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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작가 Dec 24. 2022

#1. 당연한 것은 없듯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나의 시어머니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넘어지면 엎어지는 곳에 살지만 퇴근길이면 안부 전화를 종종했고, 주말이면 시부모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시간을 보냈다. 그런 나의 애씀이 당연했을까. 


어느 날, 신랑은 내게 말했다. ‘내가 엄마한테 전화 안 한다고 뭐라고 하셨나 봐. 엄마한테 신경 좀 쓰라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혼 후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거는 횟수가 줄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전화가 뜸해진 것이 내심 서운하셨나 보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남편의 다른 형제에게 했던 것이었고, 남편은 생각이 나서 내게 말을 했던 것이었다. 


앗, 이건 내가 생각했던 시어머니와는 또 다른 시어머니였다. 아들 전화가 받고 싶으면 아들에게 직접 전화를 하시거나, 아들에게 말씀을 하시면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첫 번째로 들었고, 연이어 ‘뭐야, 내가 그렇게 전화를 자주하고 주말마다 찾아간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어디 멀리 떨어져 사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걸어가도 5분이 걸리지 않는 말 그대로 ‘코 앞’에 아들집을 두고 사시면서, 아들이 결혼하기 전과 똑같이 자신에게 신경을 써 주길 바라는 그 마음을 생각하니 앞이 아찔해졌다. 


그 동안 내가 알고 있던 시어머니는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뒤끝 없는, 소위 말해 쿨 한 시어머니였는데 말이다. 내가 그 동안 사람의 한 쪽 면 만을 보고 있었던 걸까? 어머님은 하나도, 전혀 쿨한 사람이 아니었다. 쿨함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시 시어머니는 내게 새로운 모습의 시어머니로 나타났다. 짜잔~! 


첫 아이를 낳고 시어머니의 간섭은 극도로 심해졌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남편은 동의하지 못하지만 철저히 아기 엄마인 내 입장에서 보면 극도의 간섭이 맞다. 시간이 아무리 지났어도 말이다.) 어머님은 아들을 너무 좋아하셨고, 그 아들이 낳은 아기도 너무나 예쁘셨던 것 같다. 


날이면 날마다, 집 앞에서 ‘나 지금 너희 집에 가는 길인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저 당신이 손주를 보고 싶은 그 좋은 마음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걸 거부하고 불편해했던 나는 늘 죄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시어머니에게 ‘싫다. 지금 아기가 자고 있다.’ 라는 등의 핑계 한 번 대지 않고 순응했다. 아마 나 역시 어릴 때 부터 어른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이 내 무의식에 남아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대신, 나도 해소할 곳은 필요했기에 남편을 잡았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하기는커녕 ‘우리 엄마가 도대체 무엇을 했는데’라는 말로 내 속을 긁어 놓았다. 당신의 엄마가 무엇을 했느냐면, 내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물어보지도 않고 매일 같이 집에 와서 아기 분유 먹이는 방법, 옷을 이렇게 입혀라, 얼굴이 왜 긁혔냐, 뭐 해라, 저렇게도 해 봐라, 온갖 말을 늘어놓고 가는데 나는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신랑은 그 모든 것이 엄마의 ‘선한 의도’이고 조금 이해해줄 수 없냐고 했다. 나는 갈 수만 있다면 지구의 끝,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갈 수 있는 만큼 가장 먼 곳까지 날아가고 싶었다. 


신생아를 직접 키워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시기의 엄마가 얼마나 정서적으로 예민하고 불안정한지. 어쩌면 약한 아기보다도 더 약한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을 말이다. 나는 부셔지지 않기 위해 기를 썼고, 시어머니의 심한 간섭 속에서 내 마음을 지켜야만 했다. 그런 식의 도움은 필요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배워온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했을 뿐이었다. 

상대방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무도 서로에게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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