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는 언제나 전업주부가 되기를 꿈꿨다. 결혼만 하면 당장 회사는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다. 당당한 전업주부가 되기 위해 전세금 정도는 모아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이 늦어지자 성질 급하게 조그만 집도 장만해 놓았다.
그랬던 나는 39살에 겨우겨우 결혼을 하게 됐는데 공무원 남편과 결혼하게 됐다. 이 말인즉슨, 고액연봉을 받는 직업은 아니란 소리다. 안정적인 직장이긴 하지만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나도 남편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양가에 의지할 수도 없다. 빈말을 못하는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10년만 더 일하면 좋겠어. 그 다음에는 내가 책임질게.”
그러나 작년에 남편의 동의 하에, 나는 14년 정도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 잠시 백수가 되었다. 주말부부를 하던 우리는 드디어 종일부부가 되었고, 나는 꿈에 그리던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전업주부가 되고 보니, 나는 전업주부를 하기에는 너무 오래 일했다. 직장인 특유의 ‘성과/보상’과 ‘인정‘ 두 가지에 너무 익숙해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직장생활에서는 매우 중요한 동기부여 수단이 되지만, 집안일에서는 적용이 어렵다.
집안일은 하루종일 해도 성과라는게 보이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깨끗하게 설거지를 해 놓아도 밥 한 끼 먹으면 다시 엉망이 되고, 아무리 빨래를 해도 또 쌓인다. 회사에 다닐 때는 오전에는 이 업무를 끝내고 오후에는 저 보고서를 써야지, 이런 게 가능했는데 집안일은 점심먹고 돌아서면 또 저녁해야 되고, 차리는건 1시간인데 먹는건 10분이고,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내가 만든 요리는 맛이 없다 하고… 이런 식이다 보니 재미가 없었다.
좀 쉬어볼까 하면 창틀 먼지가 거슬리고, 화장실 곰팡이도 닦아야겠고, 분리수거가 쌓이는 건 참을 수 없고… 쉴 새 없이 일을해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고, 아무도 노동의 대가를 주지 않는다. 직장인은 그래도 얄팍하게나마 금융치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나. 그런데 주부의 삶이란 이렇게 고되게 일을 하면서도 아무런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 돈을 벌지 못하니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도 애매했다. 내가 얼마를 버는지가 내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데도 나는 자꾸 조바심이 나고 있었다.
전업주부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전업주부인 것이 불안한 나.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만세를 부르며 회사를 뛰쳐나와 놓고는 다시 사원증을 그리워하는 나. 딱 6개월만 놀자고 해 놓고는 6일도 지나지 않아 구직사이트를 기웃거리는 나.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었다. 두 달도 채 지나지도 않아 나는 이대로 영영 백수가 될까 불안해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리고 다행히 퇴사한지 3개월여 만에 꽤 괜찮은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출근시간이 전 회사 대비 무려 2시간이나 앞장겨지긴 했지만.
“취직이 안되거나 회사 다니기 싫으면 그냥 쉬라”던 남편은 누구보다 기뻐했다. 내가 불안해하고 자존감을 잃어가는 것 같아 옆에서 보는 자기도 불안했단다. 다시 출근을 하니 몸은 힘들어 보여도 훨씬 활기차 보인다고 했다. 돈 때문은 결코 아닐거다. 전업주부 하라고 멍석을 깔아줘도 못하는 걸 보면 역시 난 일할 팔자인가 보다. 이러다가는 남편이 말한 10년이 아니라 그냥 정년퇴직(을 할 수 있다면)까지 쭈욱 다니게 될 지도 모르겠다.
전업주부가 아니면 어떠랴. 퇴근한 남편을 맞이하고 저녁상을 차려주는 아내를 꿈꿨지만, 내 길이 아닌 것을. 앞치마를 하고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고 남편이 퇴근하면 저녁상을 차려주고… 나의 이상은 좀처럼 늘지 않는 요리실력과 함께 실현 불가한 것이 되었다. 대신 함께 출퇴근을 하며 치열한 사회의 전장에서 전우애를 다지는 아내도 제법 괜찮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부인이 퇴사하고 놀다가 금방 재취업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남편을 보면 ‘워킹와이프’의 삶도 꽤 뿌듯한 일이다.
그래 남편, 10년 그까이꺼 다녀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