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고 Jan 04. 2022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돌아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넘어서는 게 최선인 경우도 있다.

오늘 아침 장성규씨 라디오에 한 고등학생이 사연을 보냈다.


학생은 그동안 꿈 없이 하라는 대로 공부만 하면서 지내왔다. 취미는 춤이었지만, 춤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요즘 스우파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자신도 춤을 추면서 돈을 벌고 싶고, 당장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단다. 부모님을 설득해야 하는데,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힌트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월요일에는 '거의없다'라는 영화평론가(아마도)와 함께 코너를 진행한다. 누군가 고민을 보내고 이 고민에 맞는 영화를 거의없다님이 추천해주는 코너다. 오늘은 한 고등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며 부모님을 설득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참고할 영화를 알려달라는 아주 평범하고 흔한 내용의 사연이 왔다.


봄이의 등원을 준비하며 라디오를 흘려듣고 있었다. 아침 시간은 내가 출근하지 않고 봄이의 등원만 준비하는데도 꽤 분주한 시간이다. 어떤 영화를 추천해주려나, 별 생각 없이 거실을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다른 양상으로 라디오의 내용이 흘러다.


당연히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영화'를 추천해줄 줄 알았는데, 정말 단호하게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거의없다님은 무모한 생각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며 직설적으로 말했다. 지금 이 결정이 공부가 하기 싫어서 도망가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라며 단호하지만 단순한 문장을 나열했다.


그에 장성규님은 반기를 들었다. 자신은 꿈을 응원한다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고 기쁜 일이라고, 다른 말은 됐고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양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코너가 흘러다. 진작에 영화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시간인데,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봄이를 데리고 등원을 나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근데 그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빨리 가자는 봄이의 재촉에도 잠시 멈춰 라디오를 끝까지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꿈을 쫓는 데 찬성하는 사람이고, 가능하다면 꿈을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도전해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 거의없다님의 이야기가 너무 진심으로 다가왔다.


춤을 추는 것? 좋은 일이다. 얼마든지 출 수 있다. 하지만 춤을 추면서 돈을 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지금은 스우파라는 멋진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는 일에 대한 의식을 제고했지만, 곧 이 붐은 수그러 들 것이고 또 다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꿈과 목적을 가지고 투쟁하며 미래와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런 길을 가고 말 것인지는 대학을 가고 나서 해도 충분히 늦지 않다. 대학을 간다는 것은 사실 때가 있다. 학생일 때 공부하고 대학에 가서 그 문화를 경험하는 것 또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시간이다. 이렇게 춤을 추는 꿈을 가졌단 이유만으로 춤 추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일자리의 수는 정해졌는데 그 많은 댄서들의 삶의 질, 직업의 질은 어떻게 보장할 거란 말인가? 우리가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단순히 응원만 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학생은 꼭 알아야 할 것이 도망친 곳에는 낙원은 없다. 그곳에 가서 또 한 번 벽을 만나고 또 도망치는 일만 반복될 확률이 높다.


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내가 느낀바대로 다시 서술한 것이라 이야기가 다르게 적혔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발언에 나도 모르게 홀리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실패한 20대 시절에 대학타이틀도 없었다면 이런 저런 일에 도전조차 할 수 없었을 거다. 그나마 나를 방어해주는 건 대학타이틀 뿐이었다. 물론 그와 관련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나도 같은 생각이다. 춤이란 건 고등학생 때보다 대학에 가고 나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무궁무진하고, 더 넓은 사고와 시야를 가지고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무엇보다 정말로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다. 대학이라는 문턱을 넘는 대신 춤을 추러 간다면, 그 걸 실패했을 때 다시 대학이라는 문턱을 넘기 위해 돌아와야만 한다. 굳이 대학을 가야 하냐는 답변에 나는 절대 '노'다. 나는 봄이가 대학에 가고싶지 않다고 하면 가지 말라고 할 거다. 지금도 나는 내 학비가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리정씨처럼 단순히 춤만을 살아온 삶을 살다 대학의 필요성을 못 느낀게 아니라, 공부를 하다 문득 춤을 추는 것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고등학교의 삶을 내려놓는다면, 고등학생도 아닌데 고등학생처럼 공부를 하게 될 날이 분명 온다. 얼마 안 살아봤는데도 순리가 그렇더라.


거의없다님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았다. 그의 문장 끝에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그의 단호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지독한 실패를 맛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이다. 굳이 그 실패를 그 시점부터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실패선배자의 한 마디. 넘어야 할 산을 자신 있게 넘어보는 것도 인생의 힌트가 된다. 춤을 추는 것으로 바로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를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봄이 손을 붙잡고 등원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길을 걷기로 마음 먹었다면 이곳에 사연을 보내지도 않았겠지-. 근데 영화는 뭘 추천해줬더라?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그의 말, 그거 하나 깊이 새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쉬지 않는 한 해가 되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