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8일 차. 우테르가 ~ 에스테야
순례길 8일 차. 우테르가 ~ 에스테야
아침 5:30즘 눈을 떴다. 숙명처럼 이젠 어찌할 수 없이 반복된다.
새벽 4,5시 누군가 눈을 뜨면 우리 모두 떠야 하고 뜨게 된다.
잠은 밤 10나 11시 돼야 드는데 안 가봤지만 군대 온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입술이 태양과 피곤함으로 부르트는 것을 넘어 고름이 생기고 물집처럼 생겨서는 7일 차인데도 안 없어지고 있다. 흉터가 지지 않기를 바란다 ㅠ
길 위로 발을 내딛고 또다시 길고 긴 길이 이어졌다.
끝없는 하늘과 들판, 붉은 양귀비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오늘 긴 여정을 가기 위해 배낭을 목적지로 보냈다.
배낭이라는 짐은 이렇게 쉽게 5유로를 주면 떨쳐버릴 수 있다.
살면서 짊어지고 가는 나의 짐은 누가 덜어줄 수 있을까?
몇 억을 줘도 누군가가 덜어줄 수 없다.
덜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나 자신
마을마다 번지 수가 쓰여진 간판이 예술 작품 같이 다르고 개성 있다.
그래서 기억나면 사진을 찍어둔다.
첫 마을 MURUZÁBAL과 두 번째인 OBANOS 마을을 지난다.
상추 같이 보이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작물도 만났다. 저 녀석은 도대체 어디에 쓰일까? 질기지 않을까?
아, 엄마가 해주시던 열무 비빔국수가 간절하다.
Puente La Reina라는 마을에서 하루 묵을까 고민했는데 에스테야까지 직진해 버렸다.
아마 친구 루이즈랑 자크를 만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내가 이들에 비해 나이가 약 1/2인데 강요나 어떤 말 없이 항상 나를 존중해 주었다. 내가 내 의견이나 고민거리를 말하면 공감해 주고 친구처럼 하하호호 웃어준 , 그래서 나로 있기 편하고 더 특별하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푸엔테 라 레이나는 기대했던 것만큼 세월이 느껴지고 예뻤다. Puente는 스페인어로 ‘다리’라고 한다. 마을 이름에 다리가 들어가는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12시도 전부터 배꼽 시계가 울린다. 밥집 사인이 보이면 오늘은 꼭 들어가 밥(‘쌀’)을 먹을 생각으로 걸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한 bar에 들어가니 바게트 핀초(샌드위치)밖에 없다고 하고 걷다가 들어간 알베르게에서 파에야는 가능하다고 해서 야채 파에야를 10유로 주고 Mañeru 마을에서 먹었다. 조금 짜지만 야채가 다양해서 맛있었다! 얼마 만에 맘껏 먹어보는 쌀인가- 허겁지겁 손놀림이 빨라졌다.
발가락들 좀 쉬라고 양말 벗어 재꼈는데 네 번째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어제부터 걸을 때 느낌이 조금 이상하긴 했는데 이제 진짜 물집이 되었다. 너도 힘들었구나.
갑자기 덥고 힘드니 짬뽕이 생각난다. 얼큰한 짬뽕 한 그릇 먹으면 원이 없겠다.
아까 길 오며 지나온 브라질 부부가 내 옆 테이블에 앉았다. 내가 발 둘 다 까고 있으니 나의 발을 보고 다시 내 얼굴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카페에서 음료 받아와서는 앉으려는 남편에게 나를 보며 뭐라뭐라 한다. 앉으려던 남편은 군말 않고 뭘 가지러 그들 가방을 뒤적뒤적한다.
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두 가지 시나리오 생각했다.
시나리오 1. “쟤처럼 나도 발 아파 죽겠다 크림/약 좀 갖다 줘”
시나리오 2. “ 쟤 크림/약 주게 크림/약 좀 갖다 줘” 남편이 봉지 하나를 가져왔다. 아내가 봉지에서 크림을 꺼내 나한테 발에 바르라고 시늉하며 준다.
와, 사실 나는 발에 바람을 쬐고 있었을 뿐이지만 발라줘서 나쁠 것 없으니 고마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완전 감동이다. 이야기 나눈 적도 없는데 이렇게 친절할 수가 있다니!
Cirauqui 마을을 지난다. 한 집에 아랍 국가의 국기가 펄럭이고 글을 써놨다.
대충 보니 “사하라는 안 팔아요. 사하라 사막에서 30만 명의 아이들, 여성, 노인들이 버려진다. 사하라에 자유를!” 같은 말 같다… 어디에서나 진짜 문제는 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게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계속해서 평평하고 굽이굽이 난 길을 걷는다. 다행히 마을이 많아서 중간중간 쉴 수 있었다. 사이드로는 포도밭이 엄청 많다. 여기 포도는 언제 달릴까? 여기 와인은 무슨 맛일까? 포도를 그냥 먹어도 달까? 와인 한 병에는 포도 몇 송이가 들어가지? 궁금한 게 많아진다. 와인 만드는 과정을 보고 싶어진다.
Lorca 마을을 향해 가다 만난 Olive garden 팻말. 그리고 올리브 나무들이 나오고 한 노점상 같은 곳도 만났다. 독일 순례자 두 명이 앉아 쉬고 있어 물어보니 여기 있는 것들을 기부제로 먹을 수 있단다. 나는 올리브를 좋아도 하지만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올리브 나무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스�� 태양 듬뿍 받으며 좋은 기운만 가져다줄 것 같은 신성한 나무 느낌. 그런데 스페인에서 이렇게 많은 올리브 나무를 만날 줄이야! 가까이 보면 잎들이 위로 솟아있어 정말 문명의 태생지 그리스처럼 생명력이 가득 느껴진다.
마지막 지나는 마을 Villatuerta는 특별한 마을이다. 여기서 발견된 유적은 스페인에서 발견된 10세기 첫 기독교 조각 기념물 중 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치가 매우 높고 팜플로나 나바라 박물관에 전시 중이란다.
드디어 큰 에가강이 보이고 에스테야가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인 에스테야에 다 와갈 때 즘 익숙한 뒷모습! 자크를 만났다. 이렇게 뒷모습을 보고 우연히 아무 연락 없이 마주친 게 팜플로나 다음으로 두 번째이다. 오늘은 Alda hostel에 예약했는데 호텔 같다는 평을 보고 모던함과 깨끗함에 끌렸었다. 그런데 내가 몰랐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오후 5시 이후에는 스태프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늦게 도착한 나는 모든 걸 전화해서 해결해야 했는데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고 직원은 영어가 서툰 데다가 비대면이라 더 힘들었다. 나는 사람과 얼굴 보며 체크인 하고 싶다구… 알고 보니 내 침대 옆자리였던 스코틀랜드서 온 순례자 골든도 힘들었단다. 나 바로 앞에 와서 체크인하는데 처음에 직원이 스페인어로만 얘기해서 어딘가 전화하고 등등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단다. 나는 운 좋게 골든이 체크인 중에 와서 바로 이어서 할 수 있었다.
씻고 빨래하고 루이즈, 자크와 저녁을 먹었다. 칼라마리 튀김, 블루치즈 크로켓, 올리브, 샐러드 등 모든 게 너무 맛있었던 곳. 에스테야에 간다면 들려봐도 좋겠다 이날 무리하기는 했는지 너무 맛있게 저녁을 먹고 디저트가 나왔을 때 나는 오한이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먼저 숙소로 돌아왔다. 이날부터 급 날씨가 초 겨울처럼 추워지기 시작했다. 순례자들도 갑자기 너무 춥다며 얇게 입고 나와 오들오들 떨거나 잠바를 가지러 숙소로 돌아갔다.
감기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일찍 잠에 들었다.
어쩌면 혼자 살아도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인이 많아지는 요즘,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경험이 소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