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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기 Apr 24. 2020

꿈을 꾸니 어느 새 반을 넘어섰어

<나도 작가다> 공모전_초보작가의 내 생애 첫 출간 도전기

생각이 많은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그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더 늦기 전에 늘어진 테잎을 되돌려 보는 것이랄까. 어른들은 항상 넌 아직 모르는 게 많다고 하셨다.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에게’를 듣고 있자니 가사가 귓가에 확 와 닿아 감긴다. 갑자기 영화 <건축학 개론>(2012)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를 다 보았을 때 기억에 남은 건 딱 세 가지. ‘기억의 습작’, ‘납득이’, 그리고 ‘수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공감할 것 같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종종 머릿속을 헤매는 노래다. 이 곡만 들으면 남부터미널과 뱅뱅사거리가 떠오르곤 한다. 나만 알고 있는 추억들. 설레고 즐거웠던 추억이기에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들. 추억을 되짚기 위해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영화를 보면서 그 감상을 글로 남기게 되었다. 학창 시절 수학한 전공도 그랬고 영화 비평에 나름의 관심을 갖게 되어 영화평론가들의 책도 즐기게 되었다. 이동진, 허지웅 등 모두가 알만한 유명 평론가들의 책을 접하며 생각을 넓히고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는데 재미를 붙였다.    



책을 내고자 마음먹게 된 계기에는 하나의 동기부여와 격려가 있었다. 바로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가 그 주인공으로, 많은 이웃들이 그 분의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고 있듯이 나또한 그 분의 이웃으로 틈틈이 올라오는 소식을 접하고 있던 중이었다. 지난 해 그 유명한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를 발간하시는 과정에서 올라온 그 분의 글에 “저 또한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댓글을 달면서 부터다. 말 그대로 나는 언제쯤 이런 책을 한 권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과 소박한 바람의 댓글이었다. 어느 날 이동진 평론가께서 내 댓글에 글을 남겨주셨는데, “책을 쓰는 경험은 소중하니 꼭 도전하기를 바란다.”는 격려가 주된 내용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그냥 무턱대고 툭 던진 말이었다. 헌데 그 말이 내게는 하나의 동기부여와 격려가 됐었나 보다. 그 때 이후로 ‘내가 정말 출판에 도전할 수 있을까?’하고 스스로에게 반문하며 용기를 내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해 8월 이후 올해 3월까지 책을 내는 여정은 정말 멀고도 긴 하루의 연속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출판사의 원고투고용 이메일 주소를 수집했고, 덕분에 적게는 수십여군데의 출판사에 수차례에 걸쳐 원고를 투고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난생 처음 투고라는 걸 해봤는데 마치 젊은 시절 취업 원서를 보내는 마냥 떨리는 느낌이 새롭게 다가왔다. 가끔씩 출판사에서 이메일이 오기라도 하면 가슴이 덜컹거릴 정도로 떨렸다. 원고 투고를 해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수십여 군데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면 메일로 회신을 보내주는 곳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내 경우는 대략 오십여 곳 기준으로 약 오분의 일 정도의 비율로 메일 회신이 왔었는데, 모두 다 원고를 잘 접수했다는 내용과 함께 원고 검토에 시간이 걸리니 기다려달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가슴 떨리며 메일을 클릭한 것치고는 실망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나마 이렇게 메일로 안내를 해주는 곳은 참으로 감사한 거였다. 대부분은 메일조차 보내주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 달, 두 달을 보내는 동안 원고 투고는 계속되었다. 한 달 여가 지나고나니 하나둘씩 출판사에서 투고에 대한 답을 보내줬는데, 이 또한 보낸 곳 대비 오분의 일도 되지 않았고 그나마 답변은 모두가 거절의 메시지였다. 옥고를 검토했으나 아쉽게도 출판사 방향과 다르다는 뭐 그런 내용이 전부였다. 그 말이 맞았다. 출판사마다 출판 방향과 장르가 정해져있는데 그 동안 너무나 무식하게 아무 곳이나 붙잡고 원고를 뿌려대고 있었던 거다.

 

  

그 때부터 교보문고, 영풍문고, 알라딘, 예스24, 반디앤루니스 등을 검색해 ‘영화’ 관련 서적을 발간한 곳들을 선별하기 시작했고 다시 수차례에 걸쳐 원고를 보냈다. 그런 와중에도 거절의 메일들은 일상처럼 계속 내게 날아왔고 말이다.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이젠 출판사 메일이 도착하면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대략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전문가도 아닌 무명작가에게 선뜻 출간하자고 손을 내민다는 게 이상할 정도라고 해도 무방했다. 계속해서 출판사 문을 두드리던 도중 어느 날 한 출판사로부터 약간의 여지를 남긴 메일을 받게 됐다. 그 여지에 희망을 걸고 직접 출판사로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으신 출판사 대표께서는 내 전화에 조금 당황한 기색도 있었지만 다소 희망적인 얘기를 들려주셨다. 원고의 일부만 읽고 회신을 했다고 하면서 좀 더 검토해보고 다시 연락을 주시겠다고 하신 거다. 그리고 다시 연락을 기다리길 며칠,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로부터 다시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내게 건네준 한 마디는 “계약합시다.”였다. 원고 투고를 시작한 지 대략 두어 달 만에 얻은 결과였다. 그 후 출판사를 찾아가 계약서에 사인하고 초고를 뒤집어 다시 쓰고 교정하는 작업이 밤을 새며 반복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올해 3월 초 드디어 따끈따끈한 내 책을 손에 쥐어보게 됐다.


이 과정을 얘기하는 이유는 “나 이렇게 고생해서 책을 내게 됐다.” 뭐 이런 단순하고도 자기만족적인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사실 이 과정을 잊지 않고 내 인생의 한 편에 남겨두려는 목적이 더 크다. 누군가 내게 그랬다. “책 한 권만 내고 끝낼 게 아니지 않느냐.” 그 때 처음에는 “제 주제에 책 한 권만 내고 끝낼 겁니다.”라고 얘기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책을 내고나니 그 과정에 만족하면서도 그 결과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생각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책을 쓴 나보다 책을 접하고 읽는 독자 분들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책은 ‘저자’와 ‘독자’ 사이의 거리를 이어주는 소통의 도구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저자의 표현력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는 독자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작은 블로그에 영화 감상을 남기기 시작했던 지난 몇 년간의 끄적거림이 이렇게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것도 블로그를 찾아주시고 내 글을 읽어주시는 이웃들과의 소통이 우선이었다. 이를 모아 책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이분들의 응원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영화를 보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언젠가는 또다시 좋은 책으로 독자 분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좋아하는 영화를 실컷 보고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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