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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pr 24. 2024

호밀밭의 반항아




케빈 스페이시 옹께서 저의 졸저 <작가의 목소리>를 언급해 주셨습니다... 는 얼통당토 않은 구라고, 간밤에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았다. JD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쓰게 되었던 배경을 담아낸 영화였는데 좋았다. 재밌었다.


한껏 웅크리고 있다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는 인물들을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굿 헌팅]이나 [파인딩 포레스터] 같은 작품들. [호밀밭의 반항아]는 작가 토마스 울프와 편집자 맥스 퍼킨스 사이를 다루었던 영화 [지니어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토마스 울프에게 맥스 퍼킨스가 있었다면, JD 샐린저에겐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 휘트 버넷이 있었던 것.


영화는 초반 '출판이 전부'라고 말하던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 성공 이후로 점차 은둔하게 되면서 나중에 가서는 '출판이 다가 아니니까'라고 말하는 심경의 변화가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샐린저는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도 하고, 그의 글쓰기를 도왔던 휘트 버넷과 소원해지기도 하고,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고, 명상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출간을 위해 원고를 투고하며 계속 까이는 샐린저를 두고서, 작가라면 거절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하던 휘트 버넷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래 그래, 저게 작가지. 까이는 거야 뭐, 하면서 나도 두려워하지 말고 출판사에 계속 글을 보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달까. 그런데 영화 막판 샐린저 양반이 그 어떤 대가도 없이 오로지 글쓰기 그 자체에 자신을 던지며 더 이상 출판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는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아니, 저기요. 나는 샐린저처럼 대박 난 작품도 없는데, 아직까진 출판에 연연해야 한다구, 하면서.


작가로서 성공이란 무엇일까.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 성공 이후 소설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 코스프레를 하고선 샐린저의 집 앞에서 샐린저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마주하는 장면은 가히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실제로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홀든 콜필드처럼 빨간 모자를 쓰고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꼭 끌어안고서, "당신이 샐린저인가요, 아무래도 제가 홀든 콜필드인 거 같아요." 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한 소설가의 시작과 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였지만,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 성공 이전 샐린저의 모습이 좋았다. 사교모임에서 글을 쓴다고, 작가라고 소개하고서 "출간한 책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듣고서 무시당하던 샐린저가 자신의 책을 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그 모습이. 그 이후의 삶은 내가 좀처럼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 말이지.


묘하게도 다 보고 나니 소설이 쓰고 싶어지는 영화였다. 저장하고 싶은 짤이 많은 영화이기도 했고.

참고로 나는 아직 <호밀밭의 파수꾼> 못 읽어봤는데, 지금 읽는 읽고는 읽어봐야 되겠다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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