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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기 May 14. 2020

b급 정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이벤트 호라이즌


영화를 보면 흔히 듣게 되는 단어로 ‘b급 정서’라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할지언정 단어의 활용에 크게 동의하지는 않는다. 영화 제작에 있어 목적과 대상을 달리하는 다양성이 존재할 뿐, 하나의 작품을 대상으로 줄 세워 그 등급을 나누는 행위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예산을 투입해 제작한 영화나 저예산을 투입해 제작한 영화 모두가 제작진의 노력과 땀을 포함하고 있기 마련이고 그 목적에 알맞게 제 역할과 효과를 발휘했다면 그걸로 충분한 성과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b급 정서’라는 말은 적어도 사용하기에 따라 다른 의미로 통용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폴 앤더슨 감독은 이러한 b급 정서를 마구 풍기는 작품을 많이 만들기로 유명하다. 잘 알려진 작품은 1995년 작, <모탈컴뱃>(1995)으로 무술을 소재로 한 동양적 정서에 판타지를 가미한 서양적 정서를 잘 섞어놓았다. 여기에 시리즈로 하나의 역사를 일궈낸 <레지던트 이블>(2002)은 배우 밀라 요보비치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감독은 그녀와 결혼에 성공하기까지 했으니 어찌 보면 이 작품에 많은 공과 애착을 들이는 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런 그가 <레지던트 이블> 이전에 그의 연출 스타일을 제대로 정립한 작품이 한 편 있다. 1998년 벨기에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바로 그 작품,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1997)을 한 번 들여다볼까 한다.



영화 <매트릭스>(1999)로 유명한 배우 로렌스 피시번과 <쥬라기공원>(1993)으로 잘 알려진 배우 샘 닐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다수의 평론가들과 관객들로부터 b급 정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와 함께 관객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해진 SF장르를 겉으로 표방하면서도 동시에 공포, 호러 스타일을 가미해 보는 이들의 눈요기를 제대로 채워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연출 방향이 확고해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한 장르에 대한 솔직함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자칫 내용의 방향성이 뒤처지고 연출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90년대 후반의 제작 시기를 감안한다면, 스스로 SF장르에 눈으로 보는 화려함과 즐거움을 요구하는 스타일이 강해서였을 수도 있겠다.


인류의 우주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이를 바라보는 상상력은 무한한데 비해, 아직까지 인류의 우주 개발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우주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과 상상력은 그 범위를 계속 넓혀나가고 있는데, 폴 앤더슨 감독은 채 많은 작품을 다루기 이전부터 우주에 대한 본인의 상상을 극대화시켰던 것 같다. 영화의 내용은 미국이 드넓은 우주를 단시간에 항해할 수 있는 워프기술을 개발하면서 이벤트 호라이즌, 즉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다른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기술을 실험하면서 부터다. 이를 실험하기 위해 개발된 우주선 ‘이벤트 호라이즌’ 호는 어느 날 실험 도중 원자로 사고로 파괴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는 정부의 거짓 발표였으며 어느 날 사고로 흔적도 없이 행방불명된 후 사고 7년 만에 해왕성 부근에서 뜬금없이 다시 나타나게 된다. 당연히 이를 조사하기 위한 구조선이 해당 지점으로 여럿 급파되지만 보내는 족족 모두가 다 연락이 두절되며 실종되기 일쑤였고, 영화는 ‘루이스 앤 클락’ 호를 투입해 계속된 구조 작업에 뛰어드는 과정을 그렸다. 


이 정도 스토리만 살펴보면 SF영화로써 손색이 없을 정도의 충분한 볼거리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폴 앤더슨 감독은 여기에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공포를 접목시켰다. 이는 상황에 따라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적 불안감을 꺼내기도 하고 종교적 시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다차원적인 세계를 드러내기도 하는 등 화면과 구성을 다채롭게 연결시키는 장점이 된다. 더불어 감독이 추구하는 연출 방향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아까 얘기한 b급 정서를 논하자면 적어도 필자는 이를 b급 정서로 판단하기 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받아들이고 평가해도 좋다는 생각이다. 어찌 되었건,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개척했다는데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의 배경과 스토리는 이와 유사한 구성을 가진 작품들을 몇몇 떠오르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배경 설정은 영화 <에이리언>(1979)의 구성을 닮았으며, 극한 환경에서 구조 및 탐사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여기에 사람들의 심리까지 건드린다는 측면에서 영화 <스피어>(1998)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에이리언>과는 ‘공포’를 표현하고 접근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으며, <스피어>와는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차이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영화 <에이리언>이 외계생명체를 통해 공포의 대상을 한정시키고 이의 캐릭터 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우주가 가진 미지의 영역에 대한 결과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한 점이 탁월하다고 한다면, 이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은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상상하고 추측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색다른 시각에서 표현하는데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영화 <스피어>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을 가졌을 때 인간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시각으로 다소 권력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시도하는 측면으로 접근했다면, <이벤트 호라이즌>은 개개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자괴감, 즉 과거에 상처를 입은 사건에 대한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개인 심리의 불완전함을 지적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은 앞에서 언급한 <에이리언>을 비롯해 다양한 영화들의 장점을 쏙쏙 뽑아낸 키치영화라는 평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독창적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의 영역을 확보해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된다. SF와 호러의 절묘한 조화는 물론 화려한 영상미도 선보이고 거기에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점 또한 충분한 장점이다. 작가 스티븐 킹이 다소 줄거리는 어수선할지라도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와 장엄한 공포감이 살아 숨 쉰다고 극찬한 점은 어쩌면 그러한 장점이 영상 속에서 눈에 잘 띄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상 서사를 그리는데 있어서 나름 강인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이라는 데는 분명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마냥 까맣고 멀게만 느껴지는 미지의 세계 우주를 바라보며 색다른 꿈을 꾸고 싶다면 이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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