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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기 Mar 03. 2020

내 곁에 항상 가까이... 예스터데이

예스터데이

음악을 다룬 영화들은 스토리를 막론하고 관객들의 감성을 이끌어내는 어떤 힘을 가진다. 그건 귓가에 전해지는 익숙한 멜로디가 관객 스스로가 가진 추억과 더불어 숨어있던 무언가를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고 부족한 스토리로 관객들의 감성만 자극하려 한다면 그건 시도하지 않은 것만 못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가 그랬다. 락 밴드 ‘퀸’의 음악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며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감성을 끌어내고자 노력했지만, 이도저도 아닌 스토리와 연출력에 김이 새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영화가 故 프레디 머큐리의 어떤 면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헷갈리고 있는 걸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에 느낌표가 붙고는 한다. 어쨌든 ‘음악’을 다룬다 할지라도 각본의 중요성 또한 간과하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강조할 수 있는 건 이 영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트레인스포팅(1996)’으로 젊은 청춘의 방황과 혈기를 화면 곳곳에 가감 없이 뿜어냈는가하면,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로 스토리텔링에도 강점이 있음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대니 보일 감독이 관객들의 감성 자극을 위해 ‘음악’에도 손을 댔다. 영화 ‘예스터데이(2019)’이다.


영화 ‘예스터데이(2019)’는 낮에는 식료품 마트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밤에는 가수로서의 꿈을 위해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살아가는 무명 뮤지션 잭 말릭(히메쉬 파텔 분)의 도전기를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젊은 청춘의 꿈에 대한 인생 도전기를 다룬 작품은 아니다. 어느 날 잭은 매니저인 엘리(릴리 제임스 분)와 함께 소규모 래티튜드 공연을 다녀오던 중 우연히 전 세계가 약 12초간 정전에 빠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겪게 되고, 이와 동시에 버스와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병원에서 깨어난 잭은 이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서 영국의 전설적인 락 밴드 ‘비틀즈’가 사라진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잭은 자신만이 기억하는 ‘비틀즈’의 음악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비록 거짓말이긴 하지만 ‘비틀즈’의 주옥같은 음악들을 자신을 통해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방향을 선택하며 새로운 제 2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그 속에서 잭의 거짓에 대한 자책은 물론 항상 곁에 있었지만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자신의 사랑에 대한 용기를 되찾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음악의 인기에 기대려고 하다가 스토리텔링에서 여지없이 무너진 ‘보헤미안 랩소디(2018)’와는 성격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뮤지컬 형식을 빌려 음악을 통한 추억과 가사에 충실한 스토리를 전했던 ‘맘마미아(2008)’와도 그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 굳이 찾자면 ‘비틀즈’의 탄생과 유사한 스토리를 가지면서 음악과 스토리텔링에도 탁월한 연출을 선보였던 영화 ‘댓 씽 유두(1996)’에 좀 더 가깝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 만큼 비틀즈의 ‘음악’에 기대고 있기는 하지만, ‘음악’ 은 옆에서 거들 뿐, 주인공 잭의 인생 도전기와 사랑과 성공에 대한 방황, 그리고 거짓된 명성에 기대고 있는 자책 등을 풀어내는데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비틀즈’라는 세계적인 밴드의 음악을 통해 남녀의 속내에 숨어있는 사랑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노래 하나하나, 그 속에 담겨있는 가사 한 문장, 한 단어에 신경을 써가며, 오래됐지만 사랑을 속삭이고 싶어 하는 젊은 남녀의 풋내 나는 사랑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가 고급 진 연출력으로 좀 더 세련되게 전달되지 못한 채 비교적 눈치 채기 쉽도록 처음부터 드러나 있는 모습이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약간은 어설프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의 초반은 분명 좋았다. 소규모 래티튜드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엘리의 자동차에서 내려 자신의 자전거로 갈아타는 장면은 화면의 전환을 동시에 안겨주는 좋은 미장센이다. 당연히 그 순간 전 세계의 불이 꺼지고 이와 함께 잭이 자동차 사고를 겪는 것 또한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너무 대놓고 한꺼번에 많은 미장센들이 표출되어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도록 배려를 해준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영화의 초반 장면들은 재미난 구성과 아기자기한 연출력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필자의 시각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영화의 타이틀로 ‘왜 굳이 ‘예스터데이’를 선택했을까?’였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도 그렇고 ‘맘마미아(2008)’도 마찬가지였지만, 수많은 비틀즈의 명곡들 중 굳이 ‘예스터데이’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은 아직도 제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사고를 겪고 난 후 잭이 처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불렀던 곡이 ‘예스터데이’였다는 점에서 ‘비틀즈’를 꺼내드는 첫 장면에 나름의 의미를 둘 수 있다는 점과, ‘사랑’이 쉽고도 단순한 것이었는데 이미 떠나간 그녀를 아쉬워하며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후회하는 가사의 내용이 영화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타이틀을 내세웠다고 해석하는 게 보다 타당할 것으로 사료된다.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에드 시런(에드 시런 분)은 그래미와 빌보드를 휩쓴 영국을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이다. 그와의 작곡 배틀에서 이미 써둔 곡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을 때 필자는 잭이 과연 어떤 곡을 끄집어낼지 매우 궁금했다. 과연 자신의 곡을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비틀즈’의 곡을 꺼낼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여기서 잭이 불렀던 곡은 비틀즈의 ‘The Long and Winding Road’로 알고 보면 잭이 계속해서 열창하는 대부분의 곡들의 가사가 결국 엘리에 대한 그의 사랑의 속내를 다루고 있음을 중반 즈음부터 눈치 채는 건 결코 어렵지 않다. ‘Yesterday’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주저함에 대한 반성의 회고록이라면, ‘The Long and Winding Road’는 사랑을 고백하기까지의 망설임에 대한 고찰이다. 쉽고 간단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서는 멀고도 험한 길을 달려가는 마냥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에둘러 표현한 가사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다루는 ‘Hey Jude’는 두려워하지 말고 결국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보라는 잭의 선택에 대한 격려이다. 

모스크바의 한 남성과 리버풀의 한 여성이 잭을 찾아와 비틀즈의 음악을 기억한다고 얘기하며 그에게 건네준 쪽지를 통해 그는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을 찾아간다. 이 때 존이 그의 인생이 행복했다고 얘기하며, 평생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데 노력했다고 얘기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진실을 말하라고 전하는 존의 따뜻한 말에, 잭이 드디어 용기를 얻어 웸블리에서 진실을 고백하게 되는 장면은 영화가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먼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계기가 된다.  영화에서 사람들이 잊어버린 것들은 전 세계 누구나 알 정도로 사람들에게 문화적인 충격과 영향력을 미쳤던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사람들의 일상 속에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며 생활의 일상을 채우고 있었던 사소한 것의 일부였다는 사실이다. 영국인들에게 ‘비틀즈’는 물론 ‘코카콜라’와 ‘시가렛’, 그리고 ‘해리포터’ 등은 인류사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차지한 대표적인 문화적 상품임과 동시에 그들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채워준 일상 그 자체였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잭의 일상을 채워주고 있던 ‘엘리’에 대한 사랑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특별함을 꿈꾸지만 인생의 가장 특별함이 항상 자신의 곁에서 가장 가까이 존재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니 보일 감독 특유의 메시지를 적절히 전달하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비틀즈’의 음악은 그저 거들뿐, 자신의 곁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는 아름다운 영화, ‘예스터데이(201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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