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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Sep 25. 2021

우물에 다리 네 개 난 거미가 삽니다



 마당 한편에 밖은 네모나지만 안은 동그랗게 빈 우물이 있다. 깊이는 내 키의 대여섯 배 정도 돼 보인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연한 갈색의 매끄러운 나무판자를 지붕 삼아 덮는다. 원 모양의 덮개는 지름을 따라 부침개마냥 반으로 접힌다. 솜씨 좋은 막내 삼촌이 쇠붙이를 덧대어 완성한 작품이다. 성인이 혼자 들기에도 버거울 만큼 꽤 무거워 물을 퍼 나를 경우에만 한쪽을 들었다 놨다 한다.    

 

 오늘은 웬일인지 하늘로 뻥 뚫려있다. 할머니와 큰 고모가 팔짱을 낀 채 구멍을 향해 소리친다. 까치발을 들고 두 손으로 우물 모서리를 꽉 움켜쥔 채 새까만 어둠 속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넘실대는 검은 물 위로 그림자가 비친다. 대(大) 자로 팔다리를 뻗어 벽을 밀치고 있는 형세다. 우리 집에서 가장 운동신경이 좋은 막내 고모가 틀림없다. 

 “수세미랑 퐁퐁 좀 던져봐라!”

큰 고모가 대야에 담긴 수세미를 집어 아래로 떨어뜨린다. 지지하고 있던 한 손으로 탁 잡아낸다. 세제는 바가지에 실어 줄을 내린다. 옛이야기의 한 장면 같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다. 물론 줄을 타고 승천하지는 않는다.     


 돌벽 사이사이에 초록물이 들었다. 어둡고 습한 환경은 이끼가 살기에 좋다. 무릎을 이리 굽히고 저리 편다. 왼발로 무게중심을 옮겼다가 다시 중앙으로 돌아온다. 제자리에서 회전하고 층을 넘나 든다. 이미 두 손은 자유롭다. 청소가 시급했는데 할 사람이 없어 막막한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막내딸이 골머리를 앓던 문제를 해결해 주어 연신 빙그레 웃으신다. 마무리가 되었는지 네 발로 벽을 타고 오른다. 다리가 네 개인 거미인 걸까? 믿어지지 않는 힘을 선보인 개선장군이 지상으로 복귀한다. 빙 둘러싼 손바닥들은 마주치기 바쁘다. 큰 인물이 난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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