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를 찾아야 한다
4. 변두리 창업학 1
저는 이소장의 변두리 창업학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동네라면 구석자리를, 도심보다는 가든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지당하기 그지없는 이소장의 말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반박을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 들어도 맞는 말이었으니까요. 누가 자기 재산을 들여서 월세 노예살이를 자청할까 싶지만, 현실은 흔합니다.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에 뛰어듭니다. 사실 제가 가진 돈 1억은 저에게나 컸지, 나가보면 비웃음거리도 못된다는 건 부동산 서너 군데 방문으로 이미 깨달았습니다. 참 보잘것없는 돈이구나. 내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돈으로는 하지만, 그런 돈으로 너끈히 창업을 해서 성공하는 사람도 수두룩 하는구나를 곁에서 봤습니다. 저에게는 동네 형 이소장이라는 엄청난 고수가 재야에서 한량으로 살고 있던 탓이었으니까요.
저에게 주어진 방향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동네 상권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상권이 주 7일 상권이라는 건 착각이라고 했습니다. 아주 큰 착각이라고 이소장이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주말에는 야외로 가끔 나가거나, 집에서 쉬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동네 식당을 주말에 이용한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동네에서는 밥집보다는 술집이 좋아. 주말에 밥 먹으러 가는 동네 사람은 나갈 형편이 안되거나, 주말에도 시간이 바쁜 사람들이야. 그들에게 주말에 편하게 밥 먹을 여유는 없다고. 그래서 동네에서 7일 장사를 하려면 그나마 술이 강한 식당을 해야 해. 술은 야외에서 먹지 않거든. 아무래도 동네가 편하거든. 따라서 가족 손님을 주말에 포기해야 할 테지? 술 손님인 남자 어른을 위한 식당을 차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야. 여기서 또 하나의 팁. 동네에서 술 마실 때 번화한 곳(사람 왕래가 많아 월세 비싼 곳)보다는 뒤로 간다는 사실. 동네 사람들에게 나 술 마신다는 광고를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해. 멀어봐야 동네라고, 코 앞에서 마시진 않아. 그럴 바에야 슈퍼에서 술 사다가 집에서 먹으면 훨씬 싼데 뭐하러 코 앞 술집을 가겠어? 안 그래? 그래서 동네에 차릴 때는 뒤로 가도 좋아. 구석진 곳도 좋아. 술 마시러 슬리퍼 끌고 찾아온다고. 걱정은 붙들어 매. 오히려 집 앞 지하철 역 앞에서 수십 개의 식당이 바글거리면서 손님 쟁취하려고 기싸움하는 그게 더 걱정을 할 일이야. 비싼 권리금 주고, 높은 월세 물어가면서 결국 서로들 제 살 깎아 먹기로 할인 쿠폰 날리는 거 숱하게 봤잖아. 거기에 뛰어드느니 뒤로 가는 게 낫지. 암 백번 낫지. 그럼 1억으로 차리고도 남을 거야. 앞길에서는 꿈도 못 꾸는 월세를 내면서, 인테리어 근사하게 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쏠쏠한 아지트로 소문날 거야”
그러면서 이소장은 한 번 더 고수의 날카로움을 던져줍니다. 경험이 쌓아 준 내공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그 뒤의 몇 수. 까지도 내다봅니다.
“대신 술이 강한 식당은 매출의 한계가 있어. 인정해야 해. 첫째 영업시간의 한계. 둘째 아무래도 대형은 못 될 테고, 라면 먹듯이 후다닥 먹는 게 아니니까 회전율의 한계도 있어. 그리고 셋째는 술이 강한 탓에 음식이 맛있어도 음식 기억을 잘 하진 않아. 술을 먼저 생각할 때 찾아오는데 그 술이란 것이 어디서나 파는 공산품이라는 것이 문제지. 그래서 술이 강한 식당을 동네에 차리면 밥집보다는 주 7일 상권을 안고 가는 건 확실한데, 상권을 키우는 일은 어렵다는 거야. 술 먹으러 옆 동네서 원정까지 온다는 기대는 무리일 테니 말이지. 음식은 옆 동네, 옆 옆 동네까지 소문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술은 어디나 파는 거라서, 특징과 차별화가 딱히 없는 거라서 동네 사람만을 위한 식당이 된다는 단점도 알아야 해. 물론, 그걸 극복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등병에게 다 알려준다고 장군 되는 거 아니니까, 그건 일부러 말하지 않을게”
술이 강한 식당은 밥보다는 술과 어울리는 음식을 파는 식당을 말합니다. 회, 삼겹살, 치킨, 해물찜, 감자탕 등등으로 볼 수 있다고 이해시켜주었습니다. 마무리로 밥을 먹기는 하지만, 시작부터 밥과 회를 먹지는 않습니다. 시작부터 밥에 감자탕 전골을 먹지는 않듯이 말이죠.
돈가스에 술을 먹지 않습니다. 술 잘 먹는 저도 못 먹습니다. 칼국수에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쌈이라면 모를까, 칼국수에 술은 먹지 않습니다. 김치찌개에 술은 먹을 수 있지만, 김치국에 술은 먹지 않습니다. 이게 참 어렵지 않더군요. 나에게 적용을 해보면, 내가 손님으로 살아온 세월이 45년이니까 뭐든 척척 내가 나에게 대답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소장의 논리는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참 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