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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Oct 05. 2023

<거미집> 창작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둠 속에서 흑백으로 본다. 사물을 명암으로만 보는 것은 특별한 감성을 준다. 명암만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건 눈에 있는 간상세포가 하는 일이다. 간상세포는 빛의 밝기에 민감하며 색을 구분하지 못한다. 빛이 약한 밤이나 어둠 속에서는 주로 간상세포가 활동한다. 사진과 영화가 총천연색의 컬러로 바뀐 지 오래되었음에도 흑백 사진이나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 또한 사람이 세상을 보는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흑백 영화를 보면, 캐릭터의 내면이 더 잘 보인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거미집>은 70년대 한국영화와 영화 촬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서슬 퍼런 박정희의 유신 시절을 담고 있다고 해서 이것이 정치적인 영화인가? 혹은 70년대 영화, 특히 김기영 감독의 <하녀>등을 모티브로 했다고 해서 한국영화의 역사나 지식이 많아야만 볼 수 있는 시네필들의 영화인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알면 아는 만큼 보이는 부분이나 재미도 있겠지만,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법이다. 바로 지금,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인 당신, 당신만이 아는 그 이야기가 영화 속에 반영된다. 그것이 바로 영화다. 누군가에겐 배꼽이 빠질 만큼 웃픈 이야기이고, 누군가에겐 창작의 고통이 드러난 블랙코미디이고, 누군가에겐 그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된다.


시작부터 '영화의 마지막을 바꾸면 명작이 된다'는 생각에 빠진 김열 감독. 하지만, 왜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을까?



창작이란 무엇인가

김열 감독(송강호)은 내내 끊임없이 고뇌하고, 자신의 영화를 비방하는 평론가들을 혐오하고, 창작가에겐 암흑기인 정치적인 상황을 두려워한다. 그는 데뷔작 <불타는 사랑> 이후에 무엇하나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그는 그저 그런 치정극만 만들어왔다. 김열 감독은 이번에야말로, 무언가를 보여줘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아니,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창작을 한다는 것,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즐겁지만 고된 일이다.


이야기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거나, 영화를 찍거나하는 모든 창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 창작자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틀을 깨고 나와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기쁨과 행복, 심지어 더럽고 추악한 면까지도 드러낼 줄 알아야 창작을 할 수 있다. 때론 자신의 사회적 신념을 드러낼 줄도 알아야 하고, 옳다고 믿는 것들에 목소리를 높일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지 내면의 날것을 드러내는 것이 창작은 아니다. 그것은 그냥 감정에 불과하다. 창작의 영역에 들어서려면 표현과 연출에서 '기술적인' 부분이 요구된다. 노래로 예를 들자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담아 노래를 해야 하지만 자기가 노래를 부르다 먼저 울어버려서 노래를 망치면 안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덤덤하게 불러서도 안되고, 듣는 관객에게 적절한 감정을 전해주는 표현 기술이 필요하다.


마음과 기술. 이 두 가지는 만화 <유리가면>에서 창작의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유리가면>의 두 천재 배우 마야와 아유미는 서로 정 반대의 끝에 있는 배우다. 마야는 외모도 평범하고 연극 경력도 오래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배역에 진심으로 빠져들 줄 안다. 아유미는 외모도 예쁘고 연극 경력도 길고, 각종 테크닉을 배워 표현 기술이 누구보다 높은 사람이다. 보통 '중요한 건 마음이다!'라며 외치는 감성적인 이야기들과 달리, 이 둘 중에서 우위는 아유미에게 있다고 그들의 스승은 말한다. 창작의 영역에서 기술이 받쳐주지 않는 마음은 무의미하다.


<거미집>의 김열 감독은 당대 최고의 신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다. 그 정도면 촬영과 편집의 기술적인 부분은 거의 다 배웠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 그가 왜, 인정도 받지 못하는 치정극만 찍고 있는 것일까.




[이하 스포일러 포함]



창작은 현실의 반영

창작이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작품'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제목부터 영화 속 영화인 김열 감독의 <거미집>과 일치한다. <거미집>은 이민자(임수정), 강호세(오정세), 한유림(정수정)이 등장하는 치정극이다. 김열 감독은 항상 꿈을 꾼다. 문을 덜그럭 거리다 창문 밖에서 눈을 희번뜩거리며 "문 열어!"로 시작하는 새로운 영화장면에 대한 꿈. 그러던 그가 재촬영의 고민으로 세트장 안에 고해소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있자, 감독의 새 시나리오를 읽은 미도(전여빈)는 고해소 문을 덜그럭 거리며 열려고 하다 고해소에 들어와 작은 문을 열고 눈을 희번뜩거린다. "감독님, 최고예요!"


김열 감독의 <거미집>은 이렇게 영화 속 상황이 촬영 현장이나 배우의 실제 상황과 맞물린다. 치정극을 만들었더니, 극 중 배우끼리 실제 사귀고 있다. 배우가 술 마시고 쓰러져서 김열 감독 자신이 대역으로 들어간 사냥꾼은, '노예의 삶'에 대해 토로한다. 머슴살이와 조감독으로 일하던 김열 감독은 완전히 극에 빠져든다.


그중 가장 최고는, 강호세가 자신의 아이를 한유림이 가진 진실이 밝혀지는 부분이다. "제 아이를 임신했다고요!" "오빠 아이 아니에요!" "헉..." 이 부분은 김열 감독의 거미집에도 최고의 막장 장면으로 나온다. "내 아내가 내 이복동생이라니!" "무슨 소리! 난 당신의 동생이 아니야!" "휴 다행이다..." "아니다! 넌 내 딸이야!" " 내 이복동생이라니! 으아아!" 현실에 대한 반영은 영화에 진실성을 부여한다. 거미를 진짜로 싫어하는 한유림에게, 소품용 거미가 아닌 진짜 거미를 쓰는 이유를 묻자 자신은 그저 진짜를 보고 싶을 뿐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김열 감독은 세상이 자신의 영화를 몰라본다며 투덜거린다. 평론가는 창작자에 대한 복수를 하는 거라고 말하거나, 촬영을 방해하는 공무원들, 정치 현실이 무서워 눈치를 보는 제작자와 스텝들. 그리고 진실성이 없는 배우들. 그러나 그 모든 고뇌 속에 진심으로 자리 잡은 것이 있다. 그 마음은 그가 스승으로 여기던 신감독의 환영으로 나타난다. 영화가 잘 안 되는 이유를 이야기하자, 신감독은 김열 감독에게 "그게 정말 전부인가?"라며 되묻는다. 그제야 김열 감독은 이야기한다. "제가 재능이 없는 걸까요?"


사실 외부를 향하던 모든 것들은 핑계일 뿐이고, 김열 감독은 자신의 안이 사실 텅 비어있는 것은 아닌지, 창작으로 표현할 내면이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신감독의 환영은 답한다.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김열 감독 본인이 재능이 있건 없건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실 그는 내면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본 적도 없다.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해야만 할 것 같은 영화의 결말 재 촬영. 그것은 그의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였다. 진짜 거미를 왜 쓰냐는 질문에 "그 커다란 스크린에서 거짓말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 안 불편해?"라고 김열감독이 말하는 건, 어쩌면 배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던 것은 아닐까.



이야기 속에 감춰진 진실

신감독이 불에 타 없어지는 환영은 그의 뇌리에 남아있는 신감독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자기 작품에 대한 확신을 가진 열정적인 모습. 그런 창작의 광기를 바로 옆에서 마주했으니, 어쩌면 김열 감독은 내면을 드러낸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그는 스승인 신감독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신감독이 불에 타 죽던 날, 신감독을 구하는 것보다 부인인 백 회장(장영남)은 금고 속 돈을 챙기고 김열 감독은 신감독의 시나리오를 챙긴다. 그 시나리오는 그가 그토록 자기가 쓴 거라고 부르짖던 데뷔작 <불타는 사랑>이었다. 백 회장은 김열 감독의 재촬영 시나리오가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채고, 김열 감독에게 넌지시 경고한다. 김열 감독은 재촬영 시나리오에 대해 내내 부인한다. 정치적인 것도 아니다. 백 회장과 나의 이야기를 고백한 것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 해야 명작이 될 것 같다.


영화 <더 메뉴>에서는 창작가가 어떻게 창작물을 만들었는지, 그 진실을 알게 되면 평론가들이나 관객은 그것을 전혀 다르게 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창작물에 담긴 실제 비하인드 스토리가 창작물 홍보에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때론 너무 별게 아니어서, 때론 너무 추악한 것이어서 드러낼 수 없는 것들도 많다. 그리고 창작가 그것을 드러낼 때는 섞어 버무려 변주해서 만들기 때문에, 그게 그 이야기인지 봐도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창작물의 의도를 작가에게 꼬치꼬치 묻거나, 어려운 용어들을 뒤섞어 있어 보이는 해설을 다는 현대예술은 진짜 예술의 본질을 벗어난 '예술팔이'에 불과하다. 창작물은 만들어진 순간부터, 해석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어야 한다.


김열 감독의 <거미집>은 다 만들어져 결말이 상영된다. 영화 속 죄의 그물은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이미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죄와 욕망이 뒤섞인 지점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한유림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금고 속의 거대한 거미였다. 거미를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한유림은 거미에게서 도망치다 계단에서 떨어져 죽고, 거미는 그 모든 사람들을 고치로 만들어 매달아 껍데기만 남기고 영원히 박제한다. 모든 이의 죄에 대한 처벌이자, 김열 감독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의 승화다. 이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사람은 백 회장과 김열 감독 둘 뿐이다. 관객에게 박수를 받는 중에서도, 그는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말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영화적으로도 성공했다.




쏟아지는 박수 속에서도 씁쓸한 그의 표정은, 명작으로 재탄생한 자신의 추악한 과거에 대한 감정이다. 고해소에서 미도에게 이 이야기가 명작이라고 평가받던 그 순간처럼, 김열 감독은 <거미집>을 통해 관객에게 고해를 해냈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김지운 감독은 <거미집>을 통해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니까. 이 영화가 이상하지 않냐고 끝없이 묻는 김열 감독의 모습이, 남들이 이상하다고 하는 영화를 만들어온 김지운 감독 본인의 이야기일까. 어떤 부분이 김지운 감독 자신의 이야기인지, 그것이 과연 추악한 것인지 웃긴 것인지 별것 아닌 것인지 알 수 없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보며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정말, 눈물 나게 웃겼다.






* 이 글은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의 후속입니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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