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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un 22. 2022

서른이면 모든 것이 결정될 줄 알았다

나는 계속 흔들리고 싶다


70이 넘어도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구나!


 어릴 적 서른이면 모든 것이 결정될 줄 알았다. 능숙하게 일을 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번듯한 목표 한 두 개쯤은 이루리라 기대했다. 나에게 서른은 성숙한 어른의 기준점이었다. 서른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직장인 8년 차가 되었지만 진로 고민은 끝이 없다. 배우고 싶은 것도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경험이 쌓일수록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게 마음에 들어찬다. 예전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서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시간이 갈수록 원하는 일이 선명해진다. 시도해보고픈 분야는 명확해졌으나 현실적인 압박이 닥쳐온다. 고정 수입이 있고 세상 물정을 어느 정도 아는 30대는 현실의 무게를 체감한다. 책임져야 할 일은 많고 기회비용은 커진다. 망설임은 눈처럼 쌓이고 행동은 망설여진다. 선택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한다.


 변화의 기로에선 요즘, 나의 마음을 울리는 사람을 만났다.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낯선 이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배우 윤여정의 일상을 담은 예능 <뜻밖의 여정>의 출연자이다. 윤여정은 오스카 시상과 드라마 <파친코> 홍보를 위해 할리우드에 갔다. 과거 미국에서 십여 년을 살아서인지 방송에는 그녀의 지인이 많이 나온다.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윤여정의 친구 중 나의 시선을 끌었던 인물은 김정자 님이다. 그는 68세의 나이에 현역 애니메이션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에 오스카 상이 있다면 텔레비전 방송계에는 에미(Emmy) 상이 있다. 김정자는 여러 차례 에미 상을 수상했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As we get older, We stop having goals in our life. And Yuh-jung shows us that we are never too old to accomplish big things.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 목표가 없어지잖아요. 근데 여정 언니가 보여줬죠. 무언가를 이루기에 우리가 결코 늙지 않았다는 걸요.)


 68세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정년을 넘어 노후를 한창 보내고 있을 시기이다. 더욱이 김정자는 이미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와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그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좋은 꿈과 상상력,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만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작품에 참여했지만 아직 자신의 기대를 충족하는 만화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75세의 나이에 전성기를 맞이한 언니 윤여정의 도전을 보며 희망을 품게 되었다고 답한다.

 “70이 넘어도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구나!”

일반적으로 김정자는 이미 사람들이 바라는 ‘무슨 일’이 일어난 사람이다. 엄청난 성취를 이룬 그에게도 나이는 무시하기 힘든 요소였나 보다. 그의 솔직한 고백과 미래를 향한 바람에 큰 위안을 얻는다.


<뜻밖의 여정>에 출연한 김정자 님의 인터뷰


 나는 먼 미래를 계획하고 달려가지 않는다. 지나온 매 해는 예상과 달랐다. 오늘 하루에도 어떤 재미난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번 달에 무슨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지, 연말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예측하기 어렵다. 마음 가는 대로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갑작스레 찾아온 기회는 일단 잡고 본다. 밀려오는 스케줄을 감당하느라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정신없이 해치우고 호흡을 고르고 나면 그제야 질문을 던진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고 싶은 게 무수한 나로서는 큰 틀은 있지만 세세하게 답하기 어렵다. 막막한 물음은 사회적 시선을 털어내지 못하고 방황한다. 요즘은 애매한 나이를 걸고넘어지는 말에 마음이 혼란스럽다. 김정자 님의 이야기는 배회하는 마음을 쿡 찌른다. 서른이건 예순이건 칠순이건 고민하는 건 똑같다. 어쩌면 나이라는 녀석이 더 덩치를 키우고 위세를 떨칠지 모른다. 덜컥 겁이 나지만 그냥 저지르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때 왜 과감하지 못했을까 후회할 테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인생의 끝이 다가와도 여전히 가슴이 떨리고 꿈을 꿀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실감한다.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계속 흔들리고 싶다. 아, 또 사고 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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