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시모프 Aug 29. 2022

<놉> 늙은 영웅이여 잘 있거라

개그맨이었던 조던 필 감독의 영화는, 그 이름만으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렸다. 그의 영화는 무엇이라 장르를 특정 짓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영화는 무척이나 흥미롭고 쉽고 결말이 확실하다. 작품성 좋다는 영화나 호러영화들이 확실한 결말을 주지 않아서 관객을 찝찝하게 만드는 데 비해, 조던 필 감독은 그런 게 없다. 또한, '충격적이다'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펼쳐진다'와 같은 문구로 호객을 하지만 그의 영화는 사실 다 보고 나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와 주제들이다. 그런데 그것이, 새롭고 세련되고 재미있다.


조던 필 감독의 영화는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게 좋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개봉한 <놉 NOPE>역시, 제목에서부터 이게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보통 영화의 포스터나 예고편에서 적당한 소개 멘트로 이 영화가 무엇인지 대충 정의 내려주는데, <놉>은 그런 게 없다. 정보를 알고 가야 하는 관객들에겐 좀 불편할 수는 있지만, <놉>은 말 그대로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은 아니다'에 가깝다. 예고편에 나온 것은 무언가 하늘에 있고 그것을 찍어서 대박 나려고 하는 남매의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에 비행접시처럼 생긴 것에게 쫓기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놉>은 예고편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잔혹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래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길들인다는 명목의 폭력

영화의 시작은 미국의 한 방송 프로. '고디'라는 이름의 침팬지를 데려다 놓고 하는 TV 시트콤이다. 그렇다고 이게 '고디'를 표면적으로 때리거나 학대하는 방송은 아니다. 대화로 추측해 보건대, 침팬지를 가족의 일원처럼 길들이고 사람처럼 대하면 그들도 기뻐할 것이라고, 그리고 사람처럼 혹은 우스꽝스럽게 반응하는 고디를 보고 웃음을 주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방송이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은 이런 식으로 동물이나 다른 인종들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돈을 버는 짓을 많이 했다. 19세기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국제박람회에서는 산업 물품들 뿐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등 타 인종들을 데려다 전시했었다.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로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나훔 3장 6절-


다른 생명에 대해 길들인다는 명목 아래 폭력을 행하는 것은, 사실 산업화된 인간 문명의 원죄와도 같다. 노예 계급 없이 자유인은 없었고, 길들인 동물과 노예를 이용해 문명을 일궜다. 특히 아프리카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만들면서 그들을 길들였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이름과 문화는 말살되었다. 이런 이야기는 드라마 <뿌리>에 잘 나와있다.


비단 백인이 흑인을 노예로 길들이는 것뿐 아니라, '반려동물'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폭력도 무시하지 못한다. 동물이 도망가지 못하게 가둬두고 '귀여워서''내 힐링을 위해' 인간처럼 키우는 것이 과연 그들을 위한 행복일까? 개는 그렇게 길들이려던 동물들 중에 특별히 인간과 더 교감 있던 늑대의 후손에서 고르고 골라진 녀석들이다. 사실 인간이 사육하는 모든 동물들이, 야생의 본능을 상실한 채 말을 잘 듣는 성향의 동물만 골라서 길러낸 결과다. 그래서 단지 야생보다 더 순하고, 인간의 말을 잘 들을 뿐이다.


하지만 길들여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사실 침팬지는 인간보다 크기는 작지만 힘이 세고 호전적인 동물로, 같은 침팬지끼리 전쟁도 하며 상대방을 고문하기도 한다. 침팬지 고디는 그런 상황이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고디는 백인들이 자신을 구경거리, 놀림거리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생물들은 스트레스를 안에 쌓았다가 폭발시키는 계기가 있다. 선을 넘는 것. 선을 넘기 전에는 도망가던 약자이다가, 선을 넘으면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 고디에겐 그것이 풍선이 터지는 소리였다. 마치 안에 풍선처럼 부풀어 있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터진 것이다. 그리고 배우들을 참혹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OJ(오티스 주니어 - 대니얼 칼루야)는 헤이우드 말 목장의 주인이자 말 조련사이다. 원래 목장에서 소를 돌보는 직업은 카우보이(Cowboy), 카우보이가 타는 말을 돌보는 직업은 랭글러(Wrangler)라고 한다. 랭글러는 카우보이의 하위 개념으로, 현대에는 영화에 나오는 말을 다루고 케어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OJ의 직업이 그것이다. 말을 길들이고, 길들인 말을 촬영장에 제공하고, 말을 잘 다룰 수 있도록 관리한다. OJ와 그의 동생 엠(에메랄드 - 키키 파머)은 그들이 최초의 영화에 나오는 말을 탄 흑인 기수의 자손임을 강조한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모른다. 그 흑인도 역시 랭글러였을 것이다. OJ는 촬영장에서 럭키를 관리하려 하지만, 백인 배우나 스텝들은 거기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랭글러는 찬밥신세인 것이다.


무언가를 길들인다는 것은 그것을 하나의 개체로 존중하지 않고 대상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말에 대한 주의사항을 무시하다가 말이 놀라게 되고, OJ와 그의 말 럭키는 해고된다. 미국에 노예로 잡혀온 아프리카 계열 흑인들은, 백인들에 의해 수백 년 길들임을 강제당했지만 결국 노예해방을 이끌어냈고 근대까지도 흑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OJ라는 이름은 미국에선 누구나 알만한 'OJ 심슨 사건'을 떠올리게 하지 않은가. 'OJ 심슨 사건'은 유명한 풋볼 선수인 OJ 심슨이, 백인인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쪽에서는 흑인이 백인을 죽였다는 확신을 가지고 무리한 증거 증인조작을 했고, 한쪽에서는 흑인을 풀어주려는 이유로 무리한 변호를 했다. 결국 초점이 너무 OJ 심슨에게 맞춰져 다른 가능성은 수사하지도 못한 채, OJ 심슨은 무죄로 풀려나게 되었다. 흑인 인권이 얼마나 백인에게 대상화되어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무언가를 길들인다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인 행위인가. 인간끼리 뿐만 아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인간, 혹은 생물을 대상화하고 길들이려고 한다. 영화에서 흑인인 OJ도 결국 말을 길들여 먹고살고 있지 않은가.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가 다른 동물들에게 했던 전시, 사육, 도축 등의 폭력적인 모든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는 과연 내가 좋아서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 걸까? 그 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혹은 '고디의 풍선'이 없어서 길들여진 척하는 것일까.




고디와 주프

주프(주피터 - 스티븐 연)는 'Gordy's Home!'이라는 시트콤의 한국계 미국인으로 출연했다. (출연자 이름을 보면 'Ricky Jupe Park'이므로 한국계다) 거기에서 주프는 침팬지 고디와 주먹 인사로 교감을 나누며, 가장 친근한 캐릭터였던 듯하다. 주프도 역시 거기서 살짝 웃기는 조연을 맡고 있다. 즉 이 드라마는 주프와 같은 입양아, 또 침팬지 고디를 통해 미국이 얼마나 다정한 가정인지 보여주려는 백인의 자위와도 같은 시트콤이라 할 수 있다.


'Gordy's Home!'처럼 인간이 아닌 생물이 주인공인 가족 시트콤을 꼽으라면 1986년 방영된 <외계인 알프>를 들 수 있다. 알프는 몸은 원숭이에 얼굴은 개미핥기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그런 동물이나 외계인은 없으므로, 인형을 만들어서 연기했다. 주 내용은 외계인 알프가 지구에 불시착해, 한 백인 가족과 같이 살게 되며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엉뚱하지만 악의는 없는 알프는 그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과 감동을 준다. 점점 지구인에게 동화되지만, 정부에 잡혀가 외계인 시설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51구역'으로 끌려가는 결말이다. 한국에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마침 한국에서는 비슷한 내용의 <아기공룡 둘리>가 인기 있을 시기였기도 하다.


외계인 알프.

여기서 특이할만한 점은, 외계인의 형상이 오징어나 머리가 큰 하얀 난쟁이의 모습이 아니라 유인원의 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인형 연기를 해야 하고 포유류처럼 친근함을 주기 위해 선택한 결과물일 수도 있지만, '백인보다 작고 못생기고 어두운 피부를 가진 원숭이 모습'을 한 알프가 백인 가정에서 사랑을 배우며 자라난다는 설정은 영화 내에 등장하는 가상 시트콤인 'Gordy's Home!'과 매우 유사하다. 물론 이 드라마에서 알프가 고디처럼 학살하는 일은 없었다.


주프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아이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주프가 아역으로 활동했던 모습이나 커서 성장한 모습을 보면, 철저하게 백인 사회에 동화되고 길들여지려고 한 인물이다. 그는 한물 간 아역배우지만 자신의 최고 시절은 여전히 카우보이 소년 역할을 맡았던 때였고, 부인은 백인이며 헐리우드 외곽에서 추억의 카우보이 팔이를 하고 있다. 주프는 카우보이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고디가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비밀 박물관에 'Gordy's Home!'물건들을 모아 멋지게 박물관을 차려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Gordy's Home!'을 멋진 추억처럼, 혹은 그 사건을 재미있는 해프닝처럼 이야기하지만 그와 대비되는 실제 사건은 지옥 같은 풍경으로 그려진다. 고디는 출연자들을 마구 때려서 죽이고, 특히 여자아이였던 마리 조 엘리엇(소피아 코토)은 얼굴을 뜯어 먹히기까지 한다. 주프는 그 모든 일을 테이블 밑에서 떨면서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 일을 회상하는 성인이 된 주프는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다.


고디는 자신을 길들이려고 하는 사회 속에서, 풍선 소리와 함께 길들여짐을 거부했다. 고디와 주프는 둘 다 이방인이고 백인들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고디는 그것을 알았기에, 숨어있는 것이 주프라는 것을 안 순간 다시 평소의 고디로 돌아와 주먹 인사를 건네려 한 것이다.


어쩌면 주프의 마음속에는 고디가 현실의 영웅처럼 남아있던 게 아닐까? 그 사건의 트라우마가 깊은 상처처럼 남았을 텐데 어째서 그 일을 그렇게 웃으며 회상하고, 아주 아름답게 꾸며서 비밀의 방 속에 간직해 놨을까. 그리고 주프는 고디와 자신을 통해서 그 누구보다도 길들인다는 것에 대한 폭력을 잘 알고 있었을 터다. 그런 그가, 무슨 존재인지도 모르는 진 자켓(비행접시모양을 한 그것)을 그냥 길들이려고 했던 걸까? 아니면 길들였다고 믿은 걸까?


'Gordy's Home!'의 오프닝에 나오는 고디의 옷과 쇼를 하는 주프는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그는 고디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관객들은 진 자켓이 결국 폭주해서 모든 것을 빨아들여, 그 공연에 모인 사람들을 다 죽인 것을 보고 다시금 고디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마치 주프는 이 모든 것을 바라왔던 것 같다. 자신이 '풍선을 터트릴 수 없는'사람이었기에, 누군가 다시 고디가 일으킨 저항을 자신의 인생에 일으켜주기를. 자신이 고디가 될 수 있는 그날을. 그가 진 자켓의 폭주를 보고 지은 표정은 허망함이 아니었다. 그저 거대한 자연의 힘, 혹은 신의 강림을 목도한 경외감 같은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었구나'하고. 주프는 결국 고디의 학살을 재현했다. 구경하던 백인들은 모두 빨려올라가 죽었으니까.


백인들에게 가장 길들여졌다고 생각한 주프조차, 마음 깊은 곳에선 고디처럼 길들여지지 않았던 셈이다.



차원을 넘어선 존재, 진 자켓

OJ는 비행접시모양을 한 그것을 진 자켓(Jean Jacket)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진 자켓은 동생인 엠이 처음 길들이려고 했던 말의 이름이다. 진 자켓이 외계인의 우주선이 아닌 '동물'이라고 확신한 순간, 그들은 그것을 길들여 영상을 남기려 한다. 처음 등장했던 말을 탄 흑인 기수의 이름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 영상을 찍은 사람은 이름이 남았다. 그래서 오프라 쇼에 나갈 수준의 엄청난 영상을 찍겠다는 일념으로 뭉친다. 거기엔 카메라를 판 마트 직원인 엔젤(브핸든 페레아)과 유명 촬영감독인 앤틀러 홀스트(마이클 윈콧)가 함께한다.


진 자켓의 디자인에 대해서 영화를 본 관객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다. 특히 많이 거론되는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등장하는 괴수, 사도들이다. 물론 사도가 굉장히 다양한 형태가 있기에 괴물 디자인으로 따지면 엇비슷해 보이는 게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오피셜 한 이야기에 따르면 심해 생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한다. 실제로 가장 비슷해 보이는 생물을 꼽으라면, 심해 해파리인 스티기오메두사(Stygiomedusa)가 있다. 특히 천조각처럼 흩날리는 모습은 매우 비슷하다.


길이가 10m가 넘는 거대 심해 해파리 스티기오메두사


또한, 해파리들은 유생 때와 성체 때의 모습이 많이 다르기도 하다. 특히 유성생식을 하는 해파리는 에피라 상태에서 성체로 변형하는데, 그 모습이 진 자켓이 비행접시 형태였다가 풍선 모양으로 변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리고 스티기오메두사와 같이, 해파리의 학명은 메두사(Medusa)를 붙인다. 절대 보면 안 되는 존재라는 점에서 진 자켓과 의미가 연결된다.


해파리의 생애. 에피라와 성체를 비교해보자.


하지만 여기에서 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진 자켓의 눈과 몸의 펼쳐짐이다. 비행접시 형태일 때도 슬쩍슬쩍 몸체가 벌어지고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지만, 접히고 펼쳐지는 이음새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눈은 어떻게 펼쳐지는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한 반복되는 육면체처럼 보인다. 우리가 인지하기 쉽지 않은 구조를 가진 형태, 그리고 무한히 펼쳐지는 육면체. 그것은 3차원을 넘어선 입체, 초입방체를 떠올리게 한다. 아래 그림에서 보이는 정팔포체의 움직임은 진 자켓의 눈처럼 보이는 부분과 굉장히 흡사하다. 그렇다면, 진 자켓은 3차원 존재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3차원 물체인 정육면체를 4차원 물체로 만든 초입방체인 정팔포체. 영어로 테서랙트라고 한다. 어벤저스에 나오는 테서랙트가 바로 이것을 모티브로 했다.
3차원 정육면체를 펼치면 2차원 정사각형들이 되듯, 테서랙트를 펼치면 정육각형의 모임이 된다.


생물은 내가 사는 차원 이상의 것을 인지할 수 없다. 1차원은 선, 2차원은 면, 3차원은 입체다. 만약 2차원 세계에 3차원 생물이 왔다가 간다면 어떻게 보일까? 또는 그 반대라면? 그것을 다룬 <플랫랜드 Flatland>라는 재미있는 고전 SF가 있다. 여기서 주인공은 2차원인 정사각형인데, 1000년에 한 번씩 오는 3차원인 구에게 끌려가 3차원을 경험하게 된다. 2차원 세계에선 평면밖에 보지 못하므로, 모든 것이 선분으로만 보인다. 돌았을 때 모양이 바뀔수록 하층민인데 남자 중에 제일 하층민은 삼각형이고 여자는 돌면 보이지 않는 선분이다. 제일 고위층은 성직자인 원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3차원인 구가 나타났을 때 구라고 인식을 못하고 성직자인 원인 줄 알았다. 2차원은 3차원의 단면밖에 인식을 못하기 때문이다. 구의 단면은 원이다.


이렇듯, 만약 4차원 혹은 그보다 높은 차원의 물체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그 물체의 3차원인 부분밖에 인식을 못할 것이다. 진 자켓이 과연 보이는 전부일까? 그것이 만약 차원을 넘어선 존재라면 우리는 그것을 절대 알 수 없다.


'차원이 다른 존재와의 사투'라는 점에서 또 하나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 있다. 야마다 요시히로의 만화 <극한의 별>이다. <극한의 별>은 화성으로 가게 되는 최초의 우주인을 다룬 만화지만, 그들은 화성에서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존재 '초입방체'를 만나게 된다. '초입방체'는 우주인들을 안에서부터 거꾸로 뒤집어 우주인들을 죽인다. 마치 3차원인 우리가 2차원 종이를 뒤집듯이 손쉽게. 초입방체는 공간을 무시한 움직임을 하며 주인공들을 경악시킨다.


초입방체를 만나는 주인공. 초입방체의 그림자는 3차원이다.

우리의 우주가 4차원 시공간(3차원 입체+1차원 시간)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상대성이론에 비해 M이론으로 정리된 초끈이론은 우리가 사는 우주가 11차원이라고 말한다. 다만 4차원을 넘어선 다른 차원들은 말려있어서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11차원을 설명하는 입체 중에, '칼라비-야우-다양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6차원을 함축한 입체로 설명하는 것인데, 입체는 다음처럼 복잡한 모양으로 그려진다. 아래 그림 말고도, 값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진 자켓의 촉수는 스티키오메두사같은 모습이지만, 몸통 부분의 변화는 칼라비-야우-다양체처럼 우리가 인식하기 힘든 복잡한 입체 구조를 하고 있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진 자켓은 3차원을 넘어선 존재라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다른 의미로 '차원을 넘어선 존재'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영웅'이다. 진 자켓(Jean Jacket)은 이름부터 히어로를 표방하고 있다. 마블 히어로의 아버지인 스탠 리는 히어로 캐릭터를 지을 때 성과 이름의 이니셜이 같도록 지었다. 피터 파커(Peter Parker), 스티븐 스트레인지(Stephen Strange), 브루스 배너(Bruce Banner)등이 그렇다. 그래서 이름과 성이 같은 이니셜은 미국 히어로의 클리셰가 되었고, 나이트 샤말란의 <언브레이커블>에서도 주인공 데이빗 던의 이니셜 역시 그렇다.


또 진 자켓이 내려올 때 보면 비행접시라기보단 카우보이 모자를 아래에서 본모습과 비슷하다. 서부극에 등장하는 카우보이는,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들 이전에 영화에서 등장한 초창기 히어로들이다. 카우보이와 초능력 히어로. 둘 다 일반 시민은 가지지 못한 차원을 넘는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진 자켓은 그런 의미로, 영화산업의 카우보이, 히어로를 상징한다.




카우보이의 끝, 새로운 시작

히어로인 슈퍼맨이나 토르가'우연히' 마음씨가 착해서 인간을 위해 봉사해서 그렇지, 그들이 인간에게 별 마음이 없거나 인간을 싫어하기만 했어도 최고의 빌런이 되어 인간은 순식간에 전멸했을지도 모른다. 히어로와 빌런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영웅 서사는 고대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이어져왔지만, 그것은 지배계급의 힘과 우월성을 정당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헐리우드가 '미국 영웅주의' 영화를 주로 만들어내는 것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카우보이도 원래는 히스패닉과 흑인이 주로 하던 직업이었지만, 어느새 백인들의 상징이 되어버렸고 악당인 '인디언'을 죽이는 것이 영웅처럼 묘사되었다. 마블의 히어로는 나치를 모티브로 하는 '하이드라'와 싸운다. 지금이야 정치적 올바름을 이유로 흑인과 여성 히어로들이 들어가지만, 카우보이 때부터 원래 히어로는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놉>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제는 늙어버린 백인 히어로 영화의 종말을 선언하고 이름도 없는 소시민들이 세상을 구원하는 방식의 새로운 이야기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방법을 화끈하게 제시한다.


우선 OJ는 그것이 동물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아마 야생동물을 조련해본 조련사의 직감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발 더 떠서, 야생동물을 화나고 불안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눈을 보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유일하게 빨려 올라가지 않는 안전한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재미있게도 OJ의 풀네임은 오티스 주니어(Otis Junior)이고, 오티스는 현대식 엘리베이터를 처음 만든 사람의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또 더불어서, 엘리베이터가 추락하지 않는 장치를 처음 개발한 사람이기도 하다. 밑으로 추락하지 않는 방법을 개발한 오티스, 빨려 올라가지 않는 방법을 알아챈 OJ.


소시민들이 그저 히어로와 빌런이 싸울 동안 무참히 죽고 다치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싸움에 대입해 세상을 구하는 전환점이 되는 지점은 바로 엠이 바이크를 몰고 도망가다가 Jupiter's Claim으로 들어가며 선을 넘는 장면이다. 고디가 풍선을 터트리는 소리에 선을 넘었듯, 럭키가 촬영장에서 선을 넘었듯, 그렇게 이름 없는 피해자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는 인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유명한 오토모 가츠히로의 <AKIRA>의 가네다의 바이크 씬으로 오마주하며 엠과 가네다를 동일시한다. 가네다는 <AKIRA>에서 아무런 초인적인 능력이 없지만, 괴물이 되어버린 친구 테츠오를 처치하는데 크게 일조하는 주인공이다. 그런 그녀의 뒤로, '카우보이여 안녕!(So Long Cowboy!)'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이제 카우보이와 같은 늙은 히어로를 상징하는 진 자켓을 처단할 시간이다.



엠은 거대한 주프 캐릭터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낸다. 그리고 그것을 공격할 진 자켓을 찍으려 수동 우물 사진기를 계속해서 돌린다. 그리고 결국에는 보잘것없는 흑인 레즈비언 여성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사진도 제대로 찍고, 진 자켓은 폭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녀가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오빠가 '저 너머에(Out Yonder)'라는 글자 아래로 보인다. 서부 음악이 흐르는 중에 당당하게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다른 늙은 히어로들은 저 너머로 보내버리고 이젠 주목받지 못하던 흑인 기수가 주인공일 때가 왔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백인 히어로들은 자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다른 차원을 가진 영웅들이라고 길들여왔다. 그러기에 한국에서 만든 SF를 보면 내용을 보기도 전부터 어색해지는 것 아닌가. 백인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에 우리도 모르게 길들여져 있다. <놉>은 그 모든 것에 이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백인 남성이 아니어도, 타 인종을 괴롭히는 카우보이가 아니어도, 초인적인 힘을 가진 히어로가 아니어도, 소시민들의 힘으로 세상을 구원해도 충분히 영화가 재미있을 수 있다고. 그것을 반영하듯 <놉>은 2019년 이후 북미에서 속편이나 원작이 있는 영화가 아닌, 오리지널 영화로 오프닝 박스오피스 최고 기록을 세웠다.


마지막에 진 자켓은 살았을까? 고디가 그렇게 내려치고 물어뜯었어도 소녀 마리가 얼굴이 뭉개진 채로 살아있던 것을 보면, 진 자켓이 살아있을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진 자켓 디자인에 참여했던 John O. Dabiri은 인터뷰에서, 진 자켓이 살아있다고 말했다. 늙은 히어로의 종말을 만들어낸 조던 필 감독은 이 다음 속편을 만들어낼까?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난 이 영화를 개인적으로 올 해 최고의 영화로 본 만큼, 그가 만들어내는 영화의 세계는 계속해서 멋지게 이어지길 바란다.






* 이 글은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글입니다.

영화 리뷰와 인문학을 접목한 재미있는 글들이 많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2


이전 11화 < RRR > 인도여 하나가 되어라, 반데 마타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