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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Jan 26. 2020

이런 모임이 있다면 어떨까

일상과 삶에 도움이 되는 실존독서

내가 만들고 싶은 모임은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웠다. 독서모임? 심리학 공부? 글쓰기? 이것저것 다 붙일 수 있었지만, 왠지 진부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좀 더 있어 보이고 싶었다. 인간은 원래 자기 것을 특별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중고거래가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고 특별한 티를 내며 길게 이야기하자니, 거부감을 유발하고 심플함과도 멀어지는 것 같아 달갑지 않았다. 일단 심리학 독서모임 '마음담론'으로 결정하고 모임을 시작했다. 심리 공부를 할 때 심각한 사례를 들으면 나는 조금 힘들어하는 학생이었다. 자신의 고통조차 합리화하는 나로서는 내담자의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어 올 때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했다. 정신분석, 인간중심, 인지행동 등 각종 치료법이 난무했지만 이 당황함을 해결하기에는 뭔가 조금씩 아쉬웠다. 그러다 실존치료를 만났다.



실존치료는 구체적인 치료기법을 제시하기보다 인간의 불안, 절망, 슬픔, 고독, 고립 등의 본질을 다룬다. 이러한 인간 경험을 이해하는 것을 통하여 인간을 도우려 한다. - 교육심리학 용어사전


특정 치료법을 배우고 반대로 그것의 노예가 되는 경우를 경험했다. 공급자의 측면보다는 상대의 입장에서 불안, 절망, 고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지 않을까. 구체적인 치료기법보다는 인간 경험을 이해하는 것을 돕는다는 부분이 맘에 들어 실존치료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치료라는 무거운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꼭 상담센터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거나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때야 비로소 치료를 받아야 할까. 겨울이 오면 독감 예방 접종을 맞듯이 평상시에 경험을 이해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냥 좋지 않을까.


나는 실존독서를 하고 싶었다.





01 정화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학인들도 첫 주 글을 완성하더니 둘째 주부터는 본격적인 개방을 시작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경험은 감정의 정화를 유도한다고 했다. 연구에 의하면 정화는 대체로 모임의 초기보다는 후기에 시작되는데 나는 글쓰기로 이 부분을 조금 앞 당기고 싶었다.


감정표현은 희망이나 개인적 효능감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어빈 얄롬


보다 풍부한 감정표현을 기반으로 한 정화는 모임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02 자기이해


정화는 자기이해와 연결된다. 전에는 인지하지 못했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돌아보는 순간이 온다. 또한 표현 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족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현재의 행동과 전제로 연결할 수 있다. 누가 돕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신을 돕는 것이다.


자기이해가 변화를 촉진시키는 한 가지 방식은 자신에 대해 인식하고, 통합하고, 자유로운 표현을 하는 데 있다. - 어빈 얄롬


지난 수요일은 '오마담(오프라인 마음 담론)' 모임이 있었다. 어느 학인의 말에 자세히 말은 꺼내지 못했지만, 어머니와의 옛 추억이 떠올랐다.





03 보편성


모임에서 다른 학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라,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어?', '나랑 똑같네.' 라며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지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모임을 하고 나면 당일 아무 말도 안 하던 참여자가 '오늘 정말 좋았습니다.'라는 피드백을 남길 때가 있다. 아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모임 초기에 나만 이렇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의 느낌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은 상당한 위안이 된다. - 어빈 얄롬


보편성은 그 자체로 이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 듣고만 있어도 파워풀하다.





04 벤치마킹


아이를 낳고 보면 사람이 얼마나 모방을 잘하는지 실감하게 된다. 성인이 되면 조금 달라지기도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는 분들 중에는 항상 모방, 즉 벤치마킹의 천재들이 많다. 모임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다른 학인들의 경험이 궁금해지고 따라 하고 싶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다른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난처한 일을 해서 그것에서 이득을 얻는 것을 관찰한 경험이 똑같은 일을 해 보게끔 도왔다. - 어빈 얄롬


정화 - 자기이해 - 벤치마킹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선순환의 흐름이다.





05 상호작용


얼굴에 큰 점이 있는 나는 어릴 때 놀림을 많이 받았다. 지금으로 보면 왕따까지는 아니었겠지만(확신은 없다;;), 점돌이, 점박이.. 웬만한 '점'이 들어간 단어로 만들어진 별명은 초등학교 내내 나의 것이었다. 조롱과 놀림에 대범하게 대처할 정도의 내공이 없었던 초등학생은 위축된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생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도 숫기가 없고 사람들을 만나도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었다.


고참 학인들은 매우 세련된 사회적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 어빈 얄롬


남자에서 아빠가 된 뒤로 모임을 꽤 많이 했다. 어떻게 보면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배울 곳을 찾아다녔다고 봐야 될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편해졌다. 





나코리님! 치킨에 원한 있어요? 치맥을 위해 모임 하는 것 같아!


나는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를 지지하는 편이다. 또한 그 행복이 이 좋은 사람들의 지인에게도 전염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돌고 돌아 내게 또는 나의 아이들에게 돌아올 것이라 확신한다.


당분간 모임과 치맥의 조합을 계속해 볼 생각이다.




https://bit.ly/36stC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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