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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Aug 11. 2023

<콘크리트 유토피아> 너희는 선택받은 주민이니라

재난이 닥쳤는데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고, 뒤통수를 치는 악역들이 모든 걸 망가트리는 일이 없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여줬던, 자극적인 방식으로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클리셰에서 하나하나 탈피한다. 그리고 그 지점은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와 기독교 상징들로 채워져, 한국의 아파트 광풍과 사이비 종교를 맞물려 비판하고 있다.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방식의 재난물이라, 흔히 생각하는 <투모로우>, <2012>, <딥 임팩트>와 같은 영화를 생각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너무도 한국적이며, 씁쓸한 현실 그 자체다. 선과 악, 안전과 불안, 선의와 폭력이 뒤섞여있다.




한국의 아파트 광풍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시작부터 한국 아파트의 역사를 훑고 지나간다. 본래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은 돈이 없고 살 땅이 좁은 사람들을 위해 지어진 공동거주지라, 보통 외국에서는 단독주택보다 좋은 거주지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아파트는 전쟁 이후 많은 집들과 인프라가 망가져, 서울로 몰려드는 피난민들을 위해 도시 주거단지를 정부에서 계획하며 만드는 과정에서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변해갔다. 한국형 아파트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마포아파트부터, 중산층이 살며 완전 서구식 생활양식을 처음으로 도입한 한강맨션아파트 등이 그것이다. 특히 한강맨션아파트는 분양자들이 선입금하는 방식으로 건축비를 충당하는 최초의 아파트로, 치열한 분양권 경쟁과 집값이 치솟는 한국형 아파트 투기의 시작점이다.


한강맨션아파트는 기존의 아파트 인식과는 다르게, 회사 간부나 연예인, 사회 고위층들이 거주했다. 온돌이 없는 서구식 침실에 입식 거실 등 서민들의 생활양식과 차별화를 뒀다. 그리고 아파트 안에서 평수도 나눠져 50평대와 20평대에 사는 사람들 간의 계층문제도 생겨났다. 맨션아파트에 산다는 것이 부자라고 인식이 되고, 후에 그런 아파트 값은 더 오르거나 재개발로 더욱 더 좋은 고층아파트가 되는 것을 지켜보며 현대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부동산, 특히 아파트 광풍이 자리 잡게 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는 대재난 이후, 소위 '팰리스'류의 고급 고층 아파트 사이에 있던 오래된 서민 아파트인 '황궁아파트'만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서민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무시받고 차별받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아파트를 고마워하며, 자랑스러워하고 가꾸기 시작한다. 더불어 아파트에 들어오려는 외부 사람들과도 전쟁을 시작한다. 이 모습은 현재 진행 중인 '고급 아파트가 철근이 빠져 부실하게 지어진 사건'이라던가 '낡은 아파트지만 재개발을 노리고 사려는 사람이 많아 값이 치솟는' 한국의 부동산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아파트를 사수하려는 주민과, 아파트에 들어오려는 사람들 간의 광기는 바로 한국인의 모습 그 자체다.



선택받은 주민

김영탁(이병헌)은 혼신의 힘을 다해, 황궁아파트의 불난 집에서 사람을 구하고 불을 끈다. 그의 희생정신과 행동력을 높이 사서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그를 주민대표로 내세운다. 뭔가 서먹해하는 영탁을 중심으로, 주민들은 똘똘 뭉쳐 위기를 헤쳐나가고 외부인을 내보내는 일을 맡는다. 그리고 영탁은 몇 가지 주민 수칙을 발표한다. 특히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신들만이 대환란에서 선택받았다는 생각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오래된 믿음, 선민사상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황금을 신성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유대인이 가장 번영했던 시기인 솔로몬왕 때 지어진 황금궁전이 그것을 상징한다. 솔로몬의 황금궁전은 내실을 전부 금으로 발랐다고 전해진다. 또한 동방박사가 예수에게 준 선물에도 황금이 있다.


인류멸망 디스토피아에 많이 인용되는 요한의 묵시록에는 대환란을 거쳐 '새 이스라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새 이스라엘 성전은 황금과 수정으로 만들어졌다고 나온다. 그 환란에서 구해진 선택받은 14만 4천 명은 황금궁전으로 된 새 이스라엘에 들어간다고 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황궁아파트가 바로 그런 곳이다. 그들은 구원받았다고 믿고 서로를 다독이며 살려고 한다. 특히 영탁의 집은 천주교 교우의 집 마크가 붙어있으며, 집 안에는 성모상과 십자가가 있다.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선택받았고 영탁은 이 환란의 시기의 선지자인 것이다.




[아래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또 다른 열풍, 사이비 종교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전쟁, 독재라는 큰 사건들을 짧은 시간에 겪어서인지 유난히 다양한 종교가 판을 쳤다. 특히 기독교 계열 사이비가 많은데, 한국에만 자칭 하느님이 20명, 재림예수만 50명이 넘는다고 한다. 천주교나 개신교가 아닌 일반인들은 이단과 사이비를 나누는 게 무슨 의미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교리상의 문제 뿐 아니라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나가지 못하게 협박하며, 내부적으로 폭행과 성폭행이 빈번하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를 보면, 대표적인 사이비 종교의 실태를 알 수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영탁은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치매 노모를 모시는 선지자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는 모세범이라는 이름의 택시운전사다. 그는 김영탁이라고 하는 사기꾼의 집을 찾아가 따지러 왔다가 그를 노모 앞에서 죽이게 된다. 그리고 그때 재난이 터져 아파트 주민 행세를 하게 된 것이다. 아마 전세사기를 당한 듯 하다. 하지만 실제로 올해 초 터진 전세사기로 자살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모세범이 김영탁을 죽이고 아파트 주민 행세를 하게 된 일이 행동이 과연 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쨌든 그는 실제 교인을 죽이고, 거짓으로 902호 주민 행세를 하며 선지자가 된다. 즉 영탁은 거짓 선지자다. 그가 추진력이 있고 앞장서서 일을 해결하기에 사람들은 그를 절대 신뢰한다. 그의 지도아래, 선택받은 황궁아파트는 외부인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고 자신들끼리 똘똘 뭉쳐서 주변에 남은 식량들을 확보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아파트 밖 생존자들에게 철저히 악마화되어간다. 황궁아파트 사람들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영탁으로 위장한 모세범과 황궁아파트의 모습은 한국의 종말론을 교리로 삼는 사이비 종교와 흡사하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구원받는다고 믿고, 철저히 외부세력을 배척한다. 그들의 리더는 자신이 신의 대리자거나 신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실체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신의 교리를 죽이고 자신의 교리로 채워넣은 거짓 선지자다. 그리고 외부에서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른 채, 자신들은 선택받았다는 생각에 취해 거짓행복을 누린다.


이런 교리의 반전이 일어나는 중요한 시점은 '아파트 내부의 바퀴벌레'를 색출하는 작업이다. 그들은 아파트 안에 살도록 숨겨둔 집을 쳐들어가, 외부인들을 쫓아내고 그 집 주민에게 벌을 내린다. 그리고 그 집에는 방역이 끝났다는 표시로 빨간 페인트로 선을 긋는다. 사실 빨간 페인트로 문에 표시를 하는 유명한 사건은 출애굽기에 나온다.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려 할 당시 내린 10가지 재앙 중, 가장 마지막 재앙은 장자가 죽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그 죽음의 천사가 비켜가게 하기 위해, 문에 양의 피로 표식을 해두라고 했다. 그것이 빠스카다. 원래 빠스카는 재앙이 비켜간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빠스카가 '이미 재앙이 내린'집에 표시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자신들만을 위한 성경해석이나 교리의 반전은 사이비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또한 철저하게 자신들이 만든 준칙,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명제 아래에 모든 폭력을 정당화한다. 이것 역시 성을 자신들 입맛대로 해석해, 타 종교인들이나 비신자들 등에게 행하는 사이비의 폭력성과도 맞물린다. 밖에서 슈퍼마켓을 털어와 파티를 벌이는 장면. 내부에서는 축제지만 멀리서 보면 악마들이 불 앞에서 춤추는 것 같은 광경인 것은 그래서다.



무엇이 구원인가

점점 악마화되어가는 영탁의 행동을 참지 못하고 명화(박보영)영탁이 거짓 선지자라는 것을 까발린다. 잔혹하게 처리된 실제 김영탁의 시체. 그러나 영탁은 오히려 제보자인 903호 혜원(박지후)죽이고, 자신의 정당성을 설파한다. 그 와중에 아파트의 바리케이드는 무너지고, 아파트로 들어오려는 외부인들은 철저히 준비해서 전쟁을 시작한다. 영탁을 믿지 못하고 내치려는 사람들은 급하게 다시 영탁을 의지하게 된다. 이제 아파트 주민들은 영탁이 거짓 주민인지 아닌지 상관이 없다. 그는 아파트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워준 사람이고, 그를 중심으로 뭉쳐서 이겨냈기 때문이다.


사이비도 마찬가지다. 교주가 정말 신이라고 믿었다가, 그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와도 사이비에 빠진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한다. 신이 아니라고 해버리면 자신들이 해왔던 믿음과 행위들이 모두 부정되기 때문이다. 거짓 선지자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도 쉽게 그 믿음을 저버릴 수가 없다. 다시금 영탁에게 의지하는 황궁아파트 주민들처럼.


명화 남편 민성(박서준)은 피를 흘리고 다친 채 아파트에서 탈출한다. 끊임없이 걷고 걸어서 도착한 건물의 잔해 속에서 둘은 잠시 쉰다. 그곳은 무너진 명동성당이다. 12 사도가 그려진 명동성당의 스태인드 글라스 빛을 받으며 민성은 죽음을 맞이한다. 사이비에서 벗어나 그는 안락한 구원을 얻었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원래 이 세상에 없는 장소를 뜻한다. 누구나 유토피아를 말하지만, 유토피아는 현실에선 없는 이데아와도 같다.


밖의 인간세상은 어떤가. 모든 것이 무너져 황궁아파트만 살아남았다곤 했지만, 여전히 밖에서 사람들은 살아있다. 심지어 무너진 고급 고층아파트들은 그대로 옆으로 무너져, 꽤나 안락한 피난처가 되고 있었다. 아파트가 만들어지면서 주거 계급이 가속화되었듯이, 수직으로 세워진 아파트는 계급을 상징한다. 옆으로 무너져 수평이 되어버린 아파트에는 계급이 없다. 이곳에 그냥 들어와 살아도 되냐고 묻는 명화에게, 피난민들은 그게 뭐 어떠냐고 반문한다. 비록 조금 더 위험하고 살기 팍팍해 보이지만, 준칙도 없고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는 인간다움이 남아있다.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남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세상에서, 그렇지 않은 삶이 있다는 걸 알고 명화는 안심한다. 그리고 '황궁아파트 사람들은 어때요?'라고 묻는 피난민에게, 명화는 그제야 말할 수 있었다.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형으로. 그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두 종류의 광기, 아파트와 사이비를 섞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의 회색빛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색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영화라, 그들을 보면 우리의 모습이 생각나 한없이 불편해진다. 단지 아파트와 사이비뿐일까? 돈을 벌기 위해 달려드는 주식, 부동산, 금, 코인은 어떠하며, 정치적 문화적으로 갈라져 죽일 듯이 싸우는 광경은 또 어떠한가. 내가 거기에서 한 발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행복하고 평온하고 정의롭게 살고 있다 생각하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아파트 벽에 너울거리던 광기의 춤처럼 비치고 있진 않을까. 괴물은 자신이 괴물인 것을 모른다.





* 이 글은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글입니다.

영화 리뷰와 인문학을 접목한 재미있는 글들이 많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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