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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ul 30. 2024

병중일기

아주 어릴 때부터

내 앞에 펼쳐진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건 조금 곤욕스럽고, 피곤하고, 또 

무엇보다 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았지 


밤에는 악몽을 자주 꾼다. 

다행인 점은 가족들과 함께 산다는 점이다. 엄마가, 아빠가, 악몽이 한창인 나를 깨워준다. 

꿈속에선 별것들이 다 무시무시하고 미치게 공포스럽고


발을 다친 지 한 달이 넘어간다. 발을 핑계로 우울하다. 우울할 이유들이 충분하다. 지겹도록 익숙하게 우울하다. 발을 다친 지난 한 달간 활동량도 많이 줄었다. 소소하게 하고 싶은 거라면 저녁 무렵 아무 생각 없이 산책로를 오래 걷는 것. 여름밤 산책로를 오래 함께 걸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물론 발을 다친 나는 한달째 산책을 하지 못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더 생각이 많아진다. 그 생각이 옳은 건지(별로 그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잘 모르겠지만. 


대체로, 

지나온 삶에 대해 회고하고 현재를 괴로워하며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이다. 

내 인생은 대체로.... 안락했지만 지겹고 우울했지, 잔잔한 병을 아주 오래 앓으며 견뎌온 사람처럼.... 참고, 인내하고, 시간을 꾸역꾸역 먹어치우는 것이 주된 일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나의 앞날이라고 이제는 별 특별한 게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노인이라면 흔히들 하는 말처럼 ,  다 늙어서 인생에 무슨 희망이 있겠냐고 하는 말처럼 , 

다 늙은 사람처럼 여기저기 몸은 아프지, 매일같이 병원 다니기도 지겹고, 기력은 쇠하고, 삶에서 재미를 기대하는 건 내게 주어지지 않을 사치라고 느껴지고,  내가 해내야 할 일들은 죄다 부담으로만 느껴진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도대체 나아질 수나 있을지 몹시 의심스러운 

우리 집에서 키우는, 내 발을 문, 늙어서 이젠 몇 년이나 더 살지 잘 모르겠는, 개처럼, 


이렇게 우울할 땐 내가 너무 더럽게 느껴진다 

오늘은 직원들이 어떤 더럽고 냄새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나한테서도 냄새가 나지 않을까? 

발을 다치고 한 달이 넘도록 씻는 일이 무척 번거롭고 어려웠다. 

나의 몸이, 내가 입는 옷이, 내가 잠드는 잠자리가, 이불이, 내가 생활하는 집의 공기가, 집 냄새가, 

무척 은은하게 역하지는 않을까. 



적극적으로 뭘 어떻게 더 할 수는 없어서 그냥 

또 하루 세끼 병원 밥을 꾹꾹 씹어 삼키는 것처럼 

숙제하듯 오늘을 내일을 사는 중인 것 같다. 

이렇게 오늘이 내일이 가면 그 뒤엔 뭐가 있을까?

별거 없을 것 같은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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