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영화 <킬>은 '40명의 무장강도와 1명의 특수요원'이라는 광고 문구와 제목만 보자면 액션만을 위한 유치한 영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영화이며, 오히려 비슷한 류의 액션영화인 <테이큰>이나 <존 윅>보다도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이 담겨있다. 다만 주인공 자체에 대한 서사가 너무 로맨스에만 맞춰져 있고, 액션 서사를 '특공대'라는 것으로만 퉁친 점이 좀 아쉽다.
이 영화가 좁은 곳으로 공간을 제한한 단순액션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감독 니킬 나제시 바트(Nikhil Nagesh Bhat)가 자신이 직접 기차 무장강도를 당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액션뿐 아니라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심리묘사나 인도의 계급갈등 등 사회의 묘사가 탁월하다. 그리고 그 부분을 액션으로 잘 승화했다. 비단 이 영화가 인도 영화 특유의 색채 때문에 80-90년대의 홍콩영화 감성이 물씬 풍기더라도, 앞서 말한 점에서 <테이큰>이나 <존 윅>보다도 나은 점이 있다고 느낀다. 이 영화는 그 주제를 잘 나타내기 위해, 영화 중간에 제목을 넣어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죽여야만 할 때
주인공 암리트(락샤)와 친구 비레쉬(아비쉐크 차우한)는 특공대 출신이다. 이 기차에 타고 있는 암리트의 약혼녀 툴리카(타냐 마닉탈라)와 그 가족을 구하기 위해 무장강도가 나타나자 행동을 개시한다. 이때 이들의 전투 목적은 훈련받은 군인의 자세다. 적을 제압하고, 상대의 수가 많으므로 힘을 낭비하지 않으려 하는 철저한 군인모드. 그들은 자신들이 무력한 일반승객과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고, 그러기에 둘 다 아무 망설임 없이 무장강도를 상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상대들은 단순한 무장강도가 아니다. 그들은 실제 가족들이다. 가족들끼리 패거리를 이뤄 강도단을 만드는 것은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하는 하층민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탄 이 열차는 상류층이 차는 매우 비싼 열차이며, 거의 비행기 값이라고 한다. 그러니 승객 몇을 죽이면서 공포로 몰아넣고, 빠르게 내려 도망가려 한 것이다. 그들은 승객들을 공포로 몰아넣기 위해 살인이 필요했다. 그것을 주도한 파니(라가브 주얄)는 이 가족 강도단의 행동대장 격이며 잔혹하다.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농락하는 것을 즐기다 일을 그르친다. 만약 단순히 강도들이나 특공대 주인공들이 할 일만 했다면 그렇게 뒷부분처럼참혹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죽이고 싶어질 때
영화는 중반부 파니가 암리트의 약혼자인 툴리카를 죽이면서 완전히 달라진다. 영화의 제목인 <킬>이 그제야 화면에 커다랗게 새겨진다. 암리트는 군인으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복수와 죽음의 화신이 되어버린다. 그 모습은 마치 폭풍의 신인 루드라 신이 강림한 것처럼 두렵고 잔혹하다. 칼로 찔러 제압하고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풀고 강도들에게 끔찍한 공포와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으로 바뀐다. 지금까지 강도들은 승객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끔찍하게 죽어나가는 자신들의 가족들을 보며 그들은 암리트에게 공포를 느끼고 두려워하고 울부짖는다.
그건 마치 현대 격투가와 고대 무술가의 차이와도 비슷한데, 현대 격투술은 스포츠로 만들어져 타격과 기술에 제한이 있다. 상대를 무력화시켜 승리를 거두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필요 이상으로 상대를 다치게 하거나 불구로 만들거나 죽이면 안 된다. 그래서 급소를 타격하는 등의 위험한 기술은 실전에선 유용하지만 아예 하지 못하게 가르친다.
그에 비해 고대 무술은 원래 전쟁에서 상대방을 가장 빠르게 죽이는 목적이 있는 것이므로, 눈 찌르기나 급소 타격, 관절 부러트리기 같은 위험한 기술이 주가 된다. 물론 특공대인 주인공들이 쓰는 특공무술은 그런 '죽이기 위한'무술을 가르치는 것이지만, 단순하게 감정 없이 제압하는 것과 분노를 담아 잔인하게 고통을 주며 죽이는 건 또 다르다. 그건 광기의 살인이다. 이것들의 차이는 타나카 아키오의 만화 <군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분노의 화신이 된 암리트는 이미 죽은 상대의 머리를 계속 내리쳐 으깨버리고, 칼로 찌른 몸을 천천히 반으로 갈라버리거나 일부러 잔혹하고 고통스럽게 죽이고 전시한다. 그 광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암리트의 절망과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공포와 살인의 반전
암리트가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자신이 죽인 강도들을 매달아 놨을 때 문득 에이리언이 생각났다. 그래, 에이리언은 암리트인지도 모른다. 자신은 살기 위해 했던 행동들은 동료들의 끔찍한 죽음으로 다가왔다. 이유를 모른 채 실험체가 되어 이용당하다 태어나자마자 죽어가는 자신들의 삶에서, 그저 살려고 발버둥 친 건 아니었을까? 강도들에게 괴물처럼 비치는 암리트의 모습을 보며 새삼 에이리언에게 연민을 느꼈다. 누가 누구에게 공포이고 누가 괴물인가?
또한 이 영화에서 절대강자로 등장하는 커다란 강도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약하게만 보였던 죽은 승객의 엄마들에 의해 무참히 죽는다. 여기에서는 절대 강자도, 절대 선한 자도, 절대 악한 자도 없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 안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살인을 하고 분노하며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그 힘과 공포는 계속해서 위치가 바뀌며,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은 누군가를 응원하게 된다기보다 그저 그런 끔찍한 참사가 벌어져야만 했던 기차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의 재미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짚어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영화가 주는 '과한 감성'이 맞지 않는다면 감정선이 유치하게 보일만한 연출들이 있다. 그 부분만큼은 위에서 언급했듯 딱 80-90년대 홍콩 액션영화와 비슷하다. 그리고 액션에 있어서도 주인공의 액션 무술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감정에 초점이 있고, 좁은 공간에서 사물을 이용하는 스트리트 액션이라서 최근 크라브마가나 칼리 아르니스와 같은 특공무술의 쿨하고 멋진 모습보단 더 현실적인 액션에 가깝다.
잔혹한 액션을 좋아하는 액션 팬들에겐 롯데 시네마에서만 단독 개봉하는 게 아까울 정도로 괜찮은 영화다. <존 윅> 제작사에서도 리메이크를 한다고 하니, 마치 과거 <옹박>을 뤽 베송이 재편집해 개봉해 배우였던 토니 쟈가 세계적인 액션스타가 된 일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