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이틀간 진행되던 교통 파업이 끝나 다른 도시로 가려는 참이었다. 혹여나 차편을 놓칠까 어제 몇 번이고 확인하였는데 무심하게도 버스는 이미 떠난 지 오래다. 프런트 직원이 운행 시간표를 보며 내일 아침 9시라고 확답을 주던 목소리가 웅웅 귓가를 울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이라도 든든하게 먹고 나올 걸 그랬다. 먹음직스러운 조식에 손도 못 대고 뛰쳐나온 보람이 없다. 녹록지 않은 현지 상황에 내일 버스 없는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말이 씨가 되었다.
-다음 버스는 언제예요?
-문나르(Munnar)행은 하루에 딱 한 대밖에 없어요.
토끼눈으로 되묻는다. 대답은 똑같다. NO BUS! 또 바람맞았다. 이동하는 날 무탈히 지나가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9시에 출발 예정이던 버스는 새벽 4시 반에 도시를 떠났다. 내일 같은 시간대에 또 온다는데 이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하루를 더 묵고 컴컴한 밤에 버스를 기다리다가 놓쳐 길거리에 나앉은 장면은 상상도 하기 싫다.
-코친(Cochin)으로 가는 건 어때요? 거기서는 차편이 많을 거예요.
코친은 케랄라 중부의 대도시로 교통의 요지다. 분명 이곳보다 선택지가 넓을 것이고 마땅한 대안이 없으면 볼거리 많은 코친을 여행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웬 난리야. 이틀 연속 파업으로 발이 묶였던 사람들이 몰려들어 정류장이 터져나간다. 전쟁통이 따로 없다. 가뜩이나 계획이 틀어져 정신없는데 때 아닌 인파로 눈이 핑그르르 돈다. 더욱이 목적지를 표시한 플랫폼이 없어 어디서 무얼 타야 할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탈 수는 있을까? 승객을 마구잡이로 욱여넣어 버스는 이미 콩나물시루가 되었다.
-코친 간다면서요? 같이 타요!
아까부터 벙찐 나를 챙겨주던 구드빈과 쉬라즈가 동행을 자처한다. 코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길도 잘 알 테다. 1시간 반 남짓 걸리는데 서서 가면 힘드니 기다렸다가 앉아서 가는 버스를 타자고 한다. 그렇게 앉아가는 버스를 탔고 나는 여지없이 서있다. 짐가방의 손잡이를 꼭 붙잡고 중심을 잡으려고 하는데 어라, 애쓸 필요가 없다. 아무리 차가 흔들리고 급정거를 해도 빈틈이 없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샌드위치 행렬에서 안정감을 느낄 줄이야.
파업이 끝나자 거리는 인파와 차량으로 터져나갈 듯하다.
멈추고 서고를 반복하던 버스는 내리는 수만큼 새로운 승객을 더해 정신없이 내달린다. 그 틈바구니에서 종횡무진하며 쏘다니는 청년이 있는데 잽싼 움직임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과거 버스안내양과 같은 일을 하는 사내는 귀신같이 방금 탄 손님을 찾아 요금을 받는다. 포화상태에 이르면 차체를 두드리며 출발을 알린다. 케랄라의 버스는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정거장에서만 하차하지 않고 아무 데서나 내릴 수 있다. 천장에는 맨 뒤쪽에서 앞머리까지 줄이 이어져 있고 끝에는 종이 달려 있다. 내리고 싶으면 줄을 당겨 종을 울린다. 소리는 기사님에게 신호를 보낸다. 한 번 울림은 멈춤을, 두 번 진동은 출발을 뜻한다.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리는 자명종에 운행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종착역이 다가오자 지지부진하던 움직임에 속도가 붙는다. 실타래처럼 뭉쳐있던 승객이 재빠르게 풀려 나간다. 마지막을 코앞에 두고서야 자리가 난다. 짠내가 폴폴 올라오는 걸 보니 코친에 다다랐나 보다. 방지턱부터 입성을 환영한다. 완만하고 둥근 턱을 기대한다면 접어두시라. 시골 문지방 같은 높고 각진 턱에 몸이 공중으로 10센티 이상 뜬다. 양반다리로 앉으면 공중부양을 할 수 있다. 몇 차례 더 묘기를 부리고 나니 두 시간을 훌쩍 넘겨 터미널에 도착한다.
문나르 행 버스가 있을까? 대도시답게 큰 규모의 정류장에 가슴이 콩콩 뛴다.
-10분 뒤 출발입니다.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 돌아가긴 해도 오늘 안에 갈 수 있다. 더욱이 5시간가량 걸리니 분명 좋은 버스일 테다. 에어컨은 없어도 편히 앉을자리는 있겠지. 기쁨에 달음박질치다가 급격히 발걸음이 느려진다. 생각과 다른 전개에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고속버스와 비슷할 거라는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간다. 코친으로 올 때 탔던 버스와 똑 닮았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조수석 자리는 짐칸이고 그 뒤로 가로로 길쭉한 좌석이 배열되어 있다. 팔걸이가 따로 없어 지하철처럼 살을 맞대고 앉는다. 문제는 인원 제한이 없다. 3인용 의자에 세 명, 혹은 네 명이 앉는다. 엉덩이를 어떻게라도 붙여 다섯이 끼여 가기도 한다. 기사님 뒷자리의 여성 전용 좌석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수많은 여인들이 호시탐탐 자리를 탐낸다. 약간의 공간이라도 생기면 좁든 불편하든 상관없이 일단 앉고 본다. 어깨를 동그랗게 말아 보고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 본다. 어중간한 자세에 시름하는 중 2차 폭격이 찾아온다. 좁은 버스와 터져나가는 사람, 후덥지근한 남인도의 기후에 땀냄새가 진동한다. 끈적한 피부가 닿을 때마다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종이 한 장 들어갈 새 없이 밀착한 상태를 견디다 못해 일어나는 승객이 있다. 곧바로 후회하겠지만 말이다. 앉으나 서나 발 디딜 틈이 없다. 차라리 앉아서 벌 받는 게 낫다.
찜통 버스의 안식처는 딱 한 곳뿐이다. 앞쪽 짐칸 바로 뒤에 일인용 좌석이 있다. 유일한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눈치게임에 돌입한다. 산길로 접어들기 전 들른 정류장에서 자리가 난다. 운 좋게 낚아챈다. 드디어 평화의 순간이다. 어깻죽지도 활짝 펴고 다리도 뻗는다. 이대로만 간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여유롭게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데 눈이 따끔하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이물질을 내보낸다. 건기에 바싹 마른 토양과 비포장도로에서 폴폴 날리는 먼지와 모래바람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는다. 창문을 닫으려는데 유리가 없다. 대신 창틀 상단에 부채처럼 접히는 가죽 덮개가 있다. 임시방편으로 두툼하고 무게감 있는 덮개를 아래로 내린다. 올리고 싶으면 돌돌 말아 접어 위쪽 쇠 집게에 고정하면 된다. 긴장과 불편함에서 벗어나고 나니 그간 누르고 있던 감정이 밀고 올라온다. 아침부터 예기치 않게 버스를 놓치고 급박하게 계획을 틀고 연속해서 고된 이동을 해왔다. 행여나 화장실을 가거나 음식을 사는 중 버스가 떠날까 봐 마음 놓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오후 세 시가 다 되도록 밥 한 끼 먹지 못해 배를 골고 있으니 입안에 쓴맛이 돈다. 가방 속에는 물 반 병과 먹다 남은 바나나칩밖에 없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케랄라의 공용 버스는 단이 높지만 천장이 낮다.
무엇하나 쉬운 일이 없다. 인도에서 이동은 고통이다. 택시 사기를 당하고 좌석이 없는 열차표를 받아 기차 안에서 메뚜기처럼 뛰어다니고 파업으로 도시에 갇혔다. 이 정도 했으면 적응할 만도 한데 어떻게 매일 기가 막힌 사건이 터진단 말인가. 당황과 설움, 짜증과 허기짐이 한데 뭉쳐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창밖으로 냅다 소리 지르고 싶다. 눈을 찌르는 먼지를 핑계 삼아 왈칵 울음을 터뜨리고 싶다. 가죽 덮개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삭혀보지만 한 번 달아오른 뜨거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조심해요! 괜찮아요?
차체가 크게 출렁이자 승객의 몸이 요동치며 앞으로 쏠린다. 크게 넘어질 뻔한 아저씨의 팔을 붙잡는다. 그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싱긋 웃는다. 아내가 남편의 셔츠를 털며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묘한 기분에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핀다. 푹푹 찌는 더위 속 만원 버스에는 제각기 다른 표정이 있다. 인상을 찌푸리고 볼멘소리를 하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피곤에 찌들어도 미소를 띠는 사람이 있다. 누구에게나 가혹한 환경이지만 상황을 대하는 태도는 천차만별이다. 나는 어느 쪽인가. 문나르에 도착하려면 아직 세 시간이 남았다. 나의 마음가짐에 따라 피할 수 없이 주어진 시간을 천국처럼 보낼 수도 지옥처럼 괴로워할 수도 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입꼬리를 올린다. 바꿀 수 없다면 즐기자.
케랄라 기사님은 문나르 길을 다 외운다는 말이 있다. 해발 1,500미터를 훌쩍 넘는 고지까지 비탈을 따라 좁은 길이 이어진다. 창자를 연상케 하는 커브에 운전대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조수석 바로 뒷자리는 혼자 앉아 편하지만 공포 체험을 하기에 딱이다. 절벽 밖으로 차체 모서리가 삐져나오면 내 바로 아래가 텅 빈 듯하다. 울먹이는 고양이 표정으로 제발 빨리 출발하자고 눈빛을 쏜다. 길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험해진다. 기사님은 아랫입술을 꽉 물고 집중한다. 까딱하면 황천길이다. 운전은 예술의 반열에 오른다. 벼랑을 바로 옆에 두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역주행을 밥먹듯이 한다. 심지어 제대로 오고 있는 릭샤(삼륜차)와 오토바이, 자동차에게 클락션을 울리며 비키란다. 그러다 육중한 화물트럭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내린다. 산길을 엄청난 속력으로 달리고 모퉁이에서까지 추월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노련한 운전실력을 넘어서는 비법은 가벼움에 있다. 버스는 모터와 차체를 제외하면 빈 깡통과 같다.
문나르의 색깔은 산을 뒤덮는 차밭의 푸름이다.
굽이진 길과 오돌토돌한 비포장도로에 멀미가 나면 무서움도 뒷걸음질 친다. 헤드뱅잉을 하다가 가죽 덮개에 머리를 부닥치며 격하게 잠이 든다. 눈을 뜨니 승객들이 침을 흘리며 단잠을 자는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눈에 별이 박힌 네 살 꼬마숙녀는 턱밑까지 다가온다. 이목구비와 옷매무새를 관찰하고 손을 뻗어 내 뺨을 쓸어내린다. 엄마 치마폭에 얼굴을 숨기는 부끄럼쟁이가 용기를 낼 만큼 이방인이 신기한가 보다. 예상시간을 훌쩍 넘겨 6시간대에 진입한다. 창을 타고 흐르는 상쾌한 공기와 푸른 차밭이 먼저 여행자를 반긴다. 고단함을 씻기는 문나르의 쪽빛 첫인상에 8시간 반 이동을 견뎌낸 보람이 있다. 여느 때보다 힘든 날이지만 뒤돌아보니 여행자의 자세를 돌아보게 한 선물 같은 하루다. 남은 여행 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문나르 행 버스를 떠올리며 과정을 즐기고 웃을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