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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Jul 17. 2024

자녀교육 - 3

중학생 시절

중학생이 되어서도 독서 토론은 계속 진행했다.

'스터디 코드'나 '미쳐야 공부다'와 같은 학습 방법이나 동기부여에 관한 책들을 나와 아내가 먼저 읽고 아이에게 추천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하루 18시간 공부했다는 저자의 말에 아이가 자기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 우리는 주말이면 집 근처(차로 10여 분?) 시립 도서관에 갔다. 아침 일찍 가서 저녁 무렵 돌아왔다.

아이는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었고, 우리 부부 또한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먹을거리를 가져가기도 했고 가성비 갑인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했다.

아이는 시험 때면 학습 장소의 지루함을 피하고자 집과 도서관을 번갈아 이용했다.

(물론 도서관에 갈 때면 꼭 엄마와 아빠를 '좌청룡 우백호'로 대동해야만 했고, 집에서 공부할 때면 우리 또한 옆에서 책을 손에 들었다) 


18시간이라...

도서관은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자정에 문을 닫았다.

어느 토요일,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도서관에 도착하니 아침 6시 50분.

조금 기다리니 도서관 문이 열렸고 첫 손님으로 입장해서 자리를 잡았다.

늘 그러하듯 3인용 테이블에 나, 아이, 아내의 순으로 앉았다.

그리고 시작된 시간, 시간, 책, 책... 들의 축적

세끼 식사시간과 잠깐의 휴식 시간을 빼고 딱딱한 도서관 의자에 앉아 아이는 공부를, 아내와 나는 도서관 책을 예닐곱 권 쌓아두고 읽어나갔다.

차고 넘치는 게 책뿐인 도서관인지라 매력 없는 책은 바로 옆으로 치우다 보니 그날 하루 내 손을 거쳐간 책은 스무 권이 넘은 듯하다.ㅎㅎ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중간중간 아이에게 물어봤다.

"힘들지 않아? 그만하고 집에 갈까?"

"아니"

아이의 답은 단호했다.

어찌 힘들지 않았으랴. 그래도 아이는 기록을 세우고 싶었나 보다.

더구나 해야 하는 공부였으니 실리와 명분이 동시에 충족되는 시간이었을 거다.


시간이 흘러 음악소리가 자정이 다가옴을 알렸다.

17시간의 고행(?)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도서관 문을 나서는데 구토가 일었다.

"너는 괜찮아? 아빠는 토할 것 같은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아직까지는) 장시간 수행이었다.


중학교 1학년 2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이 시작된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이가 영재학교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한테 들었다며 거기 가면 수능 안 보고 대학 갈 수 있다고 했단다.

(국제학교, 자사고, 민사고, 과학고는 들어봤지만 영재학교는 그때 처음 들었다)

그러면서 영재학교 가고 싶으니까 도와달라고 한다.

뭔지 모르지만 학교이름이 그럴듯한 데다가 아이가 가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하는데 어찌...ㅎㅎ

그렇게 시작된 영재학교 도전.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정보가 없던 터라 어찌 준비해야 하는지 몰라 집 앞 수학학원에 갔다.

한 달쯤 다녔나? 아르바이트 대학생이 봐주는 듯한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그냥 집에서 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한 두 군데 다니다 말다 하며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제대로 된 학원에 보내야 한다는 주변 학부모 말을 듣고 '영재학교 어쩌고'가 붙어 있는 학원에 갔다.

먼저 테스트를 해야 한단다.

테스트가 끝나고 결과지를 들고 상담하는데 선행학습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기도 하고 도전하기에 너무 늦었단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고, 중3이 된 5월에 영재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는데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며...

가장 좋은 마케팅 방법이 '겁주기'여서인지 그렇게 부모의 마음을 흔들었다.

어찌어찌해서 테스트 본 학원 중 비교적 부드럽게 상담한 학원으로 정해서 등록했다.

과목은 수학과 과학.(영재학교는 수학과 과학 시험만 본다)


아이는 덩치가 작았다.

키도 작고 잘 먹는 편임에도 빼빼 말랐다.

그런 아이가 학원을 다니니 보기에 안쓰러웠다.

중2 겨울방학에는 학원에서 '텐투텐(10 to 10)'이라는 프로그램을 한다고 했다. 방학기간 중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 있는 거다. 그 비용은 100만 원이 조금 넘었던 거로 기억한다.

그렇게 시작된 방학 중의 텐투텐...

학원에서 오는 아이를 마중 나가서 함께 걸어오는데 엄마와 함께 앞서 가는 아이가 갑자기 휘청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인지 걷다가 무릎이 꺾인 거다.

이거 이대로 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에 아이 엄마가 너무 힘들면 그만두자고 했더니 역시 이번에도 '노'라는 대답.

처음에는 학원에서 보는 시험에 영재학교 준비반 12명 중 꼴찌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좋아져서 1,2등을 다투게 됐다.

(징그러운 그놈의 1등 다툼...ㅠㅠㅠ)

그렇게 10개월 정도 준비하고는 영재학교에 지원했다.

(영재학교는 전국에 8개가 있다. 부산에 있는 한국과학영재학교만 미래창조과학부 관할이고 나머지 서울, 경기, 대전, 대구, 광주, 세종, 인천 이렇게 7개는 교육부 관할이다. 예전에는 시험날짜가 학교마다 각각 달랐지만 아이가 시험 볼 당시에는 서류 지원은 제한이 없었지만 시험 응시일은 모두 동일한 날짜라서 1개 학교만 선택해야 했다. 전국에 20개 있는 과학고등학교는 광역시, 도 기준으로 거주지에 있는 학교만 지원이 가능하지만 영재학교는 전국 8개 학교 어디나 지원이 가능하다) 


1차 서류 심사 합격을 거쳐 2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3차 시험을 치렀다.

4월에 서류 접수하고 5월과 6월에 필기시험을 거친 영재학교 시험은 7월 하순이 되어서 최종결과가 나왔다.

"합격"

우리 셋 다 울었다.

각자 다른 장소에서 합격을 확인하고 서로 같은 소회로 눈물이 났다.

10개월 동안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려 오고 한 시간이 생각나서,

학원에서 밤늦게 돌아오는 아이의 휘청이던 걸음이 떠올라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던 학원 상담실장의 차가운 말투와 그걸 이겨 낸 아이가 기특해서 눈물이 났다.

당시 아이가 합격한 영재학교는 그 잘난 S대에 50% 안팎의 합격율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수준의 대학교 합격은 가능하겠다는 안도감이 또한 눈물샘을 건드렸을 게다.

(대체 대학 간판은 왜 이리 중요한 걸까?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선진국이라고 굳이 구분 지어진 나라에서도 출신 대학이 역시 중요한데 사회에 진출할 때 좋은 자리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그렇겠지? 

그런데 지나고 보니, 어느 정도 살아보니, 그런 자리가 행복과 직결되는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리석은 생각이겠지?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건 첫째, 내가 살아온 자리와 지금까지 만들어 낸 부의 크기가 보잘것없어서, 높은 분들과 부자들의 세상을 경험하지 못해서 행복의 필수조건이네 아니네... 하는 거라 편협하다는 거고, 둘째 각자의 삶과 생각을 모르면서 어설피 행복하네 마네 재단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라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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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학교 도전을 막 시작했을 초기에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해보려고 수학 학습책을 사서 집에서 혼자 공부했는데, 그때 아이의 고충은 말할 수 없었다.

난이도가 최상인 문제집을 사서 풀고 있으니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진도가 더디니 아이의 초조함은 점점 심해져서 연필을 문제집에 콱 내리찍고 종이를 찢는 식으로 스트레스를 분출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그럴 거라면 하지 마'라고 화도 내곤 했다.

그 당시 우연히 KBS 라디오의 어느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다.

학습 장애가 있거나, 공부에 관심이 있는 아이의 신청을 받아서 서너 명의 전문가와 상담하며 솔루션을 제시해 주는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는데 여러 번의 사연을 신청한 끝에 연락이 와서 아이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다. 영재학교에 가고 싶은데 어찌하면 되겠느냐며 대담을 진행했는데 사실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이 시험을 대신 봐주는 것도 아니고 아이의 현 생태를 진단한다고 해도 잠깐의 대화로 십수 년에 걸친 아이의 삶에서 비롯된 성향을 어찌 알 것이며, 그걸 안다고 해도 직접 경험하기 전에야 어떤 솔루션이 아이에게 맞을 것인가. 그래도 당시 학습에 대한 아이의 스트레스가 정상을 벗어난 듯해서 그 프로그램에 나온 전문의를 찾아가서 1시간에 25만 원의 비용을 들여서 상담도 했다. 다음에 또 갈까 해서 예약을 하려 했더니 아이가 하지 말란다. 

('전 생애를 들여다보지 않고 누군가를 이해할 수는 없다.'는 올리버 색스의 말이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잣대가 개개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린 학원에 보내면 다 성적이 오르고 좋은 고등학교에 가면 좋은 대학이 보장되고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그래서 내 아이가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때까지는 행복을 유보하자고 한다. 아이에게도, 부모 자신에게도... 

그때가 올지 모르고, 또 그때가 언제일지도 모르면서... 

'행복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이고, 모든 행위와 선택의 궁극적 목표'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틀렸다. 행복은 삶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이라는 서은국 교수의 말이 맞다. 어찌 될지 모르는 앞날을 위해 유보되거나 참고 버려야 할 행복이 아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우리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오로지 지금 뿐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영재학교에 합격하고, S대에 합격해도 기쁨은 그 순간이다. 다시 거기서의 경쟁과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도 아이는 노력한 결과가 있었다. 그런데 영재학교 준비반에 있던 12명의 학생 중 합격한 아이는 1명뿐이었다. 실패할 거 생각하고 시도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가 원하고 부모가 동의했을 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을 때 더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게다가 어떤 삶이 좋은지 나쁜지 그 누가 알 것이며, 우리 앞에 어떤 삶이 놓여져 있는지 그 누가 알 것인가? 지금의 나 역시 내가 바란 모습이 아니고 살다 보니 여기에 이르렀는데 어떤 선택이 좋고 나쁘겠는가. 이 모두가 어쭙잖고 건방진 말이라 really sorry.)  


어쨌든 그 과정을 겪고 난 지금 드는 생각은 전문가의 진단과 해법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우리 아이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답은 타인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이고 스스로 찾은 답은 '지루하지만 끝없는 반복'(발레리나 강수진)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영재학교에 입학했다. 다른 난관이 켜켜이 쌓여 있을 영재학교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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