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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ul 26. 2022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고요?

우리나라의 결혼에는 이상한 국룰이 있다. 바로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 이 제도가 대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많이 바뀌어서 반반(무많이...?)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자인 내 눈에도 이상한데 남자들은 이 관습이 얼마나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싶다. 아니, 아들 가진 부모들은 죄라도 지었나? 아들이란 이유로 집을 해 줘야 한다니. 


남자가 집을 해 오는 것에 대한 예단비는 집값의 10%, 그것도 반은 돌려받아야 한다는 둥 말이 많은데, 여성의 사회진출이 이토록 증가한 사회에서 이건 여자들에 대한 엄청난 불평등이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소득이 있는 여성 인력을 이렇게나 무시하다니. 원시사회라 힘 센 일꾼들이 직접 집을 지어야 하는 시대도 아니고, 남자가 부엌에 서는 것이 흉이 되는 시대도 아닌데, 어느 시대의 유물인지 모를 일이다. 


모르긴 해도 혼수 싸움, 고부 갈등의 많은 부분이 바로 이 집 문제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우리 아들한테 이만한 집을 해 줬는데! 혼수가 고작 이게 뭐냐! 나 때는 이랬으면 집안일은 여자가 다 했는데 감히 우리 아들에게 설거지를 시켜! 괘씸한 마음도 이해가 간다. 특히 요즘처럼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시점에는 더더욱. 서울 기준으로 요즘 시기에 시댁에서 집을 해 준다면, 엎드려 절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뭐 나는 잘났으니까, 우리 딸이 잘났으니까 당연히 이 정도는 남자가 해 와야 한다구요? 단지 염색체 하나가 달라져서 남자로 태어난 것 뿐인데 너무 가혹한 댓가 아닙니까? 잘난 여자가 집을 해 가면 안 되나요? 


실제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고소득, 전문직 여성이 늘었기 때문인지 주위에서 여자의 경제력이 더 우세한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러다가는 여자가 집 해가고 남자가 혼수 해가고, 여자가 돈 벌고 남자가 집안일 하는 것이 더 익숙한 상황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미드 [빅뱅이론]의 한 장면. 등장인물 하워드 왈로위츠는 학력도, 소득도 아내가 훨씬 높아서 아내를 대신해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하기로 한다. (출처: 빅뱅이론, CBS)


문제는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에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일에서든, 어떤 조직에서든, 권리만을 주장하고 의무를 다 하지 않는 삶을 살 수는 없다. 만약 결혼을 할 때 여자라는 이유로 당연히 남자가 집을 해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에 따른 의무도 마땅히 져야 하는 것 아닐까. 서로가 권리만을 주장한다면 갈등이 야기되는 것은 당연하고,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것 또한 뻔한 일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남남이었다가 갑자기 공동체가 된 두 사람이 이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첨예하고 가장 극적인 대립이 시작되는 관계이다. 


결혼 전의 가족은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개의 경우 부모는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헌신해 준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그런 지극한 보살핌을 받은 '자식'들이 만난 것이다. 우리 엄마는 이렇게 해 줬는데, 우리 아빠는 이렇게 해 줬는데... 의 기억으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한 자식들이! 


물론 이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받았던 대로 상대에게 해 주려는 경향이 있어서, 사랑과 돌봄을 충분히 받은 사람들일수록 상대에게 더 따뜻하고 더 배려심 깊은 태도를 보이기 마련이다. 이 또한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른 차이가 크기 때문에, 자신의 결핍을 상대에게 베풂으로써 채우려는 사람도 있고, 사랑을 받는 것에만 익숙해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결혼 전까지는 의무보다는 권리를 주로 행사하며 살아온 두 사람이 갑자기 '의무'라는 큰 짐들을 오롯이 둘이서 나눠 짊어져야 하는 데서 많은 갈등이 야기된다. 집이나 혼수, 각종 비용과 같은 유형의 의무에서부터 집안일과 육아와 같은 무형의 의무까지. 성격차이라던가 취미생활은 이 다음 단계, 서로에 대한 '존중'의 문제이다. 권리와 의무의 배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단계까지 나아갈 수도 없다. 


그리고 권리와 의무는 성별을 떠나 둘만의 상황에 맞게 정해지는 것이다. 다른 부부가 이렇게 한다고 우리 부부가 꼭 그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고,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다. 내가 누리고 싶은 권리는 상대도 누리고 싶고, 내가 지기 싫은 의무는 상대도 지기 싫다. 부부도 결국 두 '사람'의 결합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거나 다투기 전에, 우리가 익히 아는 두 가지 도덕적 황금률을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 마태복음 7장 12절
己所不欲, 勿施於人.
(기소불욕, 물욕어인: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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