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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Nov 12. 2024

변화에 관한 아주 긴 이야기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스터디카페에 나온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직 동생이 취준생이었을 때에 한동안 동생과 함께 저녁마다 스터디카페에 오곤 했다. 퇴근 후 집에서 저녁을 먹고 대강 양치만 빠르게 한 다음 짐을 챙겨 서둘러 스터디카페로 오면 저녁 7시 30분이 된다. 그런 다음 1시간 30분 정도 집중해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고...(아마 소설을 썼으려나) 그리고 밤 9시가 되면 다시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잠드는, 그런 생활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한동안은 저녁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피곤해서 겨우 옷만 갈아입고 쓰러지듯 누워서 쉬다가, 조금 기력이 생기면 그제야 일어나 앉아서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혈당스파이크가 쎄게 와서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누워있다가 잠들고.... 그대로 잠들면 좋겠지만 씻고 자야 하니 겨우 몸을 일으켜서 씻고 머리를 말리고 나서 자려고 누우면 잠이 오지 않아서 한참 뒤척이고... 그렇게 잠이 오지 않으면 겨우겨우 몇 시간 자고 일어나서 다음날 또 피곤한 하루가 시작되고, 커피를 마시고... 


저번달 생리 시작일에 극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에 다녀온 뒤로, 이제는 정말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이전까지는 딱히 산부인과 쪽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병원에 다녀왔다. 별 것 없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초음파상 이상 소견으로 금식 후 복부 CT까지 찍게 되었고, 결과로는 오른쪽 난소에 혹이 있고(이 사실을 안 후로 계속해서 오른쪽 배가 이상하게 당기고 아픈 느낌이 든다....) 자궁선근증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병원을 다니면 다닐수록 새로운 병들을 발견하게 되곤 한다. 놀라지 말아야지, 걱정하지 말아야지, 스트레스받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당장 치료가 급하지 않으니(혈액검사 결과는 다행히 저위험 수치였다) 추적관찰을 하고, 생리 때는 매번 진통제를 필수적으로 먹으면서 넘겨보자고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지방 병원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선근증이라고? 알려진 대표적인 증상들이 너무 내 증상과 달라서 믿기가 어려웠다..ㅋ), 우선 이번 생리 때는 처방받은 진통제를 먹으며 큰 복통 없이 지나갔다. 다만 배에 이상한 불편감(뻐근함 같은)이 생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긴 했는데... 다음번 생리 때까지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간 있었던 큰 일들을 브런치에 계속 기록하려다 실패하고 임시저장만 해 두었는데, 그동안 나는 사무자동화 실기시험을 보았고(필기 볼 때도 응급실에 다녀온 뒤였는데.... 실기 때도.. 응급실 다녀와서 며칠 지나고 시험 보러 감 ㅋ) 미풍이와 부모님과 함께 떡갈비를 먹으러 다녀왔고, 그러고 몇 주 뒤에 웨딩홀도 계약했다(가장 큰 일!) 이로써 나의 결혼식 날짜와 배우자가 정해진 것이다 ^^


아직 1년도 더 훌쩍 남은 결혼식이지만... 온갖 상상을 하다 보면 벌써 조금 떨리고 걱정되고 부담감이 들 때가 있다.. 2주 뒤에 마침 회사 동기 모임이 잡혀서..  오랜만에 보는 동기들에게 결혼 계획에 대해 오픈할 예정...(떨린다..^^) 이런 거.. 이런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대공개하기 정말 어려운 일이군....... 어떻게 되겠지 ㅋ 빨리 다 시원하게 오픈하고 마음의 자유를 얻고 싶다 ㅋㅋㅋ 


회사에는 내 또래의 직원들이 많다. 다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르르 결혼을 했고, 하나둘 아이를 낳고 있다... 그런 광경을 보면 기분이 조금 이상하다. 전혀 다른 두 세계로의 전환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그 광경을 딱 목격하는 기분. 분명 그냥 눈에 띄지 않는 꽃봉오리들이었는데 꽃들이 하나둘 활짝 붉게 피어나는 그런 광경으로의 전환을 지켜보는 기분. 변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 느낌.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너무 크고 어색해서 그만 모르는 척하고 싶어 지는 그런 기분. 


산부인과에 다녀온 이후로, 딱히 해결책도 없고 그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 한바탕 가족들의 걱정을 거쳐서 일단 이것저것 몸에 안 좋다는 것은 끊고 몸에 좋다는 것들을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 

일단 모든 아이스 음료 끊기, 카페 음료는 뜨거운 것만 마시기.. 단 것도 최대한 먹지 않기. 적당히 운동하기(걸어서 출퇴근을 하고),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햇반 먹는 대신 집에서 밥 챙겨가기, 비타민c, d, 유산균, 홍삼, 배즙, 생강차 매일 먹고, 장갑, 목도리, 마스크 등 챙겨서 몸을 따뜻하게 하기.... 


이번 생리는 오늘로 거의 끝나가는데, 오른쪽 하복부에 조금 땡기는 이상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월요일이었던 어제부터 오늘 이상하게 퇴근 후에도 컨디션이 너무 좋다. 어제는 퇴근 후에 걸어서 마트까지 가서 장도 보고(평소에는 힘들어서 퇴근 후에 마트까지는 못 간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나서 청소기까지 돌렸다(평소에는 밥을 먹은 후에 피곤해서 곧바로 눕거나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는다).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저녁에 마트도 다녀오고 청소도 할 수 있는 체력이 있다는 건 정말 엄청나게 행복한 일이구나!  기분이 너무 짜릿했다. 오늘도 퇴근 후에 집까지 걸어오는 길이 전혀 힘들지 않았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이렇게 노트북을 챙겨서 스터디 카페에도 나왔다. (그렇다 지금 이 긴 글은 저녁에 스터디카페에 와서 쓰고 있는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 나는 왜 회사에서 집도 가까운데 저녁이 없는 걸까 의아했던 적이 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나면 뭘 하지도 않았는데 금방 씻고 자야 할 시간이 되곤 했던 것이다. 그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건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체력이 없는 것이었음을.... ㅋ 

저녁 먹고 나서 피곤해서 쓰러져 누워서 어쩔 수 없이 할 수 있는 게 폰 보기뿐이니 그렇게 폰을 볼 수밖에 없었던 거지... 체력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체력이 주는 어마어마한 시간의 혜택을....^^


올해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느라 글쓰기를 일시정지하고 있었다. 이제는 반강제로 자격증 시험도 끝났고, 슬슬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고 있었다. 내 남은 인생에.... 남은 것이 이 회사 생활 단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면 몹시 우울해지는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글을 쓸 수 있을까? 내 글이 뭔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걸 내가 쓸 수나 있을까? 그럴 능력이 있을까, 내게.... 생각하다 보면 

작년, 재작년에 들었던 수업들이 지금의 내게 힘이 되어준다. 그때 만났던 선생님들이 해줬던 이야기들이 어쨌든 내게 계속 글을 쓰라고,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내게 주어지는 가능성이,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언젠가 내가 완성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굳게 닫혀 있던 나의 세상에 색색의 꽃들을 환히 밝혀 피워내는 변화의 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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