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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호수 May 29. 2023

에세이 :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거창한 주제를 거창하게 쓰고 싶은 마음 진정시키기


<한 알 씨앗에서 싹이 트고 가지가 뻗고 꽃이 피듯, ‘귀뚜라미’란 제목에서 시작해 세상의 가을을 향해 번져나가는 글이라야지, 허턱 ‘가을’이라고 대담하게 제목을 붙였다가 ‘귀뚜라미’로 쫄아드는 글은 소담스럽지 못한 법이다.>


이태준의 '문장강화' 중에서




에세이를 쓰자. 마음을 먹으면 우리의 마음은 무척 거창해진다. 인생의 사유를 담는 에세이를 쓰고 싶다. 지금껏 내가 살아오며 깨달은 수많은 통찰들을 어떻게든 글에 담아내고 싶다. 인생의 굴곡으로만 따지자면 그 어떤 인간극장 출연자보다 못할 것 없을 듯 하고, 통찰로 보자면 이어령 선생 못지않게 깊은 깨달음을 매 순간 얻어온 듯 하다. 그것을 어떻게 글에 담을지 포부는 거창한데 쉽게 글이 써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시작을 하지만 한두꼭지를 쓰고나면 내 진중한 사유의 글은 이미 다 밑천이 떨어져버린 것 같아 더이상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들을 진정시킨다.

"너무 앞으로 나가지 마시고요. 우리 잠시 생각을 해 보지요. oo님이 쓰고 싶은 그 인생의 사유는 알겠어요. 그런데,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면요. 두꼭지만 쓰면 할 말이 없어지거든요. 우리가 철학자가 아니라서 그렇게 사유에 대해 할 말이 많지가 않아요. 그리고 거창한 이야기를 거창하게 하는 에세이는 독자가 이미 첫장에서 떨어져 나간답니다. 어떻게, 독자를 붙잡으시겠어요 멀리 떠나 보내고 혼자 남아 이야기를 하시겠어요? "

그렇게 진정을 하고 난 작가님들에게 이젠 '진짜 에세이를 쓰는 법'을 말해줘야 한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거창한 인생 이야기를 거창하게 하고 싶은 작가분에게 어떻게 독자를 붙잡는 글쓰기를 하게 할 것인가?



*내가 이끄는 에세이클럽 <안녕 나의 에세이> (자랑스럽고도 뿌듯하게도 벌써 5기를 순항 중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나의 피.땀. 눈물이 함께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으리) 두번째 에세이쓰기 과제는 '사소한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 가능한 더더더 사소한 것들을 가지고 글을 쓰기. 과연 온갖 종류의 사소한 것들이 지금껏 총 출동해왔다. 손톱깎기, 이쑤시개, 오페라 글래스, 주방 가위, 몽당 연필, 간장 종지, 운동화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사소한 것들이 등장했다. '가능한 사소한 것'을 주문하지만 사실 문제는 '얼마나 사소하냐'가 아니다. '그토록 사소한 것'으로 '어떻게 좋은 에세이를 쓰느냐'하는 것이다.

7주의 글쓰기 과정에서 이런 과제가 들어가는 이유는 바로 '거창한 주제를 거창하게 쓰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붙잡기 위한 것이다. 하나의 글에 모든 에피소드와 모든 소재를 총출동시켜 내가 가진 밑천을 다 써버리는 낭패도 없게 하고, 아주 작은 것을 가지고 조근조근 속닥속닥거리며 이야기를 하다가 인생으로 확대되는 글쓰기에 대한 재미도 느껴보게 하려는 의도이다.  구체적으로 작품을 예로 들어 보자. 이 작품에서 어떻게 사고가 확장되어 가는지, 어떻게 작은 글감에서 거창한 사유로 글이 옮겨지는지를 살펴보자.





<예시 1>

 

에세이 3기 '김경희'님의 글 '간장종지' 중 일부이다. (이 글은 수업 후 동서문학상 수필 부문에 입상한 글이기도 하다. 또한 곧 출간을 앞두고 있는 그녀의 '요리에세이'책의 한 챕터이기도 하다.)


(시작 부분)

지름은 6.5센티요. 고는 3.5센티라. 크기가 어찌나 아담한지 어른의 손아귀에 쏙 들어갈 만큼 자그만 그릇이 있으니 사람들은 이것을 종지라 부른다. 종지는 소꿉장 난하는 계집애들이 가지고 놀면 딱 좋을 크기이다 보니 그릇이라고 버젓이 부르기는 아쉬웠을 것이다. 결국 간장을 주로 담았기에 간장 종지라 불렀을 것인데, 이 물 건의 얼굴색은 달빛에 비친 숫처녀의 얼굴마냥 희고 고와서 명정월색(明淨月色)이 다.


(중간 부분)

나의 시어머님은 검소하기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상위 1% 안에 들어가실 분이셨다. 부엌살림을 한참 하실 때 밥 한 톨 버리는 일이 없어서 받아놓은 구정물마저 도 맑았다고 한다. 그렇게 얌전한 분도 나이가 드시니 치매가 오셨다. 치매 초기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기에 무엇이라도 어머님을 추억할 물건이 없을까 하고 찬장을 뒤졌다. 어머님의 부엌 살림살이는 오래된 것들이었지만 고풍스러운 그릇은 없었다. 간직할 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운 마음으로 찬장 문을 닫다가 구석에 박혀 있던 종지를 만났다.


(마무리 부분)

속 좁은 사람을 간장 종지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나는 간장종지가 담아내는 만큼이 라도 나 아닌 타인을 온전히 담아낼 줄 아는 사람인지. 타인에 대한 배려와 타인에 대한 사랑이 간장종지만큼이라도 진실한지. 무엇이 담기든 결코 물들지 않고 나만의 색을 오롯이 간직하며 살아왔는지. 밥 그릇, 국 대접 부러워하지 않고 주어진 종 지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어머님의 간장 종지를 보며 되돌아본다. 작다고 결코 작지 않은 간장 종지를 보면서.


- 간장종지에 대한 관찰과 묘사에서 시작한 글은, '시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추억으로 옮겨간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간장종지로 인해 깨달은 삶의 진실과 사유를 어머님에 대한 존경과 맞물려 마무리하고 있다. 작디 작은 간장종지 묘사에서 시작한 글이 '타인을 온전히 배려하고 사랑하는' 인생의 진실로 마무리되는 글.

가장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가장 큰 사랑을 담는 글. 이런 확장성이야말로 <문장강화>에서 이태준 선생이 말하는 '소담스러운 글'이 아닐까.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예시  2>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에세이클럽 5기 이윤경 님의 글 <고까짓 것 껌 따위> 중 일부이다.


(시작 부분)

고까짓 것 껌 따위가 이렇게 감사하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껌이라니. 그래도 해줄 것이 생겼다는 사실에 행여라도 부정이 탈까 나는 겸손한 자세로 몸을 낮춘다. 이 껌은 절대 고까짓 것이 아닌 아주 중요한 열흘만의 첫 목넘김이니까.


(중간 부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병실을 찾은 선생님께 껌의 단물만 씹고 뱉으면 안되겠냐고 물었다니 맛의 향유는 절대 배고픔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링거를 맞고 있어 아들은 절대 배가 고플 리가 없다. 그럼에도 열흘간 물조차 마시지 못하자 그 사소한 껌 하나로 엔돌핀이 돌았다. 누가 보면 대단한 주문이라도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20살이나 된 놈이 딸기 맛, 청포도 맛 등을 나열하면서 말했다.


(마무리 부분)

나는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종종 처음 그날을 생각한다. 울며 껌을 사러 돌아 다니던 그날 그 시간에 가 닿으면 모든 것이 사소해 진다. 삶은 어차피 변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장 사소한 것들에 감사해 하지 않으면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 오늘도 아들은 잘 먹고 잘 쌌다. 행복하다.

 

*'고까짓 것 껌 따위'로 글이 시작한다. 사소해도 사소해도 너무 사소한 껌 따위. 독자의 호기심을 사기에도 충분한 첫 문장이다. 사소한 껌은 자꾸 확장되어 아들의 상태와 연결된다. 열흘간 물도 시지 못했던 아들에게 생의 욕구마저 가져다 준 다양한 맛의 껌. 이미 여기에서 껌은 그냥 껌이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가면 '울며 껌을 사러 돌아다니던 그 날 그 시간'의 기억에 빗대어 삶의 모든 것은 사소해진다. '가장 사소한 것에 감사해하지 않으면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작가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통찰에 이르른다. 마지막 문장을 보면 얼마나 명쾌한가. 가장 사소한 '잘 먹고 잘 싸는 행위'가 가장 중요한 '행복'과 직결된다.




여기에서는 '작은 물건의 글감'을 가지고 확장하여 인생을 담는 예시를 들었지만, 꼭 작은 '물건'일 필요는 없다. 아주아주 사소한 에피소드,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 또한 좋은 시작이 된다. <문장강화>에서 인용했듯이 '한 알 씨앗에서 싹이 트고 가지가 뻗고 꽃이 피듯' 글을 쓰자.  

작은 이야기를 찾자.

작은 순간을 포착하자.

작은 물건에서 시작하자.

그리고 세상을 담는 글로 확장하자.

당신의 통찰은 작은 것들 안에 차고 넘치도록 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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