.
벌써 보내놓은 모양새다.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