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에서 제공한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후에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때 종종 웃음거리의 소재로써 온라인상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짤이 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생각해보면 저 말처럼 인간의 역사를 잘 대변하는 문구도 얼마 없는 듯하다. 기술의 진보와 별개로 역사를 돌아보면 좋지 않은 사건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반복되어 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 자체의 진보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인터넷을 쓰고 고화질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우리는 그 사실을 대부분 잊고 산다. 그걸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은 현시대에서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반복되었을 때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들을 보았을 때 말이다.
<디트로이트>는 1967년의 사건을 다뤘지만 현재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영화다. 흑인 몇 명이 백인 경찰의 손에 아무 이유 없이 죽었고 사람을 죽인 경찰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건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평생 그 기억을 가지고 고통스럽게 살아갔다. 그날 저녁의 사건과 그 이후의 처리 과정들에서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차별과 혐오가 무차별적으로 흘러넘쳤던 그곳에서 인간적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몇몇의 양심 있는 행동뿐이었다. 혹시 그때의 디트로이트가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모습을 바꿔 와있는 것은 아닐까.
굳이 구체적인 사건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세계는 그때와 비교하여 별반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피해자와 가해자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가해 방식은 과거에 비해 더 교묘하고 은밀하게 둔갑해서 우리 일상을 갉아먹고 있다. 어떤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차별받아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인종이든 성별이든 성적 지향이든.
래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인간은 바뀌지 않았고 아픈 역사는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 말이 인간은 바뀌지 않아야 하고 아픈 역사는 반복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은 바뀌고 아픈 역사는 반복되지 않았다”로 문장을 수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지 않고 수많은 ‘래리’들이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중세의 마녀사냥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노예제도와 여성의 참정권 제한 같은 사태들이 얼굴을 달리 한 채 다시 나타날 수 없도록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이 현실을 안전한 곳으로 간주하고 새로운 물결을 위험으로 생각하여 거부한다면 “인간은 저절로 나아지며,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역사는 진보한다고 우리가 착각하는 한, 점점 나빠지는 이 세계를 만든 범인은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