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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30. 2021

아랫목의 뜨뜻한 온기가 종종 그립습니다



 사위가 가라앉고 시골 동네의 초롱불이 잠잠해진다. 중부지방 산자락에 자리 잡은 옛집은 초가을임에도 꽤나 쌀쌀하다. 디귿자 형태의 배열은 산등성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낸다. 서편에는 농기구와 곡식,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있다. 어른 키 만한 삽과 가래는 벽에 댕강 걸려 있고 호미와 낫은 때 묻은 나무 상자에 담겨 있다. 을씨년스러운 산풍이 곳간 문틈을 비집고 들어가자 싸리 빗자루가 제 몸을 파르르 떨며 잘게 소리를 낸다. 창고와 본채 사이에는 회색빛 우물이 있고 마당 건너 동편에는 별채가 있다. 끝방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가운데 본채는 가로로 길쭉하게 방이 네 칸 나 있다. 쪽부터 부엌, 안방, 중방, 상방(上房) 순이다. 안방은 집의 연식만큼이나 오래 머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공간이다. 솜이 그득 든 이불 끝단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실밥이 터져 비죽 튀어나오자 안주인은 손아귀에 힘을 실어 단단히 고정한 후 바느질을 다. 노란 비단의 살갗 위로 빨간 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다. 펼쳐놓은 이부자리 위로 다이아몬드 모양의 자바라 옷걸이가 있다. 무채색 한복의 옷감이 두툼한 걸 보니 산동네에는 한기가 빨리 찾아오나 보다.   

  

 오돌토돌한 흙벽과 달리 안방의 동쪽 면 적갈색의 네 짝 미닫이문이다. 가운데 두 짝을 좌우로 벌리면 정사각형 꼴의 중방에 들어설 수 있다. 원래는 대청마루였는데 앞뒤를 막아 거실로 개조하였다고 한다. 중방은 가장 널찍하여 사람들이 모이기에 제격이다. 낮에는 여인네들이 모여 앉아 전을 부치고 밤을 깎고 상을 내 온다. 저녁상을 물린 뒤에는 다 같이 둘러앉아 윷놀이며 화투며 놀이판을 벌인다. 그러다 짙은 어둠이 내리면 여백 없이 발을 맞댄 식구들이 크레파스처럼 자리를 깔고 눕는다. 입이 여럿이라 등 댈 자리가 충분치 않다.     


 마지막 상방은 이름 그대로 바닥이 솟아 있다. 아래에 가마를 품고 있는 구들목이다. 문턱의 높이만큼 온도가 껑충 뛴다. 나무틀에 창호지를 바른 키 작은 문을 밀치면 빛바랜 검정 물레가 보인다. 방 곳곳에는 쓰임을 잃은 골동품들이 뒤죽박죽 쌓여있다. 나이 지긋한 상과 제기는 버리기엔 아깝고 쓰기엔 내키지 않아 뽀얗게 먼지가 앉았다. 아홉 아들딸들이 어린 날 쓰던 이불은 포개어 놓기도 보자기로 묶어 두기도 한다. 틈바구니에서 공중전을 하는 이부자리를 까치발로 걷어낸다. 도떼기시장 가장 깊숙한 자리에는 두 뼘 남짓한 부피의 텔레비전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채널은 단 두 개지만 코앞에서 끝단까지 촘촘히 앉아 보기 바쁘다.     


 아담한 상방이 유난히 좋다. 아랫목은 초저녁부터 지글지글 끓어 올라 엉덩이와 발바닥이 발갛게 익는다. 동동 구르다 두터운 요를 방패막이 삼아 깔아 둔다. 방안이 열기로 들뜨면 바깥문을 열어 찬 공기를 들인다. 밀쳤다 닫았다 여닫이문을 당기며 수동으로 온도를 조절한다. 스산한 새벽이면 정수리까지 이불을 끌어올린다. 조곤조곤 들리는 말소리에 호기심이 일면 문틈으로 귀를 가져다 댄다. 곤히 잠든 엄마를 깨울까 봐 나가지는 못한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곱게 바른 문창지를 검지 손가락으로 꾹 눌러 구멍을 낸다. 밖으로 접힌 한지 너머 아궁이 뚜껑을 여는 할머니와 눈이 딱 마주친다. 죽었다. 몰래 뚫다 걸린 게 벌써 몇 번째인지.    

 

 상방 바깥문을 열면 가마 윗단에 좁은 마루가 있다. 딱 어른 엉덩이에서 무릎까지 길이이다. 갑갑함을 느낄 때면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동네를 구경한다. 옆집 아재는 무얼 하는지, 앞산을 뛰어오르는 바둑이는 누구네 강아지인지, 흙먼지 묻은 경운기는 어딜 가는지 눈으로 쫓는다. 옛집 최고의 전망대라 할 수 있다. 꼭두새벽부터 연기를 뿜어대는 아궁이 덕에 땀이 삐질삐질 나온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김 구름으로 찜질을 한다. 열기를 피해 대롱대롱 다리를 흔들며 발목을 딸깍딸깍하다 신발 한 짝이 텃밭을 향해 비행한다. 한 발로 콩콩 대며 주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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