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히이만
군 경찰 내각 고위 직분자들은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다음과 같이 자신을 변호하였다.
"당시 문제를 인지 하지 못 했었다."
"명령에 대해 항명할 수 없었다. "
"어쩔 수 없이 수행한 자신은 책임이 없다"
는 논리로 변론하였다.
나는 청문회를 관찰하며 그 모호한 책임 회피의 말 돌리기는 그가 사회생활 동안 학습한 성공의 기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위직관료가 된다는 것은 결코 존경받을 만한 됨됨이와 걸출한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나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아이히만은 성실한 가장이자 성공한 고위직 공무원이었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인정받고 출세하고자 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의 주 업무는 유대인을 게토로 모으고 수용소로 운반하고 가스실로 보내는 일이었다.
예루살렘 전범 재판소에서 그의 죄는 유죄였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죄목은 바로 '사유하지 않은 죄'
죄목은 바로 '사유하지 않은 죄'
우리 사회 교육의 진짜 목표란 무엇일까? 출세란 과연 무엇일까?
혹시 사유하지 않는 유능한 기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 교육 제도와 출세 사다리의 숨어 있는 목표가 아니었을까 자문해본다. 우리는 그 사유하지 않는 자동 기계가 무능하고 무지한 운전자의 손에 맡겨졌을 때 우리가 쌓아온 소중한 것 들을 한 순간 잃어버리게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오히려 사유하면서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염려하고 양심의 고통에 몸서리쳤던 사람들은 중간 간부들과 소대원들이었다. 그들은 현장에서 머뭇거렸다. 국회에 의원들이 국회의사당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최정예부대원들이 결코 전투 실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었고 대통령이 시민들 다치지 않도록 너그럽게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사유하면서 자발적으로 빠르게 움직인 시민들과 양심의 소리에 고통스러워했던 머뭇거린 그 전투 군인들 덕분이었다.
오히려 사유하면서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염려하고 양심의 고통에 몸서리쳤던 사람들은 중간 간부들과 소대원들이었다
교육의 목표는 스스로 사유하고 움직이는 시민들이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지 않을까?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신의 창의성을 창발 할 수 있도록 기회들을 열어주고 개개인의 즐거움과 보람에서 출발한 일들이 서로서로에게 기여함으로써 공동체적으로 더 큰 성취에 참여한다는 총체적인 느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기획이어야 하지 않을까?
설사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 대립한다고 하더라도 갈등을 인내할 줄 알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줄 알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할 수 없을 때 자신의 양심과 가치에 따라 행동하고 그 결과를 마땅히 책임질 줄 아는 개개인이 되도록 안내하기 위함이 아닐까? 우리 사회의 성공신화가 만들어 낸 최고위직들과 검사 출신의 내각은 어떤 신화를 먹고 자라나서 지금의 그 형상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 왜곡된 신화가 재생산되도록 나는 한 번도 기여한 적이 없었는가?
현 대통령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와 그의 무리들이 우리 사회를 장악하도록 허락한 데에는 사회적 성공과 교육에 대한 우리의 빈곤한 철학이 어느 정도 기여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책임이 아주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음부터 써내려 나 갈 역사의 페이지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오늘을 명료하게 주시하고 기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