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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ul 18. 2021

코로나 블루, 마음에도 방역이 필요해

호락호락 뉴스레터 이야기, 아홉 번째

호락호락 뉴스레터 이야기, 일곱 번째

 어린이집에서 급히 하원을 요청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가족 중 한 분이 확진자와의 접촉이 의심되어 선생님도 급히 격리되셨고, 원아들도 모두 하원하여 당분간 가정 보육으로 전환한다는 통보였습니다. '올 게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상이 모두 꼬여버렸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집 문턱까지 찾아온 코로나19가 그저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선생님과 가족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아 며칠 뒤 어린이집은 다시 긴급 보육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어린이집들은 가정 보육을 할 수 없는 가정들을 위해 긴급 보육을 하고 있습니다. 감염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가정 보육이 가장 좋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은 맞벌이 부모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항상 하던 대로 어린이집에 보낼 뿐이죠. 선생님께서 보내주시는 사진을 통해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는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아이에게 참 미안합니다. 뾰족한 수가 없는 이상,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등원하며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우며 생활 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마음의 빚을 덜어봅니다. 그래서 만 2세 아이도 외출 때마다 항상 마스크를 챙깁니다. 놀다가 아빠가 어쩌다 '턱스크'를 하고 있다면 심각한 표정으로 마스크를 올려 코까지 덮어줍니다. "아빠, 코로나 때문에 써야 돼!"


 집이 아닌 곳에서는 마스크가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다 보니, 아이의 귀여운 표정을 담지 못해 늘 아쉽습니다.


 이렇게 코로나19가 바꾼 것은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생각에도 미치고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염려, 빈약해지는 관계에서 오는 불안, 예전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 생각하면 할수록 무력해집니다. 아래 기사(바로가기)처럼 이런 심리적 증상을 통칭하는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바로 '코로나 블루'입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우울한 기분을 뜻하는 블루가 합쳐져 만들어진 신조어다. (...) 코로나 블루는 의학적인 질병이라기보다는 사회현상에 따른 심리적 증상에 가깝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고 매일 숨 가쁘게 발송되는 경고 문자와 코로나19와 관련한 뉴스는 작은 기침이나 재채기 같은 증상만 있어도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닐까?”하는 건강염려적인 증상을 유발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장기화에 '코로나 블루' 급증 (중앙일보)>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아픔들이 더해져 안 그래도 지친 마음을 더욱 시퍼렇게 만듭니다. 저 또한 코로나19로 큰일들을 겪었습니다. 어린 시절 방학을 하면, 맞벌이이신 부모님을 대신해 보호자가 되어주셨던 외할머니가 소천하셨습니다. 요양원에 계셔 뵐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슬픔이 너무 컸습니다. 주변 이웃들로부터 존경받으며, 평생을 따뜻한 마음으로 사신 외할머니신데 삶의 마지막 하루조차 가족들과 떨어져 쓸쓸하게 보내셨다는 생각에 코로나19가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뿐 아니라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하고, 운영이 어려워진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10여 년간 창업 멤버부터 함께 했던 회사였습니다. 수개월 전부터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비롯해 그동안 했던 모든 업무를 다른 직원들에게 인계해주고 나와야 했습니다. 담당하던 본부와 연구소장으로서 더 이루고 싶은 일들도 많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멈춰야 했습니다. 겪고 싶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저 또한 혼란과 무력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방송에서는 좋은 소비 거리였습니다. (출처: EBS(좌),MBC(우))


 "지금의 무기력은 정상적인 리액션입니다. (...) 코로나19 정국은 지금 온 국민이, 온 지구인들이 모두 다 트라우마의 당사자인 상황이에요. 그래서 트라우마의 매커니즘을 알아야 우리가 지금 처하고 있는 너나 할 것 없는 무기력, 불안에 대해서 대처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을 수 있어요."


 심리 치유서, <당신이 옳다>를 집필한 정혜신 박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바로가기)에서 지금과 같이 전 국민, 전 세계적으로 닥친 코로나 상황 안에서는 우울하고 무기력한 감정을 한 개인의 문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조차 불가능한 이 거대한 정신적 상흔을 어느 누구도 극복할 수가 없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정서적 불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황을 인정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스스로 통제 가능한 행동부터 찾아 무언가 해볼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무기력 속에 무엇이라도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책상 정리, 집 청소처럼 평소 미뤄둔 일, 자기 전 일기 쓰기, 기상 후 스트레칭처럼 시작과 끝을 스스로 정하여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소소한 것부터 해본다면 답답한 상황 속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에서 의식을 잃은 주인공이 깨어나는 것을 표현하는 클리셰 하나가 생각납니다. 클로즈업된 주인공 손이 등장하고 손가락 끝마디가 파르르 움직입니다. 영화는 그 떨림부터 큰 반전이 시작됩니다. 저 또한 이 지친 마음을 추슬러 인생의 큰 변곡점들을 경험하고 있는 이 과정을 소재로 키보드를 두드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손끝으로 말이죠. 그렇게 또래의 밀레니얼 세대 부모들을 위한 뉴스레터를 만들었고, 뜻 맞는 이들과 멋진 회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훗날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아빠는 이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고 반전을 만들었다고.

unsplash@adriensking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너무나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지금을 과거의 기억으로 떠올리는 날이 오겠죠. 그때 참 힘들었다고, 수고 많았다고 서로에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이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다만 그가 어떠한 이유로 이 같은 이야기를 했는지 한 문장만으로는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상황과 맥락도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혹시라도 문장 순서를 바꿔 이야기했다면 어떨까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긍정의 의미가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문장의 나열만으로 희망과 절망이 나누어지듯이 우리가 품는 생각들의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 삶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 블루 속, 육아와 일을 비롯해 많은 짐을 안고 사는 우리. 세상 살이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뭐, 언제는 안 그랬나요. 심호흡이라 생각하며 한숨 한 번 크게 내쉬어보자고요. 기지개같이 켜어보면서요. 호락호락에서 코로나 블루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았습니다.

<호락호락 뉴스레터 9회차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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