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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Sep 18. 2021

추석을 맛봅니다



 청명한 푸른빛 아래 각이 진 마당에 고소한 냄새가 폴폴 날린다. 흰 두건으로 머리를 싸맨 할머니는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아궁이 속을 휘휘 젓는다. 검고 늙은 아궁이의 뱃속에서 뽀얀 덩어리가 지면 틀을 꺼내 가마 앞에 놓는다. 무명천으로 감싼 순백의 말랑한 뭉치들은 틀 안에서 네모난 모양으로 굳는다. 고소한 냄새가 집안을 채우면 아이나 어른할 것 없이 잽싸게 몰려든다. 김이 폴폴 올라올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식칼로 반듯하게 칸을 나누어 썰면 절로 군침이 돈다. 깨소금을 착착 뿌린 짭조름한 간장에 푹 찍는다. 막 완성된 두부의 뜨끈하고 조금은 투박하게 깨지는 식감은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추석은 과연 큰 잔치라 할 만하다. 할아버지는 네 딸과 다섯 아들을 두었고, 그 아들딸들은 제각각 새로운 식구를 맞았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는 날, 집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으로 빽빽하다. 마을의 이장을 지내신 할아버지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엉덩이 뗄 겨를이 없다. 몰려드는 손님상을 내오는 분주한 손길은 며느리들의 몫이다. 하나가 가면 둘이 오는 끝없는 행렬에 미간에 주름이 진다. 중방에서 튀김을 부치다 마당을 거쳐 부엌으로 달려가야 한다. 일이 늦춰지는 건 당연지사다.


 튀김 바구니 사이를 비집고 앉는다. 이쑤시개에 햄과 맛살, 쪽파와 우엉을 끼운다. 꼬치 산적은 새하얀 밀가루 옷을 입고 계란물에 몸통을 적신다. 달구어진 팬 위에서 앞뒤로 몸을 뒤집으며 노릇노릇 익는다. 철 지난 한지 달력 한 장을 쭉 찢어 바구니 속에 빳빳하게 누인다. 달력 종이가 기름을 먹으며 누렇게 염색한다. 산적이 쌓일수록 서른 개의 숫자는 얼룩덜룩해진다. 조금 식었다 싶으면 이쑤시개의 뾰족한 끄트머리를 집어 후후 입김을 분다. 햄부터 베어 물었다가 쪽파를 씹고는 그대로 빼낸다. 햄과 맛살은 나의 영역, 쪽파와 우엉은 엄마의 영역이다.


 꼬치 산적 다음은 동그랑땡이다. 오징어, 고구마, 쥐포, 새우도 줄지어 대기 중이다. 튀김의 모양새가 다양해질수록 소쿠리의 개수도 늘어난다. 이 많은 걸 누가 다 먹겠나 싶지만 하루 만에 뚝딱 해치울 수 있다. 한 끼 식사 같은 간식을 야금야금 주워 잡수고 마당으로 뛰어나간다. 두부를 만들던 가마 속 불씨가 아직 살아있다. 은색 포일로 감자와 고구마를 싸서 장작 사이로 던진다. 쇠막대로 깊숙이 밀어 넣는다. 늦은 밤 출출할 때 이만한 야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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