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오늘, 나는 아이들의 글쓰기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학교는 휴학중이었는지 어쨌는지, 느즈막이 일어났던 기억만 난다. 오전 8시에 일어나 다시 자려고 누웠는데 빨갛고 굵은 글자로 뉴스가 떠 있던 걸 기억한다. 잠이 다 깼다. 그리고 몇분 뒤 다시 제목이 바뀌었다. 그 때 제목은 검정색이었다. '전원 구조'였다.
엄마와 아빠와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었다. 그래도 세상이 참 좋아져서 다행이라 말했다. 다치는 사람 없이 전부 다 구했다니, 역시 많이 발전했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나서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다. 5시간 정도 수업이 끝난 뒤, 뉴스를 본 나의 충격이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는 매년 4월 16일에 글을 올리고 있다. 티스토리에도, 오래 전 야구 블로그에도, 혼자서 글을 끄적이는 구글 블로그에도, 그리고 올 해는 브런치다. 숱한 곳에 다양한 글을 올렸지만, 마음은 7년 전과 항상 같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쓰는 건 손이 떨려 하지 못하고 있다. 가슴이 시리고, 견딜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매번 하고 싶은 말은 썼다 지웠다 반복만 한다.
초지역 공원에 있던 추모공원이 없어지기 전까지 매해 그곳을 방문했다. 그 중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얼굴을 아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얼마나 뉴스를 많이 들여다 봤는지 영정사진 속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아는 사람 같았다. 그 큰 공간을 꽉 채울 만큼 빽빽이 들어서 있는 영정사진을 보면.. 마르케스가 그랬나, 누가 그랬나. 이 세상이 현실같지 않다고. 내가 있는 이 곳이 다 거짓말 같다고.
예전 그 일이 터졌을 때는, 아이들의 마음에 빙의 되어 있었다. 다 피지 못한 꽃이 안타깝고 속상했다. 생각만 하면 숨이 막혔다. 괴롭고 슬펐다.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아빠는 한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셨다. 언제나 시끄럽게 켜져있던 야구도 그동안은 잠잠했다. 가족 모두가 입을 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 이야기를 피하고, 각자 슬퍼했다.
이제 엄마가 되고 나서 세월호를 접하니 부모님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알 것 같아 숨이 막힌다. 찢어지는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고 계신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고인다. 다 키운 아이들을 그렇게 아무 손도 못 써보고 멍하니 바라봐야만 했던 그 무력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문장을 쓰는 것만으로도 손이 떨리고 힘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도 슬프다. 그래서 나는 매년 결심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꼭 하기로.
그래서 올 해도 글을 올린다. 잊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못다한 꿈 하늘에서 꼭 이뤘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나 혼자 중얼거려본다.
2014년에 함께 있었던 친구들을 오늘도 만났다. 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 7년 전인데도 그 날의 기억이 하나하나 어제같이 생생하다고. 나도 그렇다.
글을 쓰다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대학 때 처음 만난 첫사랑이다. 그 친구가 그 때 그랬다. 자신의 형이 다니던 회사 사장님 따님이 세월호를 타고 있었다고.
결국 나의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세월호에 있었던 것이다.
남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