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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작가 Oct 15. 2022

#01. 아빠의 거짓말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폭력도 있다

"이젠 정말 술 안 마실게." 웬일로 아빠가 나와 내 동생 앞에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는 아빠인데, 그럴 리가?! 싶으면서도 '그 순간'에는 아빠의 진심이 보여서, 진심이 느껴져서 아빠의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결코 3 일을 넘지 않았다. 반복되는 아빠의 술 마심과 이젠 정말 술을 안 마시겠다는 아빠의 다짐이 반복될수록 아빠에 대한 나와 동생의 믿음은 점점 희미해져 갔고, 아빠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고,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아빠의 꼴도 보기 싫어졌다. 어쩌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되었을까? 한탄과 원망만 늘어갔다. 엄마는 오죽했을까. 왜 우리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심각성을 깨달았던 것일까. 


아빠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아빠는 아니라고,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도 중독이 아니라니.. 치료는커녕 자신의 상태를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는 아빠가 너무 미웠다. 사실 어릴 때에는 잘 인지하지 못했었다. 10대 후반이 되면서 '아빠가 술을 좀 많이 마시네.. 왜 우리 아빠는 술을 마실까?'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정확히 얘기해주는 사람은 없었고 내가 엄마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말은 '그래도 너희 아빠는 술주정은 안 하잖아. 그나마 다행이지.' '몸 아프면 안 마시겠지.'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기에는 아빠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내 눈에는 마치 술이 아빠를 마셔버리는 것 같이 보였다. 20대가 되면서 아빠와 나는 극도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술만 마시지 않았어도 사람을 그렇게 쉽게 믿지는 않았을 거고, 술만 마시지 않았어도, 아니 조금만 덜 마셨어도 전재산을 날려버리지는 않았을 거고, 술만 마시지 않았어도 지금 우리 가족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아니 술만 마시지 않았어도 지금의 힘듦이 절반은 줄어들었을 텐데 도대체 왜 이렇게 가족을 힘들게만 하냐고, 매일같이 원망을 했고 쏘아붙였다. 


아무리 아빠에게 화를 내고 제발 술을 좀 끊어보자는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나는 이 세상의 술을 내가 다 마셔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도대체 술을 누가 만들어서 이토록 한 가정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도무지 세상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술을 많이 마셔도 보았다. 술의 무엇 때문에 도대체 아빠가 이토록 술을 끊지 못하는 것일까, 술을 마셔서 기분이 좋을 순간이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올라오는 숙취와 깨질 듯한 머리 아픔에 나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술 때문에 망했는데, 그래도 술이 그렇게 좋을까 싶었다. 


엄마가 늘 했던.. 그래도 너희 아빠는 술주정을 안 해서 다행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이었다. 그 한 마디가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는 눈을 흐리게 했고, 술주정이 없으니 술을 더 마셔도 괜찮다는 일종의 면죄부를 주었을 것이다. 아빠는 술을 마시면 그냥 잠에 들어버리니까 괜찮다고 말이다. 


20대 초반, 사람의 계절을 사계절로 나눈다면 나뭇가지에서 이제 막 연두색 이파리가 파릇파릇 돋아 눈부신 햇살을 머금고 무성한 초록의 잎사귀로 바뀌려는 그 순간에, 우리 가족은 폭삭 망했다. 집 안 곳곳에 붙은 빨간딱지들과 함께. 그제야 나는 현실과 마주 섰고, 아빠와 마주 섰다. 아빠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서 붉어진 그 두 눈을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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