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한국 국제부부의 가족 문화차이
‘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려고 합니다. '
결혼식 청첩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이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는 결혼의 의미를 잘 나타낸 문구라고 생각한다. 각자 고유한 환경과 경험의 차이만큼 한 국가, 같은 언어권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결혼할 때도 서로 다름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한다. 하물며, 비행기로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의 다른 국가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자라온 국제부부의 문화차이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 2021년 8월, 나는 스웨덴에서 석사 유학을 시작함과 동시에 스웨덴인 남자와의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아직 신혼이지만 그동안 결혼생활에서 다양한 문화차이를 경험해 왔다. 물론 연애 기간 동안에도 문화 차이를 어느 정도 경험했었고, 한국인과 결혼을 했다고 해도 서로의 다름은 충분히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대부분의 차이들은 크게 놀랍거나 대수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게 중에 겪어보기 전엔 정말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신기한 차이도 있었고, 혹은 한국과는 정말 달라서 적응하는데 둘 다 오랜 시간이 걸린 차이도 있었다. 오늘 글에서는 그런 문화차이들을 중심으로 내가 경험한 스웨덴-한국 국제부부의 문화차이, 특히 가족에 관련된 문화차이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단, 내가 모든 한국 사람을, 나의 스웨덴인 남편이 모든 스웨덴인을 대변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개인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나와 내 주변을 통한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글이라는 것을 염두하며 읽기를 바란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아주버니, 손윗동서, 시누이 등등… 한국에서는 결혼 이후에 알아두고 써야 하는 호칭이 참 많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처가 또는 시댁 가족들을 만날 때 호칭들로 서로를 부르는 것을 듣고 자랐기도 하고, 워낙 부모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가족 호칭에 대해 교육해 주셔서 나는 이러한 한국식 호칭에 참 익숙한 사람이다. 꼭 남편뿐만이 아니라 다양하고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해보면, 우리나라만큼 호칭이 많으면서 엄격하게 지키는 나라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영어로는 ‘Uncle’이라는 한 단어로 해결될 관계들이 한국어로는 삼촌, 외삼촌, 고모부, 이모부로 세분화되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다가 이 많은 호칭들로 서로를 부르게 되었을 까 궁금했는데, 경향신문 이혜인 기자의 2019년 2월 4일 자 기사에 있는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신지영 교수님에 따르면, 과거에 존재했던 신분제도와 우리나라 전통의 가족 중심적인 체계, 그리고 한국어의 공손성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반대로 지금 살고 있는 스웨덴에서는 누군가를 호칭으로 부를 일이 거의 없다. 노르딕 국가들은 얀테 (Jante) 문화 (‘나는 남들보다 특별하지 않음’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있을 만큼 어떠한 직위에 의해 누군가를 호칭으로 높이거나 낮춰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학교에서 교수님들과 대화할 때도 따로 ‘교수님’과 같은 호칭을 붙일 필요 없이 이름을 부른다. 이는 남편의 가족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인데, 남편의 부모님을 시어머니, 시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남편의 동생들을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통성명을 하고 그분들도 나의 이름을, 나도 그분들의 이름을 부를 뿐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특히 시부모님께 무언가를 부탁드려야 하는 상황이면 그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야기하는 게 마치 친구 대하듯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익숙해지니 ‘며느리’ 나 ‘형수님’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것과 나도 상대방의 이름을 자주 부르면서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서 참 좋다.
어찌 보면 한국이 호칭이 많고, 호칭에 대해 엄격한 나라 상위에 속하는데 반해 스웨덴은 호칭이 없고, 이름만으로 부르는 나라 상위에 있다 보니 이 호칭에 대한 문화가 결혼하고 나서, 뿐 만 아니라 평소에 학교 생활을 하면서도 느끼는 가장 큰 문화차이인 것 같다. 두 나라의 문화 모두 고유한 역사와 어디에 가치를 두는지에 따라 다른 것인지라 어느 한쪽이 맞고 틀린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개인적으로 두 경우의 장단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남편이 한국에 계신 우리 부모님께 “아버님”, “어머님” 하고 부르는 모습을 볼 때나, 한국 가족, 친척들이 다 같이 모였을 때 호칭을 통해 부를 때나, 우리가 가족으로 함께 묶여있다는 확실한 정체성과 가족 간의 끈끈함이 느껴져서 좋은데, 때로는 형식적이고 상하관계가 너무 뚜렷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반대로 스웨덴에서 서로의 이름으로도 충분히 서로를 부르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복잡한 호칭관계를 다 외울 필요가 없고,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를 떠나 내 이름으로 자주 불려진다는 점에서 좋은데, 모두를 이름으로 부른 다는 점에서 가족과 타인의 차이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다음으로 가장 놀랐던 문화차이 중 하나는 명절 혹은 가족 모임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경험해 온 명절은 아침 일찍부터 친척들이 한 집에 모여서 할머니를 필두로 엄마와 고모가 다양한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나와 사촌 동생은 상차림을 돕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었다.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닌 평범한 가족 모임이나 식사 자리에서도 집에 초대한 누구 한 명이 음식을 도맡아서 준비하거나, 한 명이 혼자 치우는 것보다는 준비과정과 뒷정리 과정을 초대받아 온 나머지 가족들도 함께 도운 적이 더 많았었다.
그래서 스웨덴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명절을 맞아 남편의 부모님 집에 모이게 되었을 때, “미리 가서 음식 준비를 돕거나 아니면 필요한 음식을 준비해 가야겠지?”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께 여쭤봐도 남편에게 물어도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도착하는 시간도 편할 때 아무 때나 오고, 돌아가는 시간도 편할 때 아무 때나 가면 된다고 했다. 게다가 식사가 다 끝난 후에 정리라도 도와야 할 것 같아서 남편한테 눈치를 줬는데, 오히려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나에게 제발 앉아서 쉬고 편하게 있으라고 하셨다. 처음엔 이런 명절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일하는 동안 젊은 나와 남편, 남편의 동생들이 쉬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손님으로 초대한 건데 왜 그렇게 불편하게 생각해? 넌 손님이야. 손님이 집주인의 일을 대신해 주면 되겠어? 반대로 우리가 초대했을 때도 우리가 준비하고 우리가 정리하면 돼.”라고 말해 주었다. 이후에도 스웨덴에서 가진 모든 가족 모임에서 장소가 어디가 되었든 초대를 한 사람과 초대를 받아서 온 손님의 구분이 명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 문화 차이는 가족 간의 문화차이를 느끼기 오래전, 스웨덴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에 한국 친구들과 스웨덴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한국 친구들과 스웨덴인 친구들이 누군가의 집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난 후, 한국 친구들은 끝까지 자리에 남아서 뒷정리를 하는 동안 스웨덴 친구들이 다 집에 간 것을 보고 속으로 정이 없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초대하고 대접하는 데 있어서의 문화차이였을 뿐이었다. 사실 어렸을 때, 할머니, 엄마, 고모가 평일에도 바쁘게 지내시면서 명절 동안도 바쁘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라서인지, 초대한 자와 초대받은 손님의 구분이 명확한 스웨덴의 문화가 참 합리적이고 오히려 정감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가족과 친척들을 집에 초대하고, 내가 좋아서 초대한 만큼 손님을 대접하면서 초대한 사람도 초대받는 사람도 즐거운 것이 나에게는 더 의미 있는 명절처럼 생각된다.
커버 사진 출처: 온리워니
삽입 사진 출처: 온리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