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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un 09. 2024

마흔 둘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마흔 둘에 아이를 낳았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마흔 하나였다. 40대 산모가 많아졌다고 뉴스에 나오지만 병원에 다니는 내내 나 외의 40대 임산부를 만나지 못했다. 마흔 둘 엄마는 산후우울증 같은 것은 생길 겨를이 없었다.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도 매 초가 소중했다. 아기가 밤새 울 때면 초보엄마라 미안하다는 마음 뿐이었다. 뼈에 무리가 가니 아기를 안지 말라는 얘기는 들리지도 않았다. 내 손목보다는 내 아이를 택했다.  


수시로 아이를 안았다. 손 탄다며 더러는 만류했지만 아이에게 사랑받은 기억을 심어주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아이에게 사랑받는 느낌을 받고 싶은지도 몰랐다. 품에 안긴 아기의 체온이, 아기 냄새가 주는 사랑을.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몰랐는데, 아기가 수유시간이 되어 칭얼대는 소리에는 바로 눈이 떠졌다. 아마도 신은 아기를 보내주시면서 아기를 돌보는 능력도 덤으로 주시는 모양이었다. 엄마될 준비를 하고 엄마가 되는 사람은 없다. 엄마가 되고 나면 어쩌면 신이, 어쩌면 본능이, 어쩌면 아이가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분유가 모유보다 잘 나오는 세상이지만 부러 모유수유를 했다. 나이 많은 엄마인 것이 마음에 걸려 뭐라도 해 주고 싶었다. 다행히 아기는 모유를 잘 먹어 주었다. 품안에 안겨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열심히 젖을 먹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가 몇 살이 되어도 나는 지금 이 아기의 모습으로 아이를 기억하겠구나. 아이는 자라서 학교에 가고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자기의 아이를 낳을 것이다. 사춘기가 오고 여자친구가 생기고 부모를 기쁘게도 아프게도 할 것이다.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아빠가 될 것이다.


언제 어떤 모습이든 내 눈에는 여전히 내 품에 안긴 아기로 보이겠구나. 나는 너에게 시간을 입은 모습으로 남겠지만 너는 나에게 영원히 지금의 모습이겠구나. 나이든 엄마는 두려운 게 많다. 아기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을까 두렵고, 나이가 들면 아이에게 짐이 될까 두렵다. 미안한 것도 많다. 학교에 갔을 때 늙은 엄마라 아이가 창피할까 미안하고, 이 나이가 먹었는데도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서 미안하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거랬는데, 나는 왜이럴까.


그래서 이것은 아이와 함께한 날들에 대한 기록이다. 아이를 만나기까지 쉽지 않았던 여정과 아이를 품고 있었던 날들, 아이가 세상에 나온 후의 이야기들. 뭘 잘 알아서 쓰는 것은 아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산전수전 겪으며 세상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육아는 전혀 모르겠다. 20대 엄마라면 어리고 철없어 모른다고 변명이라도 할텐데 40대 엄마는 그냥 나이 헛먹었나 자책만 할 뿐이다. 다만 기억하고 기록하는 이 이야기가 나중에 아이에게는 사랑의 증거가, 누군가에게는 출산과 육아의 축복으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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