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려던 건 아니었는데
초등학교 때 일기 쓰기 금지어가 있다. '오늘은 '
선생님은 일기를 쓸 때 첫 문장으로 절대 '오늘은'을 쓰지 말라고 했다. 하루에 무얼 했는지 나열하지 말 것. 일기 숙제를 낼 때마다 매번 반복하던 말씀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쓸지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위주로 내용을 적으라고 했다. 일기쓰기는 나열이 아니라 기록이다.
그런 일기도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나는 오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참을 풀어 쓰다 이내 다 지워버렸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나와 약속한 한 가지가 브런치 1일 1개 글쓰기다. 이제 겨우 6일째인데 소재가 다 떨어져버렸다. 나는 집에서 살림을 하며 간간히 알바나 하는 주부고, 그만큼 일상은 정적이다. 하루에 일어난 특별한 걸 생각해 보려해도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 운동을 하며 어떤 얘기를 쓰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를 일기쓰려고 시작한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하루일과를 적고 있네. 정말 따분하기 그지 없고, 나 조차도 할 말이 없다.
나는 항상 주제를 가지고 일관적인 글을 써 나가는 작가님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자신만의 자신있는 분야가 있고, 전문분야가 있다. 남들이 알기 쉽게 풀어쓰는 글을 보고 있노라면 그 지식에 감탄하고, 그 글솜씨에 감탄하고 만다.
나도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주부의 애환을 담아 글을 쓰고 싶다고 하고는 패스를 받았는데, 사실 그 이야기를 사람들이 듣고싶어할까? 하고 반문하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맘카페에서 정보를 찾을 때 외에는 남의 육아 이야기를 굳이 찾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어떤 분야를 전문적으로 주제를 끌어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루에 특별한 일이 없어도 글 한개 정도는 거뜬히 쓸 수 있는 나만의 전문 분야는 어떤게 있을까? 예전같으면 자신있게 야구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겠지만, 야구에서 손을 뗀지 이미 오래. 내가 응원했던 선수들의 90%가 은퇴를 하고 지도자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야구도 보지 않는 내가 야구얘기를 하는 건 야매다.
그러다 생각난게 겨우 백수다. 백수의 생활이라면 정말 잘 알고 있는데. 그 누구보다 자신있게 한량하고 거지같은 삶을 사는 돈 없는 백수 이야기 정도면 내가 학사 석사 박사 수준으로 글을 써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 또한 큰벽에 부딪힌다. 아무도 백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전문 분야를 살려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제로 엮어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끽해봐야 100년 사는 삶인데 참 어렵고 어렵다. 그나저나 내일을 위해 오늘 고민해야 할텐데. 내일은 무언가 특별한 일이 생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