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대신 천원 論

손님 돈으로 써야 맛있다

by 타짜의 클리닉

한국에선 천원을 팁으로 줬다간 모욕감을 줬다고 상대가 덤빌 거다. 5천원도 좀 그렇고 만원은 팁으로 줘야 상대도 반색한다.



나는 티끌을 모아서 태산을 이룬다는 격언에, 식당이라면 티끌은 모으지 말고, 손님에게 즉시 써서 작은 동산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라고 한다. 바로 그게 천원론이다. 서비스업과 판매업에서는 주고도 욕먹는 팁처럼 사용될 천원이지만, 외식업은 다르다. 천원으로 손님을 얼마든지 만족시킬 수 있고, 수많은 경쟁자들과 차별화도 이룰 수 있다. 겨우 천원으로 말이다.



앞 장에서 하루 40만원 파는 연명의 식당도 더 나아지기 위해서 뭐라도 퍼줘야 한다고 말했다. 퍼주긴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돈이 없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바로 그때 이 천원론에 연결 지으면 그 걱정은 굿바이다. 바로 그 천원은 손님이 내주는 돈이다. 내가 내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아도 좋다. 손님이 얼마를 지출하냐에 따른 갈등도 없다. 3천원짜리 떡볶이를 팔아도 손님에게 천원을 더 달랠 수 있다. 4천원에 떡볶이를 주면서 어묵을 2개나 끼워 준다면, 3천원 떡볶이에 어묵 2개를 2천원 줘야 먹는 옆집보다 경쟁력은 자명하다. 물론, 어묵 2개를 먹고 싶지 않다면 그때는 떡볶이만 3천원에 파는 집으로 갈 테지만, 그렇게 배가 작은 손님은 없어도 그만이다. 그정도 산수도 못하는 손님은 오지 않는 것이 낫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남보다 더 줘야 한다. 잘 줘야 하고, 근사하게 줘야 한다. 심지어 끝내주게 줘야 할 정도로 외식업 시장은 레드에 + 레드오션 시장이다. 실패가 8할이라고 말할 정도로 답이 없다. 그렇게 희망적인 답이 없지만도, 적은 돈으로 주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라서 사람들은 끝없이 식당 창업을 한다.


하지만 맛있게 만들 재주도 없고, 근사하게 플레이팅을 할 공부도 배우지 못했다. 그저 집에서 먹던 식으로 혹은, 자신이 손님으로 먹어본 수십년의 경험치를 믿고 이미 흔해 빠진 그런 상차림으로 덤빌 뿐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줄 수 있는지 몰라서 못하고, 설사 안다고 쳐도 팔릴만한 싼 가격이 더 믿음직스러워 그런 걸 시도조차 못 하는 게 현실이다.



천원의 출발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양주로 이사를 가고 2년 후, 동네 파스타집에서 연락이 왔다. 오며가며 본 파스타집이었는데 그간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식당이었다. 파스타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은 탓이다.



하여간 주인은 8천원대에 팔던 파스타 가격을 천원을 내려 팔 계획을 마쳤고, 그걸 확인받기 위해서 컨설팅을 신청했다고 했다. 그날 나는 그 집에서 파는 피자가 보였다. 만원 초반에 팔던 피자의 원가를 물었더니 3천원쯤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 대답은 “파스타 가격을 거꾸로 천원 더 올려서 팔고, 대신에 앞으로 피자는 돈 받고 팔 생각을 마시라”였다.



8천원짜리 파스타를 7천원에 팔지 않고 9천원을 받으면 식당은 2천원이 생겼다. 7천원에 팔았다고 생각하면 사실이다. 그런데 대게 식당은 둘 이상이 온다. 그럼 둘이라 치면 파스타 2개에 18,000원을 받는데 주인은 7천원에 팔았다고 생각하니 4천원이 더 생긴 셈이다.



그렇게 생긴 돈으로 피자를 만들 수 있고, 피자 한 판을 그냥 준다면 손님은 18,000원으로 파스타 2개에 만원이 넘는 피자까지 먹는 셈이다. 어딜 가면 그렇게 줄까? 대한민국 어떤 파스타집에서 그렇게 주었던가? 그렇다고 식당이 손해일까? 이미 주인은 지치고 지쳐서 파스타 가격을 천원이라도 더 내려서 손님이 늘기를 바랬는데 말이다.



그렇게 상차림을 바꾸고, 메뉴판을 바꾸고, 가게 앞에 배너만 세웠을 뿐인데 손님이 즉시 알아차렸다. 하루에 30도 버거웠던 매출이 한 달도 되지 않아 150만원으로 뛰어 버렸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이득인 이 지출이 싫을 리 없었다. 당연히 동네는 물론이고 구리에서 평내, 심지어 마석에서까지 손님들이 소문 듣고 왔다고 말했다.



없던 손님이 늘면 감사해야 하거늘, 그 식당은 넘치는 손님에 비해 수익이 적다는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한달 천만원도 못 팔았던 식당이 5천을 파는데 천만 얼마 밖에 남지 않는다고 피자의 크기를 줄였고, 셋이서 2개를 시키는 손님에게 파스타 3개를 강요하면서 손님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의 배를 스스로 갈라버린 그 식당은 알바도 매일 쓰지 못 할 만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정말 딱하고 가여웠다. 어쩜 그렇게 바보같을까 싶었다.



KakaoTalk_20251010_113710997_01.jpg 너절한 반찬을 주고 3.5만원보다 < 더 받고 큰반찬이 3개다



2012년 파스타집을 통해 천원의 힘을 깨우친 나는 즉시 피자를 모든 식당에 대입했다. 부대찌개를 먹어도 피자를 줬고, 동태탕에 아구찜을 팔아도 피자를 주라고 했다. 손님에게 천원씩 더 받으면, 만드는 수고만으로 경쟁력 있는 상품을 가지는 셈이니 주인들도 기꺼이 동참했다. 심지어 삼겹살집에서도 피자를 주는 걸 밀어 부쳤다.



“아빠들이 소주에 삼겹살 먹고, 피자 한판 포장해서 가면 되는데 왜 그걸 거부하냐?” 그래서 삼겹살집 매출도 피자로 올랐다. 초밥집에서도 피자를 줬으니 더 이상 설명할 게 없다. 그 덕에 전국적으로 피자를 주는 식당들이 붐을 이뤘다. 현재도 많은 쭈꾸미집에서 주는 피자, 그게 바로 내가 만든 피자를 보고 베낀 결과다. 나는 그걸 이미 2012년부터 했으니다.



손님이 천원만 더 내게 하면 2명이면 2천원, 4명이면 4천원의 실탄이 생긴다. 바로 재료값이다. 내 돈으로 사야 하는 재료가 아니라서 아까울 것이 없다. 만드는 수고비 지출 정도야 주인이 감당해야 한다. 매출이 늘어나서 그 지출은 사실 감당할만한 정도가 아니라, 인건비를 써도 전 보다 남는다. 월매출 천만원에서 남아봐야 뭐가 남겠는가? 5천을 팔아 천만원 남는 게 왜 못마땅하고 작은가? 한 달에 천만원이면 1년이면 1.2억이고 연봉 1억을 받는 직업인데 도대체 뭣 땜시 왜 불만이란 말인가?



외식업은 3배의 마술이 있다. 대게의 식당들은 원가가 30%쯤이다. 천원의 재료비를 쓰고 3천원, 3천원의 재료비를 썼다면 8천원 ~1 만원 정도의 가격을 받는다. 그래서 손님 둘에게 받는 2천원으로 5천원 이상의 값어치를 줄 수 있고, 4명 4천원으로는 만원이 넘는 가성비를 기꺼이 내줄 수 있는 것이다. 옆집보다 만원어치를 더 먹게 해주는 가성비 식당이 질 리가 있는가? 아구찜을 시켰는데 해물탕까지 내주는 집을 마다할 것인가?


식당에서 천원은 엄청난 힘이다. 천원으로 음식만 더 내주어도 되고, 음식은 더 이상 손대지 않고 다른 것에 투자해도 폼 나기 좋은 천원이다. 일회용 앞치마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장당 100원이라서다. 정수기 물이 아니라 생수 500ml도 줄 수 있다. 개당 300원도 안되니까다. 부침개나 계란 후라이도 셀프로 먹게 할 수 있다. 그래봐야 원가는 2~300원쯤이다. 이 모든 걸 다 써도 천원이면 충분하다.



손님이 내 준 돈으로 썼으니 식당은 손해 본 것이 없다. 다만, 매출 대비 수익률을 따지는 결과치로 보면 이익률이 준 것은 분명하다. 천원을 더 받지 않고 이 모든 서비스를 하지 않아서 팔던 3천 매출과 4천으로 오른 매출에 대한 수익이 결과적으로는 같을 수도 있다.



결과적인 수익만을 따지면 한평생 식당을 해도 그나물에 그밥이다. 아무런 매력도 없이 팔면서 3천의 매출이 나올 리도 없거니와 설사 그렇다고 쳐도 그 매출은 불안하다. 언제 어느 때 빠질지 모른다.



그러나, 위생적인 일회용 앞치마에 생수를 주고, 부침개를 먹게 하는 식당의 4천은 점점 오를 일만 남았다. 그 식당은 그 맛(오르는 매출, 늘어나는 손님)에 빠져, 더 주려고 할 것이고 더 주기 위해서 가격을 올리는데 주저하지 않게 된다. 당당하게 비싼 식당이 되는 셈이다.



실제 맛창식,당들은 가격 올리는데는 주저함이 없다. 가격을 올리지 않고서는 옆집보다 잘 줄 방도가 없다는 것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나를 만나기 이전에 팔던 가격에서 별별 용을 써봤지만 다 헛수고였다는 것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다른 식당들은 이 간단하고 단순한, 손해도 없는 천원론을 써먹지 못하는 걸까?



바로 그건 여전히 팔릴 가격을 벗어나면 떠나는 당장의 손님에 대한 두려움이다. 7천원에 팔던 칼국수를 8천원이라고 올린 메뉴판을 보고 일어서는 어제까지의 단골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다. 그 손님을 앉히고 먹어보라고 해야 하는데, 주인은 홀에 없고 주방에 박혀서 인건비 따먹는 장사를 해왔으니 홀에 알바가, 직원이 일어서는 손님을 기어이 주저앉힐 이유가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올린 천원을 손님에게 다 쓰지 않으려는 못된 심보 때문이다. 떡라면에 떡을 일반 라면 가격보다 비싼만큼 다 넣어주면 되는데 거기서도 남기려고 하니까 떡라면도 팔리지 않은 것처럼이다. 파스타집 주인이 손님이 늘면서, 더 받은 천원에서 처음엔 100원쯤 시작해서 점점 이득을 챙기려고 500원까지 가져가려고 한 것처럼 말이다. 파스타에 피자를 주던 셈에서 피자도 파스타만큼 마진을 보려했기에 다시 쫄딱 망한 걸 잊어선 안된다.



천원은 내 돈이 아니다. 손님의 돈이다. 손님의 돈을 탐하는 건, 도둑질이다. 그걸 알고 쓰면 천원론은 천하무적 칼이 되어주는 게 사실이지만, 맛창식당을 카피하는 식당들은 도둑질을 하는 탓에 따라해도 효과를 보지 못한다. 이제라도 이 글을 보고 알아차렸으면 싶다.



이제 사례를 또 들어보자. 어느 ‘태국,라오스 음식 전문점’에 갔었다. 라오스식 볶음밥 9천원짜리와 똠양꿍 쌀국수 14,000원을 시키고, 아내가 좋아하는 공심채를 시켰다. 모닝글로리라고도 부르는 이 야채볶음은 동남아여행에선 매 끼니마다 먹었던 탓에 아내는 고수만큼 이걸 좋아한다. 당연히 그 식당도 공심채는 돈 받고 팔았고 가격은 8천원이었다. 둘이서 3가지를 시킨 합산은 31,000원이다.



라오스식 볶음밥이 9천원은 싸고, 만원은 비쌀까? 똠양꿍을 쌀국수로 15,000원은 비싸서 시키지 않을까? 그렇게 천원씩 손님에게 더 달라면 어떨까? 천원 차이로 비싸다고 팔리지 않을까?



천원이 비싸서 안 올지 모를 손님 걱정보다는, 천원씩 더 받아내고 공심채를 그냥 주면 어떨까? “공심채를 반찬으로 주는 라오스 식당이야”라고 입소문이 나면 어떨까?



공심채를 팔지 않고 반찬으로 주니까, 둘에게 25,000원(볶음밥과 쌀국수를 천원씩 올려서)을 받았다. 공심채를 따로 팔았을 땐 31,000원이 매출인데, 6천원이 줄었으니 식당이 손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착각이다. 둘이서 음식 2개에 8천원짜리 공심채를 매번 시킬 확률은 높지 않다. 무려 8천원을 더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찬으로 그냥 준다는 걸 알고 그 집을 외면할 확률도 낮을 게 분명하다. 공심채는 동남아 여행에서도 돈 주고 사먹었는데, 한국에서 그걸 그냥 반찬으로 준다는 건 특별한 매력이라서다.



공심채를 반찬으로 내주면 6천원 손해가 아니라, 손님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단, 2명인 손님이 늘어난다. 다른집보다 천원씩 더 부담하면 공심채반찬을 먹을 수 있으니 아무래도 그 집을 찾게 될 것이다. 거기에 6~8천원짜리 공심채를 공짜로 먹으니 짜조건, 맥주 한병이건 더 시킬 여유가 생긴다. 사람은 고마움에는 보답하려는 습성이 있기에, 공짜인 공심채 반찬 때문에 뭔가를 하나 더 시킬지도 모른다. 그걸 포함하여 어쨌든 간에 손님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공심채 반찬을 주는 라오스식당”은 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또 있다. 큰반찬은 가치 있는 반찬이어야 하고, 돈값 하는 반찬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치가 덜한 반찬은 줘도 큰 매력이 없다. 손님이 봐도 얼마 안하는 재료로 만든 반찬 역시 끌림이 덜하다. 기왕에 주는 반찬은 선물이 되어야 한다.



콩나물반찬이 아니라 공심채라서 특별한 셈이다. 우리에게 흔한 나물이 아니라, 동남아 사람들이 즐겨먹는 나물이라 궁금한 것이다. 이렇게 천원으로 만든 반찬은 아무거나여도 되는 게 아니다. 사이즈가 커야 하고, 색달라야 하고, 재료비가 제법으로 느껴져야 한다.



한번 더, 친절한 가이드를 한다면, 동남아 음식에서만 공심채가 유용한 반찬이 된다는 생각은 틀렸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피자를 삼겹살집에서도 써먹었다. 그것도 아주 잘 써먹었다. 공심채를 한식이라서 쓸 이유가 없고, 우동집이라고 나몰라라 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공심채를 모를 수 있고, 줘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실제로 줘보면 안다. 줘보지도 않고 스스로 판단해서 거르는 주인들의 습관은 정말 나쁜 버릇이다. 줘서 좋은 이유보다 주기 싫은 이유가 훨씬 더 찾기 쉽고 많다. 그러니, 셀프로 판단하는 객관화는 사실 다 거짓이다. 그냥 그렇게까지 주기 싫은 거다.



천원을 더 올렸는지 손님이 얼마나 잘 알까? 모른다. 김치찌개 값을 대한민국 모든 식당이 8천원에 팔지 않는다. 대략 8천원쯤으로 생각하지만, 어디는 6천원도 받고 어떤 식당은 만원도 받는다. 손님이 인지하는 가격이 분명 있기는 하지만, 집집마다 가격이 다른 것도 이해하고 인정하기에 사실 천원을 더 받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전혀 어렵지 않다.



스스로 좁은 상권에 갇히고 매몰되어 바로 옆 가게와 비교해서 그 집보다 비싸면 손님이 없을까 걱정할 뿐이다. 내 옆집에 가는 손님을 뺏어오는 게 장사가 아니다. 그거 뺏는다고 내가 먹고 살아지지 않는다. 남의 동네에서 택시까지 타고서라도 오는 손님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다르게 줘야 하고, 폼나고 특색있게, 비싼 걸 줘야 한다.



그 묘수는 달리 없다. 손님이 주는 돈이어야 내가 무기로 쓸 수 있다. 내 돈에서 꺼내 주는 선물은 한시적이다. 지속할 수 없다. 지속되지 못하는 컨셉은 접는 순간이 외양간 문을 연 순간이다.



13년 전에는 피자를 천원(1인당 더 받은)으로 만들었고, 막국수집에서 불고기전골을 주는 컨셉도 천원론에서 나왔다. 망한 막국수집을 인수해서, 불고기전골 반찬을 줬더니 월매출 1억을 찍었다. 겨우 손님 한명당 천원씩 더 받아냈을 뿐인데 망한 자리에서 1억씩 팔아냈다. 이 책을 보고도 큰반찬을 만들 생각이 없다면, 당신도 참 대단한 고집이다. 당신은 참 가족을 힘들게 하는 나쁜 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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