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꿈이라는 건 제약 없이 마음대로 훨훨 날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랑스럽다. 그 누구의 눈치 없이 오직 내 마음 속에서 그 꿈이 나와 함께 성장한다는 건 분명 커다란 매력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에게도 진정 평등한 게 바로 꿈이 아닐까 싶다. 매년 12월 10일은 세계 인권의 날이다. 두 차례의 치열하고도 아픈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 세계인들은 인권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당시 유엔에 가입한 58개국들은 오랜 고심 끝에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세계 인권 선언’을 채택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보장받아야 하는 모든 자유와 권리를 규정해 그 동안 다양한 제도 속에서 수많은 차별을 받았던 여성과 노약자, 소수 민족 등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는 이러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과 큰 관련을 내비친다. 초반에 나오는 에이미의 대사, “꿈을 왜 창피해해야 해?”는 당시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에 강력한 반기를 드는 말이기도 하다. 1868년 출간 이후 수없이 많이 리메이크되어 그야말로 불멸의 베스트셀러라는 칭호를 얻고 있는 작품을 배우이자 감독으로 유명한 그레타 거윅이 그녀다운 연출로 색깔을 입혔다. 영화 <작은 아씨들>(2019)이다.
루이자 메이 올커트의 소설 <작은 아씨들>은 워낙 오랫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거듭된 변신을 보여준 작품이다. 소설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만화로 반복된 변신 속에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소구점을 제대로 변화시키며 심심한 재미를 안겨주기도 했다. 필자가 어릴 적 텔레비전을 통해 만났던 만화 <작은 아씨들>은 시대적 배경과 환경이 주는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네 자매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이를 꿋꿋이 이겨내고 성장하는 그야말로 한 편의 성장 드라마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네 자매의 개성은 제각기 달라 서로가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서도 한편으로 이를 강점으로 각자의 고난을 헤쳐 나가는 과정이 아동들로 하여금 즐기고 배울만한 다양한 요소들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었지 않나 싶다.
그레타 거윅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감독이자 배우이다. 노아 바움백 감독과 함께 한때 미국 독립영화계를 지탱시켰던 그녀는 짧은 기간 동안 인상 깊은 메시지를 보인 작품들을 두루 보여줬다. 그녀가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영화 <프란시스 하>(2012)는 뉴욕에서 무용수를 꿈꾸는 한 연습생 프란시스가 평범한 삶 속에서 어떻게 독립하고 심적으로 성장해가는 지를 독특한 재미와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에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 또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어린 대학생이 바라본 뉴욕에 대한 모습을 다양한 시각에서 담아냈다. <작은 아씨들> 또한 그렇다.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당당히 ‘의상상’을 수상한 것 답게, 마치家 네 자매들이 입고 있는 옷들의 색감과 치장을 대비시켜 각자의 성격과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구분시켰다. 원작이 담고 있는 네 자매의 개성, 즉 배우를 지망하는 첫째 메그(엠마 왓슨 분),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둘째 조(시엘샤 로넌 분),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분), 그리고 화가의 삶을 희망하는 넷째 에이미(플로렌스 퓨 분)를 시각적으로 구분 지었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읽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만들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줄 아는 다채로움을 지녔다. 단순히 보면 네 자매의 색깔을 분명히 해 그 개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그들의 조화를 통해 유년 생활의 성장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는 표현이 걸맞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둘째 ‘조’를 중심에 내세워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시각을 이겨내고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일어서는 과정을 그려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시대적 배경을 끌어안고 그 속에서 성장해가는 각각의 색깔을 드러낸 네 자매의 성장드라마를 보여주기엔 각자가 드러내는 악센트가 너무나 차이나기 때문이다. 첫째 메그는 영화 속에서 배우를 지망한다고 하기에 이를 표현하는 장면이 부족한 편이다. 파티와 공연에 쉽게 이끌리고 옷감의 유혹에 빠져들 줄 아는 허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성격이 배우를 지망하는 그녀의 꿈과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셋째 베스는 착하고 조용하며 얌전하다. 건반을 두드리며 리듬을 조율할 줄 아는 이 치고는 그 성격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점이 아쉽다. 로렌스(크리스 쿠퍼 분)씨와 이어지지 못하고 중반 이후 영화 속에서 그 흔적을 조용히 지우는 모습이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던 이유다. 막내 에이미는 활달한 성격답게 마지막 반전까지 강하다. 항상 사건의 중심에 그녀가 보였던 건 꼭 우연의 일치라고는 할 수 없겠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를 비춰보면 둘째 ‘조’에 집중된 스포트라이트는 작가로서 마지막 작품을 완성시켜가는 시점과 연결된 당연한 역할이 될 수 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과 연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독 그레타 거윅은 이 작품을 통해 당시의 여성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조명하고 그 속에서 여성들이 겪게 되는 고난과 편견을 어떤 방식으로 이겨나가고자 했는지를 자신만의 연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다만 이러한 표현법이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는 한번쯤 돌이켜볼 부분이다. 겉으로 보기에 ‘조’의 관점을 드러내려 애썼지만 네 자매에게 할당된 역할과 분량이 비단 사회적 약자로서의 당시의 삶을 이겨내는 과정과 모습을 충분히 그렸는지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메그가 브룩(제임스 노턴 분)과 결혼하는 장면에 조와 나눈 대화는 자신의 오랜 꿈과의 타협이기 때문이며, 병약한 베스의 부재는 더욱 이러한 이유에 덧칠을 하고 있다. 에이미가 프레드(대쉬 바버 분)의 청혼을 거절하고 로리(티모시 샬라메 분)를 선택한 건 다른 방향을 나타냈을지라도 결국 마지막에 조가 로리를 받아들이고자 했음은 그녀가 오랫동안 걸어온 길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그레타 거윅 감독은 ‘조’에 집중된 지나친 관객들의 관심보다는 네 자매에게 할당된 시각을 평균화시켜 그녀들의 성장이야기에 재미를 불어넣는 쪽을 선택했다고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메그가 자신이 선택한 가난에 익숙해지고 에이미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채워줬던 로리를 선택한 것처럼, 조 또한 자신과 일생을 함께 했던 글과 가족에 자신의 일생을 담아냈음이 이를 입증한다. 여기에 영화 중반에 흘러나오는 대고모(메릴 스트립 분)가 내뱉은 말, “혼자 힘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어.”는 이들이 혼자일 때보다 함께 할 때 보다 즐겁고 보다 행복하며 보다 아름다웠음을 상기시켜주는 말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둘째 조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글로써 표현한 네 자매의 아름다운 유년시절을 풋풋한 영상미로 그려낸 작품이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들만의 성장 방식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그녀들이 어떤 추억을 만들어내고 어떤 방향으로 커가는 지를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기도 하다.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색채로 자기가 마주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들의 유년시절을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기에, 이 영화가 주는 재미가 한층 더해진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