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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ul 06. 2024

장마철엔 우산

칠월의 첫 주도 혹독하게 보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발의 상처에는 절대로 물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고, 씻을 때는 발을 랩으로 감싸고 비닐봉지로 싸매서 어떻게든 물이 닿지 않게 한다지만 출퇴근 길에 비가 많이 내린다면 어려울 것 같았다. 발이 아프니 장화를 어기적어기적 신고 다니기도 힘들 것 같고, 다이소에서 파는 실리콘 방수 신발 커버를 샀는데 M사이즈면 충분할 줄 알았더니 너무 작았다. 신발 신은 발을 구겨 넣기가 꽤 어려울 것 같았다. 멀쩡한 발이라도 힘들 것 같은데 다친 발이니 제약이 많다. 


개에게 발을 물린 지는 2주째, 병원에 다닌 지는 벌써 열흘 정도 되었는데 크게 차도가 없고 회복이 더디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심란해지기의 반복이다. 하도 낫지 않으니 다른 병원을 찾아가 보고, 또다시 다니던 병원으로 돌아가고... 최대한 걷지 말라고 하지만 안 걸을 수 없으니 스트레스를 받고.


인사철.. 고인 물을 휘저어주며 때로 활력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이번에는 특히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당연히 될 줄로만 알았던 승진에서 탈락하자 온갖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내가 남들 눈엔 어떻게 보일까? 나 혹시 이미 완전히 블랙리스트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ㅋ 


구성원들의 이동으로 팀원들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여섯 명 중 세 명이 바뀌었다. 내가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 맞이하는 걸 힘들어하는 줄은 몰랐다. 이제 막 새로운 곳에 발을 들이고 낯설어할 분들을 위해 환영해 주어야 하건만 내내 표정이 썩어 있었다. 환대가 아니라 박대를 하고 있었다. 그중 두 명은 업무가 많이 겹치는데 함께 잘 지낼 수 있을지 너무 걱정이 되고 자신이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자신이 없을지 모를 정도로... 흑흑..


개 때문에 촉발된 불화가 커져서 가족을 떠나서 혼자 나가 살고 싶은 마음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막상 나가 살 돈이나 용기도 없으니까.. 정말로 상담이 절실한 시기였는데 발이 아파서 이동하는 것어려웠고 매일 병원에 가야 하니 시간을 빼는 어려웠다. 발을 다친 뒤로 벌써 2주째 상담을 미루었는데... 다음 주엔 받으러 생각... ㅜㅜ 나의 멘탈 테라피... 


상담은 못 받았지만 이번 주는 애인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애인과는 장거리로 주말 하루 반나절정도를 겨우 만난다. 당장 다음 주는 주말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걱정스럽다. 힘들 때,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질 때... 내가 초라하고 한심하고 멍청하고 어딘가 잘못된, 하자 있는 인간인 것 같다고 느껴질 때... 누군가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 기뻐해 주고, 나의 어두운 면까지도 모두 긍정해 주는,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안심시켜 주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건 정말 놀랍고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힘들 때 정말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 고마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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