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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Apr 21. 2024

자녀 교육-2

초등학생 시절

자랑질로 여겨지겠지만 그래서 재수 없을 수 있지만 혹여 참고가 될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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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모르니? 넌 집에 가서 공부 안 하니."

선생님이나 동네 어른이 한 말이 아니라 아이가 유치원 때 친구가 한글을 물어보자 한 말이라고 아내가 들려줬다. 그 말을 전해 들으며 미안하고 부끄럽기 그지없었다며...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담임이 반 아이들에게 말했단다.

"너희들 OO이 잘 기억해 둬, 나중에 큰 인물 될 거야."

이 또한 같은 반 친구가 집에 가서 엄마에게 말한 게 다시 아내에게 전달되었다.

많이 뿌듯했다며...


아이는 칭찬을 많이 듣고 자랐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생존본능은 원초적인지라 칭찬이 어떤 혜택을 주는지, 집안 분위기를 어찌 좌우하는지 경험적으로, 본능적으로 알고 아이는 그것을 향한 듯 하다.

우리 부부, 특히 집사람은 책을 좋아했다.

주말이면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펴는 게 일상이었고, 그건 아이에게도 아주 익숙한 그림이었다.

초등 3, 4학년 무렵 아내의 제안으로 가족 독서토론을 시작했다.

아이는 크게 반기며 신나라 했다.

9살 위인 큰 딸은 곧 대학생이 되는데 고맙게도 기꺼이(확신할 순 없지만) 그러자 했다.

매주 1권 이상 각자 다른 책을 읽고 내용을 요약해서 나누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가끔은 변화를 주느라 독서 나눔 후 10분 글쓰기도 병행했다.

1년쯤 지나 논어를 추천했더니 읽고 나서 필사를 하겠단다.

그리고는 한문과 음, 해석 모두를 몇 개월에 걸쳐 마쳤다.

(다 읽었다고 말했는데도 아빠의 칭찬이 부족했다며 내게 삐지기도 했다)

700쪽이 훌쩍 넘는 돈키호테 완역판과 밀의 '자유론', '소크라테스의 변명' 등 인문고전을 읽었다.

캠핑을 다닐 때도 책은 늘 필수품이었고 놀다가 해먹에서 쉴 때면 책을 집어 들었다.

대견하기도 했지만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다.

이 아이를 어찌해야 잘 키울 수 있을까?

장애인 아들 '릭 호잇'을 휠체어에 태운 채 마라톤과 철인 3종 경기는 물론 미국 횡단까지 이뤄 낸 아버지 '딕 호잇'(4년 전 타계)은 "부모는 자식을 쏘아 올리는 로켓"이라고 말했는데 내심 걱정이 앞섰다.

호잇 부자의 마라톤


난 문화사대주의가 심하다. 영화도 한국영화는 거의 안 보고 국내작가들의 책은 거의 손에 쥐지 않는다.

눈과 귀에 익숙한 것들이라서인지, 일상에서 접하는 것들을 굳이 시간 내서 보는 것이 싫은 탓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 때문에 대리만족하느라 그런 걸지도...

그런 내가 삼국지, 정관정요, 열국지 등의 중국 역사서를 좋아하니 아이도 같이 따라 읽었고, 엄마아빠를 앉혀놓고 화이트보드에  삼황오제부터 청나라까지 중국 역사의 흐름을 "요순우탕문무주공..."을 읊으며 설명했다.(5권으로 된 정관정요는 3권 중간 정도에 초딩이 읽기에는 적절치 못한 19금 장면이 묘사되어 있어서 상황을 설명하고 그 뒤는 읽지 못하게 했다. 근데 그건 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된 지금 그 책 3권째를 다시 펴지 못하고 있다)

시험기간이면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바로 책상에 앉아 밥 먹기 전까지 부족한 내용을 들여다봤다.

주말이면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설명해 줄 테니 앞에 앉으라며 엄마아빠에게 수학, 과학을 알려주곤 했다.

그런 아이를 위해 유리창 뒷면에 커다랗고 하얀 백지를 붙여 대형 화이트보드로 만들어 활용했다.

동네에서 소문이 났다.

"OO이 부모는 아이가 토할 때까지 공부시킨다."라고.

학교에서 10가지 일이 있으면 집에 와서 20가지를 재잘거리는 아이라서 구토라는 커다란(?) 사건을 말하지 않을 리는 없는데...

칭찬받기 위해서인지 재미있어서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였는데...


그렇게 칭찬과 기대 속에 초등학교 졸업식을 맞았다.

졸업식에서가 첫 대면인 담임선생님은 대뜸 민사고(강원도 횡성군 소재 민족사관고등학교)보내라고 한다.

이런...ㅉ

가면야 좋지만 학비가 얼마인데?

걱정은 더 커졌다.

아이의 재능을 경제상황 때문에 억누르는 부모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여태껏 '어떻게 되겠지'라며 회피한 탓에 넉넉치 못한 경제 상황이 가슴을 짓눌렀다.

민족사관고등학교

다섯 살 때 아이는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재능이 나쁘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는지, 피아노 선생님이 음악에 재능이 탁월하다며 전공을 시키라고 부추겼다.

그래서 '피아노 전공은 어떠니?' 물어봤다.

아이 왈, "피아노 잘 치는 의사가 될 거야."

......


수십 년째 둥당거리기만 하며 제대로 치지 못하는 기타에 맺힌 나의 오랜 한(?)을 풀고자 하는 마음에 5학년 때 기타 학원에도 보냈다.

아이 또한 좋아라 했다.

(부모의 말에 순종하기 위해선지, 배움에 대한 아이의 욕구 때문인지는 굳이 확인하지 말자)

기타 또한 쉽게 배우고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늘었고 어쿠스틱을 거쳐 클래식 기타로 넘어갔다.

얄미울 정도로 부러운 재능이었다.

예중을 보낼까도 생각했으나 아이는 확고했다.

음악은 취미로 잘하고 싶고 자기는 공부로 성공할 거라며...

(사실 공부나 악기 등을 쉽게 익히고 금방 실력이 느는 것을 타고난 재능이라고 치부하는 건 위험하다. 억지로든 좋아서든 거기에 매달린 시간과 노력은 재능 덕이라며 묻히는 거다. 많은 이들이 관심과 흥미와 노력이 부족한 걸 재능이 없어서라며 포기의 변으로 내세우는 게 위험하다는 거다. 물론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조금만 생각해도 수학, 과학의 원리를 깨치고, 손이 저절로 피아노 건반 위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건 무시해도 될 정도의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거나 듣는 재능이 있다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몰입과 시간 투자의 결과인 것이다)

거실 벽에 붙여 놓은 글귀(강수진 발레리나의 책에 나옴)

아이 엄마는 부모의 말이 문서라며 아이를 향한 말에 늘 신경을 썼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건 아이가 TV에서 '국경없는 의사회'의 활동을 보고 멋져 보여서 하는 말이고 아이 엄마는 미사일 만드는 과학자가 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하필 왜 미사일인지 궁금했지만 아직까지 그 이유를 물어보진 못했다. 오랜 세월 살아보니 호전적이긴 커녕 세상 쫄보인데 말이다)

아이의 은행계좌 개설 때 종이 통장 겉면에 '거룩한 OO'이라고 프린트해서 달라고 은행창구 직원에게 부탁했고 그렇게 통장이 새로 만들어지고 바뀔 때마다 '거룩한 OO' 통장은 쌓여갔다.


어린 아이니 어찌 이런 면만 있었을까.

아기 때 사과를 가리키며 '사과'라고 알려주면 꼭 '과사'라고 말해서 어디가 모자란 건가? 걱정했고,

약을 먹일 때면 도로 뱉어 내고, 강제로라도 먹일라치면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자해(?)하느라 약 먹이는 시간만 되면 온 집안이 초비상 상태로 1~2시간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집에 놀러 온 아래층 아주머니에게는 "아줌마, 발바닥이 까매요"라며 난감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아이의 성장에 칭찬과 재능 중 어느 게 먼저인지 모르겠다.

욕심이라는 재능이 어려서부터 발현된 건지, 칭찬이 그걸 자극했는지.

우리 부부는 같은 생각이다.

어느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둘 다 있어야 시너지가 난다고.

그게 공부든 음악이든 스포츠든 똑같다고.


그렇게 피아노, 기타 학원만 다니던 초등학생 시절을 마치고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에 진학했다.

아니다. 학교와의 직선거리는 꽤 가까웠다.

다만 찻길을 서너 번 건너야 학교에 도착하는 등굣길이 신경 쓰여 중학교가 배정되고 나자마자 학교 앞으로 이사 갔다.

그렇게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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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 후반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주코시스(zoochosys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이상증세)  보인다.

말을 예로 들면 동물원의 일부 말들은 이빨로 울타리를 물고 목을 비틀어 끙끙거리는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니컬러스 도드먼이라는 수의사는 '돌아다니고 달리고 풀을 뜯고 싶어 하는 본능적 활동이 동물원에 갇히면서 '생물학적 좌절'로 이어지며 말들이 이상행동을 한다'라고 설명한다.

십분 공감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초등학생 때까지는 집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한다.

아이들이 가진 에너지나 생물학적 본성은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설계되었고 우리 조상들부터 내 어린 시절까지도 그리 했다.

지금은 그러나 시골에 사는 아이들(시골에 살지 않아서 확인하지 못하고 짐작으로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렇지 못하다. 이제 어린 시절의 삶은 압도적인 비율로 닫힌 문 뒤에 있어야 하고, 아이들이 놀 때는 감시(?)하는 어른이 있거나 거대기업이 장악한 마케팅 도구인 전자기기를 들여다본다. 아이들이 원하기도 하지만 일부 부모는 아이들의 칭얼거림에서 벗어나고자, 그리고 편안한 식사를 위해 아이의 시력이 대충이라도 기능할 때부터 전자기기를 던져준다. 학교에 다니게 되면 그다음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 짐작하는 현실이고.


위 책의 내용을 조금 더 빌어오면,

어른들 없이 또래들끼리 놀다 보면 어떤 놀이를 할지 생각하느라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고 놀이에 대한 규칙도 만들어야 하며 아이들도 설득해야 하고 다른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법도 알아내야 한다. 놀이하는 차례에 대해 친구들과 협상하는 법도 배워야 하고 따라서 타인의 필요와 욕구, 그것들을 충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한 실망감과 좌절감에 대처하는 법도 배운다.

이렇게 또래와의 놀이는 아동발달에 중요한 세 가지 영향을 미친다. 그중 하나는 '창의력과 상상력'이고 두 번째는 '사회적 유대'(타인과 상호작용하고 어울리는)이다. 세 번째는 즐거움과 기쁨을 경험하는 방법을 배우는 '살아 있다는 느낌'이다.

이저벨 벤키 박사는 '우리가 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들이 제대로 기능하는 인간이 되는 데 추가적으로 따라붙는 사소한 요인이 아니라 그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놀이는 견고한 인격의 토대가 되며 이후에 어른들이 자리에 앉아 설명해 주는 모든 것은 이 토대 위에 쌓인다.'라며 '오롯이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자유로운 놀이라는 토대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리노어 스커네이지라는 활동가는 말하길, '갑자기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아이들의 삶에서 빼앗아가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놀기 시작할 때도 주로 어른들의 감독을 받으며, 이 어른들이 규칙을 정하고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 오늘날 아이들은 조직된 활동에 참여하고 이때는 늘 어른이 개입해서 규칙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자유로운 놀이는 감시하에 있는 놀이로 변했다. 리노어의 말에 따르면 이는 곧 오늘날 '아이들이 이 기술들을 개발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성인기를 대비해 줄 삶의 주고받기를 경험하지 못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문제를 겪지 않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 짜릿함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이 사실상 자택에 구금된 지금, 원래는 뛰어놀던 시간에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

한 연구는 이제 이 시간이 압도적으로 숙제와 전자기기 사용, 부모와 함께 하는 쇼핑에 쓰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 어린이들은 20년 전보다 학업에 매주 7.5시간을 더 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어른들도 이미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고 거대 소셜기업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하물며 아이들은...?

넷플릭스의 다큐 영화 '소셜 딜레마'와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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