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을 처음 본 건,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후속인 [이하나의 페퍼민트]에서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처음 마주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그들의 무대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표정한 얼굴로 내뱉는 가사들과 그 창법은 왠지 모르게 나를 끌어당겼고 한동안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계속 중얼거리며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10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후, 장기하와 얼굴들이 5집을 끝으로 해체한다는 기사를 봤다. 솔직히 말하면 3집 정도부터는 앨범이 나올 때마다 타이틀곡을 포함해 한 두곡 정도밖에 듣지 않았었다. 그들이 싫어진 건 아니었다. 단지 애정이 좀 식었다고나 할까.
장기하와 얼굴들 with 미미시스터즈
해체 소식을 접한 이후부터는 마치 헤어짐을 예감한 사람이 갑자기 애인에게 잘해주듯 지금껏 소홀히 했던 그들의 노래들을 다시 꺼내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을 들으며 깨달았다. 아, 내가 그들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구나. ‘깊은 밤 전화번호부’를 뒤지다 ‘우리 지금 만나’ 자며 연락해서 술 한 잔 같이 할 수 있는, ‘별일 없이 산다’고 말해도 기뻐해 줄 수 있는, 절대 열심히 노력하지 말고 그냥 너 자체로도 괜찮다며 ‘새해 복’을 빌어줄 수 있는 한참 동안을 찾던 ‘내 사람’이었구나.
앨범 정주행을 하다 보니 왜 지금껏 듣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좋은 곡이 많이 있었다.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나 <쌀밥>, <올 생각을 않네>, <알 수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경쾌한 사운드와 가사의 조화가 듣는 내내 나를 웃게 만들었고 <그러게 왜 그랬어>, <괜찮아요>는 장기하의 대표적인 창법과 노래 구성을 담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이나 <가장 아름다운 노래> 같은 서정적인 노래 역시 장기하의 담백한 창법과 잘 어우러져 곡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앨범인 5집. 자신들이 선보일 수 있는 최고를 만들었다고 말했던 이번 앨범에서는 왠지 모르게 쓸쓸함과 외로움이 많이 느껴졌다. 그들과 우리의 이별을 생각하며 하고 싶은 말을 가득 담은 노래들이 담겨있는 느낌이랄까. 해체된 그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해 슬퍼하고 있어 할 우리들에게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 정도는 ‘별 거 아니라고’, ‘나 혼자’만 슬픈 건 아니라고 말했다. 앞으로 주위의 이런저런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아갈 우리들에게 “초심 따위 개나” 주고 (‘초심’)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누가 “이러쿵 저러쿵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을 가라고 (‘그건 니 생각이고’), 네가 “내키질 않으면” 남 생각하며 억지로 들어줄 생각하지 말고 자신 있게 거절해버리라고 (‘거절할 거야’) 말했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이게 그들과 나의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나란히 나란히’). 콘서트도 자주 다니고 앨범도 나올 때마다 자주 들을 걸. 하지만 “이렇게 다시 슬퍼질 바에야 애초에 기쁘지도 않았으면”하는 후회는 들지 않는다 (‘등산은 왜 할까’). 그 슬픔의 크기만큼 기쁨의 크기도 컸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등산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장기하와 얼굴들과 함께했던 그 등산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정점에 있을 때 멋있게 내려오는 게 아쉬운 이유는 아직 더 보여줄 게 많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간이 흘러 갈수록 더욱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는데 그 모습을 볼 가능성조차 없어져 버렸으니 아쉬울 수밖에. 하지만 내리막길로 들어선 이들을 보며 이별을 고하는 것 또한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건장했던, 생기 넘쳤던 사람들이 이제는 힘이 빠진 모습을 하고 안녕을 말하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필연적으로 자아낸다. 그래서 어쩌면 모두가 만족하는 최고의 이별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아쉽지 않은 이별은 없다. 모든 이별은 아쉬움을 동반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제 떠났다. 그들의 콘서트에 가서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었는데 해외에 있어 직접 배웅을 해주지 못했다. 작별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이다. 멀리서나마 그들의 앞날을 응원한다. 그들의 삶에 별 일 없는 일들만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