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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기 May 06. 2020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땐

소피의 선택


#1. 말할까 말까 할 때는 하지 말고, 먹을까 말까 할 때도 먹지 말고.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기 힘드니 되도록 아껴두라는 얘기이고, 음식 또한 과식하면 먹지 않는 것만 못하니 속을 비워두라는 얘기이다. 뭐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이다. 이 또한 상황에 따라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어떻게 할까. 살아온 경험 상 이것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것 같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무언가에 빠져드는 것에 대한 고민이라면 과감하게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반대로 유행을 좇아 주식에 과감하게 투자한다거나 좋아하는 이성에게 준비 없이 성급하게 다가가는 거라면 가급적 말리고 싶다. 삶을 돌이켜보면 성공보다 실패한 경우가 많기에 나오는 얘기이다.


#2. 삶에서 선택의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1993년 ‘일요일일요일밤에’를 통해 소개된 ‘TV인생극장’에서 개그맨 이휘재는 언제나 주먹을 꽉 쥐고는 ‘그래, 결심했어.’를 외쳤다. 그가 선택한 인생은 어떤 결정이었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선택의 순간이 인생의 방향을 바꿨을지언정 그 결과가 긍정과 부정, 혹은 선과 악으로 완전히 구분되지는 않았던 탓이다. 선택은 어떤 방향이건 존중되어야 한다. 선택은 무게로 표현될 수 없을 만큼 모든 선택이 제각기 그 가치를 담고 있어서이다. 메릴 스트립이 주연을 맡은 영화 <소피의 선택>(1982)을 좋아하는 건 단지 그 영화가 재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외부의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지고, 그 선택은 어느 쪽이든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3. 필자는 메릴 스트립의 그 선택을 진심으로 존중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한 여인의 인생이 왜 이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여인의 인생을 되짚어보며 마음으로나마 그녀를 구원해줘야 한다는 무언의 눈빛이 담겨있어서일 거다. 그렇다고 우리가 움직인다면 그녀의 영혼을 늦게나마 구원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삶의 처절한 희생양이었다. 그래서 선택의 결과가 안겨주는 메시지의 깊이로 인해 필자는 이 영화를 사랑한다. 결과가 그랬을지언정 그녀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슬프고 슬플수록 아름답다. 인생은 이리저리 흐르는 선택의 반복이다. 이 연속된 흐름 속에서 우리는 결말이 나뉘는 경우의 수를 마구 늘려간다.


#4. 따지고 보면 정답은 없다. 단지 인생을 풀어나가는 해답만 존재할 뿐이다. 각자가 흩뜨려 놓은 가지각색의 색깔을 두고 굳이 우위를 점하고자 노력하는 건 앳된 어리석음이다. 어떤 선택이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잡담이 길어졌다. 어떤 선택을 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는 선택의 결과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의 여파는 가늘고 길게 우리 삶에 낙서를 해대고 있고 필자의 삶에도 덕지덕지 지워지지 않는 펜들이 잉크줄을 늘여가고 있다. 최근 들어 영화를 쳐다보는 눈이 줄었다. 그저 기억을 더듬을 뿐이다. 블로그에 흔적을 남기는 것도 어렵다. 시간이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건 핑계이자 좀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도 끈을 놓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렇게라도 계속 연을 이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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