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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Mar 14. 2024

자녀 교육 - 1

현재

6,480,572원


3개월, 정확히 말하면 2개월 하고도 2주 동안의 기숙사 비용이다.

이게 국방비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위용(?)이다. 

천조국의 돈벌이 수단 중 하나인가 싶다.

아이는 지금 UCLA에 교환학생으로 가있다.

1월부터 6월 중순까지 2개 쿼터 동안.

2쿼터 기숙사비는 카드 결제가 되겠거니 생각하고 느긋하게 있었는데 카드 결제가 안된단다.

어찌하나 끌탕을 하고있던 차에 아이가 내게 600만 원을 송금한다.

송금 한도가 600이라서 부족한 건 보태서 기숙사비 결제해 달라며...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환율과 수수료 없는 앱을 통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송금 완료하고 영수증을 카톡으로 보내니, 48만 원은 고맙게 받겠단다.

???

무슨 말인가 했는데 결국 아이가 기숙사비를 낸다는 의미였다.

600만 원은 송금해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니 1 쿼터 기숙사비도 엄빠가 지원해 줬고 지금 가진 달러도 넉넉하다며 필요하면 말하겠다고 한다.

교환학생 가기 전에 과외로 모은 돈과 지난달에 교환학생 장학금을 받았지만 기특하기도 하다가 얼핏 부끄럽기도 하다.

어찌 늘 위를 보며 살겠냐마는 같은 논리로 어찌 늘 아래만 보고 살까.

태어날 때 가난한 건 죄가 아니지만 을 때마저 가난한 건 죄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아이는 올해 4학년이다.

교환학생 다녀오고 복수 전공까지 하다 보면 아무래도 4년으로 졸업 하긴 어렵다.

한 학기나 1년을 더 다녀야 한다.

4년 장학생이라 등록금 한 번 안 내고 졸업하나 했는데 아쉽다.


재수 없다고?

그래서 자식 자랑하지 않는 게 최선이고 가급적 말 않고 지내려 했다.(남들은 그리 안 보겠지만^^)

그러나 엊그제 누군가를 만나 우연찮게 자식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여기에 그동안의 과정을 올려서, 재수 없지만 참고 읽어줄 몇몇 분과 공유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재수없는 짓 좀 하려 한다.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해의 끝자락에 아이는 수시전형으로 여러 곳의 대학에 합격했다.

KAIST를 갔으면 하는 내 희망과는 다르게 서울대를 택했던 아이가 등록금 고지서를 출력해서 내게 보여준다.

등록금 금액이 적혀있고 그 아래 납부액 칸에는 '0'이 적혀 있다.

순간 "이게 뭐라는 거지, 왜 납부한 것으로 되어 있는 거지?"

혹여 등록 못하게 될까 봐 쫄아서 학교에 전화하고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수석으로 합격한 거란다.

이건 또 웬 뜬금포?

국립대라서 학비가 비교적 저렴했지만 퇴직한 나로선 큰 짐 하나 덜은 거였다.

아이에게 축하한다며 꼭 안아주고 여지없이 덧붙인 한 마디.

"매 학기 학과 수석해서 장학금 받으면 좋겠다."

이런 젠장... 감동파괴 전문가답다.ㅉㅉㅉ


그런데 얼마 후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이공계우수인재에게 주는 국가장학금 대상자로 선정됐는데 그걸 받으면 수석 장학금을 포기해야 한다고...

누굴 바보로 아나?

한 학기만 장학금을 주는 수석장학금과 4년 전학기를 받는 국가장학금(흔히 '이공장'이라고 줄여 부른다) 사이에서 선택하라니...

그래서 아이는 4년간 학비 내지 않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이후에 학과 수석을 몇 번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 예전과는 달리 학과 수석에게는 장학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기념식하며 사진 찍고, 증서 주고, 작은 선물 주는 게 전부였다.


그런 아이에게 교환학생이 신청할 수 있는 외부장학금(900만 원 정도로 기억한다) 이 있다는 정보를 모르고 신청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보가 돈'이라며 투덜거렸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나는 더더욱...)

그렇게 효도하던 아이가 교환학생 가고 싶다기에 냉큼, 기꺼이 그러라고 했다.

아뿔싸...

천조국 미국을 뻘로 봤다.

학비는 교환학생이니 내지 않아도 되지만 기숙사비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아이가 모처럼 여유 있는 생활을 할 기회인데 학교와 기숙사만 오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체류기간 동안 보험료도 국내 보험사의 5배나 됐다.

내가 가진 현금은 바닥이고 오히려 아이가 3년 동안 과외하며 모은 돈이 제법 많았다.

그로 인해 약간의 다툼이 있긴 했다.

넉넉하지 않은 상황을 초래한 가장으로서의 자격지심으로 예민해졌던 것이다.

부모의 재력을 떠나 어느 선까지 아이를 지원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가는 정답이 없는 주제니까 패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아이의 성과가 거저 얻은, 저절로 얻어진 것으로 비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이 어찌 그리 만만한 곳인가?

꼬물거리던 아기 때부터 혼자 멀리 떠나 위치 공유 앱으로 서로의 위치를 볼 수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항상 붙어 다녔던 부모는 안다.

아이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는지.

또 부모는 어찌했는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없겠지만 누군가에겐 참고가 될 거란 오만에 그 과정을 최대한 건조하게 팩트만 적어보고자 한다.

그럼에도 자랑질이 여기저기 묻어 나오겠지만 이해할 거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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