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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Jul 27. 2023

<바비> 바비 매트릭스의 구원자, 네오 바비

최근 인형, 완구 로봇을 영화화는 게 많아졌다. 원래부터 장난감 회사들은 그 세계관으로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출시해, 장난감의 매출에 열을 올렸었다. 70-80년대 나온 미국과 일본의 변신로봇이나 전대물 등은 그런 기획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해즈브로의 <트랜스포머 시리즈>, <G.I. JOE 시리즈>와 레고의 <레고무비 시리즈>의 대성공으로 이젠 애니메이션보단 메이저 영화로 눈을 더 돌리고 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장난감에 대한 추억이 있는 어른들까지 섭렵하려는 것이다.


영화 <바비>는 꽤 오래전부터 기획되었지만, 여러 번 각본가와 감독 프로듀서가 바뀌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마고 로비가 제안한 컨셉에 마텔이 마음에 들어 한 후, 마고 로비가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급물살을 탔다. 사실 바비는 기존의 <트랜스포머 시리즈>, <G.I. JOE 시리즈>, <레고무비 시리즈>처럼 만들기 애매한 부분이 있었고 '정형화된 여성성을 상품화한' 기업으로 사회적 비판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바비랜드'에 몰입할 수 있으려면 그런 부분을 희석할 수 있는 장치가 실사영화에는 반드시 필요했다.


결론부터 말해, 이 영화가 불필요한 페미니즘을 강요하는 영화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초반에 등장하는 노래와 메시지는 바비랜드를 창조한 마텔의 바비 홍보문구와 메시지다. 이 영화는 스스로를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모노리스처럼, 바비를 인간 진화, 페미니즘에 엄청나게 도움을 준 인형으로 포장하고 있는 마텔을 풍자하고 있다. 바비(마고 로비)는 그 바비랜드라는 환상, 매트릭스를 깨고 나와 네오가 된다는 사회 풍자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이상한 바비랜드

바비들이 사는 바비랜드는 온통 핑크색으로 만들어져 있다. 바비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주도하고 있고, 켄들은 바비의 마음에 들려고 온갖 힘을 쓴다. 온갖 예쁜 것들로 만들어진 여자들의 세상인 바비랜드는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단지 '여자 아이들의 인형놀이'라는 가정으로 보면 이해가 된다. 사실 그 모습들은 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소꿈놀이를 하던 모습을 그대로 실사로 재현한 것이다. 남자아이들의 장난감이나 소년만화에서 여성이 특정 이미지로만 소비되듯, 바비를 만들 때 켄은 바비를 위해서 만들어진 '환상의 남자친구'일 뿐이다. 멋진 몸과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항상 바비를 생각하는 캐릭터. 실제로 바비의 집은 있지만 켄의 집은 없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 여자 아이들이 바비를 꾸미고 재우고 할 때 켄은 그냥 옆에 대충 바닥에 놔두면 되니까.


계속해서 바비들이 '여성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라고 외치며 춤을 추는 모습은 실제 바비인형이 출시되고 나서 라인업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수용해 대처한 것이다. 바비는 첫 장면에서 나오듯 줄무늬 수영복을 입은 백인미녀가 처음이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첫 장면은 마치 마텔이 아기 인형뿐인 여아들의 인형에 처음으로 성인 모습의 인형을 만든 것처럼 되어있지만, 사실 바비인형은 독일의 빌드 릴리 인형을 베낀 것이었다. 성인 여자의 모습으로 처음 제작된 빌드 릴리 인형은 수많은 곳에서 베꼈지만 결국 마텔이 그 회사의 저작권을 1964년 인수하면서 빌드 릴리 인형은 제작이 중단된다.


하이힐을 신기 위해 까치발로 고정된 발, 실제 여성보다 강조된 가는 허리와 몸매는 바비인형을 비판하는 지점이다. 바비인형의 체중계는 50kg으로 세팅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연예인들이 이상적인 몸무게를 50kg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예쁜 여자를 '바비인형 같다'고 말하는 수식어를 보면, 바비인형이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바비인형 몸매를 갖기 위해 거식증에 걸리는 아이들도 많았으니 말이다. 이런 것들을 '바비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여성, 외모지상주의도 바비인형이 크게 기여했다.


영화 초반은 그런 바비의 '여성적인' 예쁜 모습과, 완벽한 이상향 페미니즘을 말하며 남성인 켄을 완전히 무시하는 사회의 모습으로 위화감을 드러낸다.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고 끔찍해한다거나, 발 뒤꿈치가 땅에 닿았다는 것이 큰일이라고 우스꽝스럽게 호들갑 떠는 모습은 그 위화감을 극대화시킨다. 왜 바비랜드는 그토록 이상할까? 그것은 그 바비랜드의 세상이 인형 제조사인 마텔이 바비를 팔 때 그때그때 돌려 막기로 제시한, 상업용 페미니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모습은 여성만이 잘살면 된다는 '여성우월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아래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빨간약과 파란약, 하이힐과 버켄스탁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가 발 뒤꿈치가 땅에 닿고 셀룰라이트가 생긴 바비는, 자신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만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듣기로 한다. 그것을 가르쳐 준 것은 자신의 현실세계 주인이 마구 다리를 찢고 머리를 자르고 낙서를 하는 둥 험하게 가지고 놀다가 망가져버린 '이상한 바비'가 가르쳐 준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바비랜드에 남을 것인지, 버켄스탁 슬리퍼를 신고 현실세계로 가서 진실을 찾을 것인지를 선택하게 한다.


이 장면부터 영화 <바비>는 노골적으로 매트릭스를 오마주 한다.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마주한 다음, 환상의 세계를 만든 창조주와 협상하는 것까지. 포털을 통해 현실로 나가게 된 바비와 켄(라이언 고슬링)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다. 바비에게 이 세계는 위협적이고, 켄에게는 힘을 준다. 현실세계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 지배하고 있던 것이다. 바비는 마텔이 선전하는 말대로, 자신들이 여성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데 공헌했고 여자 아이들은 행복해졌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자신을 가지고 놀던 아이 샤샤(아리아나 그린블랫)를 느끼게 되고, 결국 만나게 된 바비. 그러나 현실의 그 아이는 바비인형을 싫어했다. 게다가 바비가 자신이 해낸 페미니즘의 완벽함을 이야기하자, 샤샤는 바비가 만들어낸 현실의 악영향을 이야기하며 바비에게 '넌 파시스트야!'라는 말을 한다. 파시즘 자체가 극단적인 민족주의에서 출발했지만 워낙에 나타난 형태나 정의가 다양해 하나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일반인들이 욕할 때 쓰는 뜻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독재를 옹호하는 폭력적인 사상가'라는 뜻이 되어있다. 샤샤는 오히려 바비가 내포하고 있는 '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가 여성에게 여성다움을 강요하는 파시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사이에 켄은 현실세계의 이상한 힘의 기운에 빠져 남성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되고 가부장제를 열심히 배운다. 그리고 바비가 마텔사에 잡혀가는 것을 본 켄은 그대로 바비랜드로 도망쳐 바비랜드에 가부장제를 전파한다. 현실세계에 온 바비와 켄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이념적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매트릭스를 구원하라, 네오 바비여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매트릭스를 구원하는 구원자다. 매트릭스를 창조한 것은 아키텍트와 오라클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네오는 거기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변수로, 매트릭스를 깨고 나와 구원한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래야 매트릭스가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영화 <바비>에는 실제로 바비인형을 만드는 마텔사가 등장하는데, 현실세계의 캘리포니아에 비해 이곳은 무언가 비현실적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가 매트릭스를 오마주 했다고 했는데, 바비랜드를 창조한 마텔사는 매트릭스의 기계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대비된다. 그리고 마텔의 CEO(윌 퍼렐)는 매트릭스의 창조 프로그램인 아키텍트 혹은 스미스에 해당한다. 여자 아이들의 이상향인 '페미니즘 바비'라는 것이, 시커먼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창조한 세상이라는 진실을 마주한 바비는 혼란에 빠진다. 아키텍트와 마주하고 매트릭스의 진실을 알게 되었던 네오처럼.


그리고 아키텍트는 바비를 잡아 상자 안에 재포장하고, 바비랜드로 통하는 포털을 막아버리려고 한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도망치는 바비는, 진실을 마주하고도 소스로 돌아가길 거부한 네오와 같다. 수없이 쏟아지는 검은 정장의 임원들과 바비가 회사에서 벌이는 추격전 역시 매트릭스의 오마주다. 그들은 이제 스미스처럼 어느 한 가지 의무만 주어지면 그것만 생각한다. 회사의 파티션 벽 사이를 달리다 바비를 잡는 것도 잊어버린 채 달리는 것에 몰두하거나, 카드가 없으면 차단기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둥 전혀 융통성이 없다. 바비랜드가 그런 사람들이 만든 이상향이니, '켄과 화합해서 잘 지내는 세상'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 바비랜드가 극단적으로 여자 아이들에게 맞춰진 세상인 것은 그래서다. 바비는 도망치다가 문이 잔뜩 있는 복도로 들어선다. 이곳 역시 매트릭스의 사이에 존재하는 복도와 똑같은데, 바비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이런, 딱 봐도 <매트릭스>의 오라클 분위기가 물씬 풍겨 폭소를 자아냈다.


바비는 샤샤의 엄마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도주하게 된다. 그러다 알게 된다. 사실 자신의 주인은 글로리아였다는 것을. 그리고 글로리아가 '죽음을 생각하는 바비''셀룰라이트 바비'를 상상했기 때문에 바비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걸. 바비에게 현실세계는 끔찍했지만, 글로리아와 샤샤의 도움으로 바비랜드로 도망친다. 그러나, 바비랜드는 먼저 도착한 켄이 전파한 가부장제로 엉망이 되어있다. 켄들은 바비의 집들을 빼앗고, 나무를 부러트리고 바비들을 함부로 대한다. 바비들은 권력을 내려놓고 켄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바비랜드는 켄덤(Kendom)이 되어버렸다!



창조의 거울

태초에 신은 바비를 만들었다. 켄은 바비의 '남친'으로 창조되었다. 이것은 성경에서 남자를 먼저 만들고, 여자를 남자의 갈비뼈로 만든 신화와 정확히 반대다. 이후에도 성경은 뱀에게 속아 남자를 곤경에 빠트린 죄로,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하게 취급한다. 성경을 경전으로 하는 아브라함계 종교들이, 가부장제를 강력하게 유지하는 것도 다 성경의 힘이다. 켄은 바비의 남친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켄이 갖고 있는 삶의 목적은 '바비의 사랑을 얻는 것'이다. 바비가 지배하며 켄을 무시하는 바비랜드는, 사실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현실세계를 미러링 한 모습이다. 즉 바비랜드의 바보 같은 켄은 현실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바라는 모습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켄이 완전히 반대되는 가부장제를 들여와 권위를 갖고 바비들을 정복하려 한 것은, 현실세계에서 가부장제에 반발해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남자들을 혐오하고 배척하려는 사람들을 풍자한 것과도 같다. 특히 이 바비랜드에서 모든 켄들이 사랑받지 못하는 건 아니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하는 켄만이, 자신의 짝인 바비에게 키스도 못하고 사랑도 받지 못한다. 켄이 가부장제를 바비랜드에 전파한 건, 그 불평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권위를 가지면 바비의 사랑을 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가부장제에 물들지 않은 바비는 원래부터도 켄을 남친으로 생각하지 않는 바비였다.


약간 재미있는 실제 사건을 말하자면, 2004년 마텔은 '켄은 더 이상 바비의 남자친구가 아니다'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후에 마텔의 매출이 감소하자, 마텔은 2011년 그들을 재회시키는 이벤트를 했다. 이렇듯 바비에 담긴 스토리들은 마텔이 인형을 팔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해먹다가, 비난을 받으면 철회하거나 생산중단하는 식으로 이리저리 바뀐 것이다. 영화 <바비>에서도 그런 혼돈이 보인다.


현실세계가 바비랜드에 영향을 끼쳤듯, 바비랜드도 현실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켄이 바비랜드를 켄덤으로 바꾸고 지배하자, 켄의 물건들이 현실세계에서 바비보다 잘 팔리고 영화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혼돈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바비는 애초에 여자아이들이 사는 '인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텔 임원들은 이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바비랜드로 쫓아간다.



순서대로 차근차근 변화하기를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이 올바르다고 해도, 급진적인 변화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분명 반발을 일으킨다. 가부장제에 물들지 않은 바비와 이상한 바비를 중심으로 가부장제를 무효화시키면서 바비는 다시 바비들이 권력을 잡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이 생각보다 조금 개연성이 없어서 좀 웃기긴 하다. 바비를 정신 차리는 방법이 가부장제에 찌든 피해자인 현실 여자의 하소연이라거나, 켄들의 질투심과 자존심을 이용하는 부분이다. 이건 사실 바비도 '생각 없이 말 한마디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존재'로 보이고, 켄은 '인정욕구 가득한 사랑받지 못한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바비랜드 자체가 원래 그렇게 창조되었다.


그럼 그냥 원래대로 바비가 지배하고 켄은 다시 뒷전으로 밀려나는 바비랜드가 올바른 세상인가? 바비들은 켄들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조금씩 변화를 받아들인다. 무엇이든 좋으니 조금이라도 '해변''남친'이 아닌 직업을 갖고 싶어 한다. 이것은 작은 변화의 시작이다. 서로가 마음 상하지 않으려면 급진적이지 않고 조금씩, 극단적인 세상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현실에서 가부장제를 옹호하며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들 뿐 아니라, 급진적인 여성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여성들에게도 일침을 가하고 있다. 바비랜드와 현실세계를 서로 대비시켜 미러링 함으로써, 마치 혹성탈출에서 침팬지와 인간의 관계를 바꿔 동물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처럼, 같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조금씩 바꿔나가 보자는 것이다. 특히, '바비의 남자친구'로써 창조된 켄에게 단지 켄으로 충분하다고 가르쳐준다. 존재의 의의를 바비에게 맡길 필요가 없다. 켄은 켄이다. 이 이야기는 현실에서 '남성의 어머니, 아내'로써만 존재의 의미가 있던 여성을 그 자체로 존재가 충분하다고 외친 페미니즘의 시작과도 맞물린다. 서로가 서로를 대상화하지 않고 존재를 인정할 때, 다 같이 잘 사는 진정한 휴머니즘이 열리는 게 아닐까?


이것이 끝이냐고 묻는 바비에게, 다시 17층의 할머니가 등장한다. 그녀는 마텔의 창업자인 루스 핸들러(레아 펄만)다. 그러니까 진짜 오라클이었던 셈이다. 그냥 다 같이 잘 살면 끝일까? 바비는 무엇이 되고 싶을까? 오라클 아니 루스 핸들러의 따듯한 말을 듣고 바비는 자신을 찾아 나선다. 죽음을 생각하는 바비, 셀룰라이트가 있는 바비, 발 뒤꿈치가 땅에 닿는 바비. 그것은 곧 인간이다. 바비는 무엇이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바비라는 존재를 넘어서서, 그들에게 신적 존재인 인간이 된다. 네오가 자신을 버리고 기계와 협상해서, 인간세계도 넘어서서 신이 되어버린 것처럼 바비도 그렇게 되었다.







사실 이 영화의 안 좋은 부분은 바로, 바비를 만드는 마텔의 시각에서 바라봤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바비는 시대의 아이콘으로써 여자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왔고 생산되는 제품들 중 논란을 일으켜 생산 중단된 것들도 많다. 또한 핑크나 여성성의 노출은 2차 대전 직후에는 여성의 해방을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성상품화나 여성에 대한 편견을 심는 부분이 되었다.


시대적인 변화를 따라가야 인형이 팔리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이나 다양한 직업을 넣는 등 변화를 주었지만 그 변화들이 '여성의 해방'을 주도한다기보다는 '인형을 팔기 위한'상술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 비판들은 중간에 살짝 언급하는 것으로 퉁치고, 마무리에서도 '평범한 바비'를 만들자고 하면서 '잘 팔리겠네'라고 말하는 맺음이, 너무 자신들이 한 일들을 쉽게 변명하는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평범한 바비'라는 건 또 뭔가. 안 그래도 BMI지수의 표준체형등이 실제 표준과 다를뿐더러, 사람마다 매우 다른 생김새와 체형을 갖고 있는데 '평범한'바비라며 표준처럼 바비가 나온다면 또 그렇게 생기지 않으면 평범하지 않다고 여길 것이 아닌가? '평범한'바비 또한 이상향일 뿐이다. 그것보단 '다양한'바비가 더 나오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만드는 틀을 다양하게 찍어야 한다는 건데 그것이 회사 수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지금 나온 부분도 꽤나 바비나 마텔사를 비판하는 부분이 있고 그것에 마텔사가 동의해서 영화가 나오게 된 것이지만, 이 영화가 엄청나게 흥행을 하고 있어서 마텔사는 실사영화를 더 많이 제작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다들 알지 않은가? 장난감 회사가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면 그것은 제품을 많이 팔기 위한 것이라는 걸. 이 영화에서도 결국엔 바비를 미화하려는 시도가 보여 아쉬웠다. 그런데 이렇게 창조주랑 싸우고 결국 인간이 된다는 내용을 만들어놓고 후속작은 어떻게 만들려나 궁금하기도 하다.


유쾌함 속에 극단적인 현실을 녹여낸 <바비>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그래도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알게 되지 않을까? 비록 관객들 마다 보는 관점이 달라서인지 한국에서는 안타깝게 흥행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바비처럼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극 중 혼자있는 앨런을 끝까지 다들 무시하는게 마텔에 대한 마지막 비판인 것 같다. 사실 앨런의 짝은 생산중단된 임신한 바비다. 임신한 바비는 미성년자의 임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생산중단되었다.


* 이 글은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글입니다.

영화 리뷰와 인문학을 접목한 재미있는 글들이 많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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