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사진: 우크라이나의 일러스트레이터 시네자나 수쉬(Snezhana Soosh)의 일러스트
지금 근무하는 부서로 이동한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다.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전공도 상이하고 업무도 생경했건만 승진하기 쉬울 거라는 말에 덜컥 옮긴 것이 화근이었다. 힘있는 부서라는 말에 솔깃한 것은 경솔한 선택이었다. 부서가 힘이 있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속한 부서가 권력이 있다고 내가 권위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일을 잘 해야 힘있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내 일을 잘 하려면 그 일이 즐거워야 한다. 매일매일 일을 해야 하는데, 매일매일 재미가 없으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회사 생활에 슬럼프가 오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인데. 나이도 먹을만큼 먹고 회사도 다닐만큼 다닌 시점에서 심각한 권태감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이런 넋두리를 잘 들어줄 사람을 알고 있다. 어느 날 퇴근길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였다.
- 아빠, 내 커리어는 완전히 꼬인 것 같아. 난 이 부서를 오는 게 아니었어. 다른 부서를 가는 것도 어렵고, 이직도 어렵고, 이대로 내 경력이 끝나면 어쩌지?
- 네가 회사를 하루이틀 다닐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은 이 회사든 다른 회사든 다니지 않겠냐. 긴 직장생활에서 이 부서나 이 업무가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것만 해도 큰 수확인 거지. 그렇게 해서 나와 맞는 일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거야. 다음에 다른 곳을 갈 때는 적어도 네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더 잘 알게 되지 않겠냐.
마흔이 다 된 딸의 미숙한 투정에 아버지는 동요하지도 않고 동조하지도 않았다. 다만 철저한 제3자의 관점으로 말할 뿐이었다. 언제나처럼. 아마도 이것은 아버지가 거쳐온 기나긴 사회생활의 풍파와 관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아버지의 아버지는 이런 조언을 해 준 적이 없다. 아니,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투정을 부리거나 어려움을 토로해 본 적 없는 삶을 살아왔다. 맨땅에 맨몸으로 부딪치며 아버지가 이루고 터득한 것들. 딸은 여러 번 현실의 길바닥에 무릎을 찧고서야 아버지의 시간을 짐작한다. 그렇게 쌓이고 삭힌 아버지의 시간이 지금 딸에게 답하고 있다. 얼마나 더 아버지의 시간에 빚을 져야 온전히 완성된 인격체로 홀로 설 수 있을까.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각종 ‘아빠 찬스’, ‘부모 찬스’를 딸은 누린 적 없다고 생각했다다. 아버지 덕분에 해외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부모님 덕분에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스펙 한 줄을 위해 학교 경력개발센터에 발도장을 찍으며 애원하던 과거가 생각나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딸은 부모 찬스를 차고 넘치게 누렸다. 아버지 덕분에 밥 굶지 않고 무사히 취직할 수 있었고, 부모님을 부양할 필요도 없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기댈 수 있는 부모님이 있었으니 부모 찬스를 누린 것이고, 고난을 발판삼아 필요한 조언을 해 주는 아버지가 있었으니 아빠 찬스를 누린 것이다. 부모님이야 말로 ‘자식 찬스’를 누려 마땅한데 훌륭한 자식이 되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고, 이 연세에도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 싫다며 꾸역꾸역 일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미안할 따름이다. 어째 딸이 느끼는 ‘아빠 찬스’의 무게는 나날이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