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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pr 17. 2024

26층에서 돌이 떨어졌다고 했다




얼마 전 집 에어컨을 교체했다. 결혼하면서 장만한 에컨이었으니 15년 정도를 쓴 셈이었고, 작년 상태가 안 좋아 임시로 수리를 받아 쓰기는 하였으나, "올해는 이렇게 쓰시더라도, 내년엔 바꾸셔야 할 거 같은데요."라는 기사님의 말이 뒤따랐으므로, 본격적인 더위가 오기 전에 손을 보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 가고, 아내도 잠시 외출하였던 그 시간에 오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기사님이 방문하셨다. 하회탈을 쓴 듯 눈웃음 주름이 많은 푸근한 인상의 기사님이었다. 기사님은 본격적인 작업 전 나에게 작업 방식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는데, 친절함이 몸에 밴 사람처럼 보였다.

전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발코니 안에 있었는데, 기사님은 이렇게 쓰면 발코니 안에 뜨거운 바람이 차서, 전기료도 많이 들 뿐 아니라, 효율도 떨어지니, 에어컨을 교체하면서 실외기를 바깥으로 빼자는 제안을 주셨다.


우리 집은 아파트 꼭대기 층인 26층이다.


"아, 실외기를 바깥으로 빼면, 사다리차로 작업을 하나요?"

"아뇨아뇨, 안에서 구멍 뚫어서 설치하면 됩니다. 지금 사용하고 계시는 실외기 거치대 그대로 사용하시면 될 것 같아요."

"아, 네네, 기사님 작업하시기 편한 방향으로 안전하게만 해주세요."

"네네, 작업 시간은 네 시간 정도 걸리겠네요."


거기까지 대화를 마쳤을 때, 잠시 외출하였던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는 뒤늦게 출근을 하였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고, 기사님 마실 것 좀 챙겨드리고, 작업은 네 시간 정도 걸리신다고 하시네, 뭐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서 사무실로 출근해서 일을 하는데, 얼마 안 있어서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집에 좀 와볼 수 있을까."

"무슨 일이야, 나 지금 바로 가기는 좀 어려운데."

"집에 아파트 관리소장이랑 어떤 아저씨가 오셨는데, 우리 집에서 돌이 떨어졌다 그러네."


26층 집 발코니 아래로는 여느 아파트가 그러하듯 화단이 있고 그 앞으로는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차주의 차에 돌이 하나 떨어져서 차 유리에 금이 갔고,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공사를 하는 집이 우리 집밖에 없으니 관리소장과 함께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아내는 에어컨 설치 기사님이 상황을 살피러 주차장으로 내려갔다고 말해주었다.


아이 참, 뭐 그런 일이 생기냐, 사람은 안 다치고 차만 그런 거야?, 기사님 속상해서 어떡하냐, 차주는 차주대로 화나겠네, 근데 우리 집에서 돌이 떨어진 건 맞을까, 에어컨 회사에서 보험 처리해주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서 기사님이 다시 올라오시면 어떻게 하기로 하셨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아내와 통화를 하면서 나는 자꾸만 눈웃음 주름이 가득한 채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던 기사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후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우리 집에서 돌이 떨어져서 차유리에 금이 갔고, 교체 비용으로 백만 원 정도가 나왔는데 에어컨 기사님이 50만 원을 내기로 하셨다는 거. 나머지 50만 원은 차주가 감당을 하기로 했다는 거. 에어컨 설치하면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회사에서 보험처리가 되지만 집 밖에서 일어난 일은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


기사님은 차주에게 50만 원을 지불하기로 합의를 보고 올라오시면서 몹시 억울함을 토로하셨다고 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 구멍 뚫으면서 생기는 잔돌들 다 받치고 흡입해 가면서 작업한다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무엇보다 찝찝한 것은 돌이 떨어져 유리에 금이 갔다는 차에 블랙박스가 작동하지 않아서, 유리에 언제 금이 간 건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르겠다. 굉장히 찝찝하고 복잡 미묘한, 그렇지만 내가 무엇하나 직접적으로 나서서 도울 수 없는 그런 일이 벌어진 거 아닌가. 기사님은 아침 일찍 에어컨을 교체하러 오셨다가 당신이 처음 겪은 일로 아마도 하루 일당보다 큰돈을 물어주게 되었고, 주차장에 고이 주차해 놓았던 차주는 26층에서 떨어진 돌조각에 차유리가 가버렸고, 관리소장은 주차장에 떨어진 돌 하나를 주워와 "이게 이 집에서 떨어졌답니다."라며 집에 혼자 있던 아내에게 말했고, 나는 사무실에서 그저 그 상황들을 전해 들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안 다쳐서 다행이지, 싶으면서도 왜 하필 그 차는 블랙박스가 작동하지 않았을까, 기사님이 작업에 자신이 없었다면 굳이 발코니 안에 있던 실외기를 바깥으로 빼자고 하지 않았을 텐데, 그 돌이 우리 집에서 떨어진 건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면서도 정말 우리 집에서 돌이 떨어져 멀쩡한 차유리에 금이 간 것이라면, 차 수리 비용의 절반을 감당하기로 한 차주도 대단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면서.


무엇 하나 확실한 수 없는 그 상황에 내가 아내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저,

"기사님 가실 때 마실 거랑 간식거리 좀 많이 챙겨 드리고..."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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