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를 왜 흑백영화로 찍었을까
영화를 보다 보면 <극한직업>처럼 '와~ 재미있네'하고 마음껏 웃는 영화가 있는 반면에, 끝나고도 아무 말하지 못하는 여운을 남기는 영화가 있습니다. <자산어보>는 후자에 가까운 영화더군요. '목민심서'로 유명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기록, 습관, 독서 등 자기 계발 분야에서 이미 널리 알려지고 인용되는 학자입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서적들에 나오는 글을 읽다가도 '이 이야기는 이미 다산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영화 <자산어보>는 다산 선생의 형, 정약전 선생이 불후의 명작 <자산어보>를 저술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정약전 선생의 인물상과 그의 제자 장창대와의 케미, 그리고 정약용 선생과의 우애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한, 성리학이라는 기존의 가치관과 새로운 지식 서학 사이에서 갈등하는 스승과 제자의 모습에서는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 기존의 가치관을 무차별적으로 주입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왜곡되는 사회 현상 등 현대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제시합니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영화 대사로 슬그머니 전해볼게요. ^^
벼슬한 선비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버티는 것이야.
정조가 정약전에게 일러주는 이 팁은 후에 <자산어보>를 남기게 하는 결과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로 보면 벼슬은 어쩌면 회사생활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그럼 정조의 지혜를 이렇게 바꿔볼 수 있겠군요. '회사원에게 중요한 덕목은 버티는 것이다.'
주자의 힘은 참 세구나.
마침 영화를 본 다음날 아침, 큰 아이는 자신의 방에 '아침 볕이 들어와 얼굴이 까맣게 된다.'라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반대로 벽 쪽으로 머리를 하면 되지 않느냐.'라는 저의 말에 아이는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아빠가 어릴 적에 머리는 남쪽이나 동쪽으로 하고 자야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이유는 뭐야?'
임금을 부정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스승에게 제자는 매번 사서삼경에 나오는 도리를 이야기하며 스승을 걱정합니다. 그런 제자의 모습을 보고 정약전 선생은 주자의 강력한 힘을 한탄하지요. 어떤 세계관과 가치관이 사회를 지배하면 '당연한 것들'이 생겨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 힘에 지배되고, 어떤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위로는 임금을 속일 수 없고
아래로는 형제를 증거로 삼을 수 없으니
나는 죽음밖에는 택할 것이 없소.
어떻게 학문을 쌓으면 이런 문장을 뱉을 수 있을까요.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유연한 사고가 부러우면서도 이렇게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을 보여주는 말을 들을 때면 언제나 그 힘이 느껴집니다.
죽어 욕된 것은 만회할 길이 없지만,
살아 욕된 것은 살아 만회할 길이 있네.
흔히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두 형제가 양성하는 제자들과 그들이 남긴 저술을 생각해보면 참 공감 가는 말입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현재가 항상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스럽게 한 번 더 생각해 봅니다.
물고기를 알아야 물고기를 잡응께요.
홍어 댕기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댕기는 길은 가오리가 앙께요.
기업의 상품, 서비스, 정부 정책까지 필요한 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잘 압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그곳이 아니라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획되고, 그곳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해서 이루어집니다.
정약전 선생은 '너는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라고 제자에게 묻기라도 합니다. 현실에서는 책에서 조금 읽고 '그건 내가 다 알지.'라며 묻지도 않습니다. 10년 전의 경험을 가지고 '그건 내가 다 해봤지.' 하는 경우도 있지요.
내가 아는 지식이랑 너의 물고기 지식이랑 바꾸자.
흔히 사람이 바뀌는 방법 3가지로 시간, 장소,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머무는 장소와 함께하는 사람을 바꾸고 시간을 달리 사용하는 것이지요. 유배지로 떠난 정약전 선생은 타의에 의해 장소와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물고기 전문가를 찾아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합니다. '언제 나를 다시 불러주려나'라는 생각으로 술 한잔 하며 세월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어떤 장소에서든 호기심을 가지고 사람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선상님께 어보는 뭡니까?
질문이 참 좋습니다. 제자는 애써 어보를 완성하려고 하는 정약전 선생의 의도를 궁금해합니다. 최근 여러분이 가장 애쓰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씨만 중허고
밭 귀한 줄은 모르는 거 말이여라.
씨 뿌리는 애비만 중하고
배 아파가꼬 낳고 기른 애미는 뒷전인디.
감초 역할을 하는 가거댁의 뼈 있는 말은 벨 훅스의 글과도 연결됩니다.
'사실 나는 가부장제에 대해 남자들 개개인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대체로 자기도 모르는 새 그것을 지속시킨다.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며칠 전 어버이날에도 집안 어르신께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자가 공무원이면 최고지.'
도대체 무엇에서 최고이며, 어떻게 최고가 된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행여나 저희 아이들이 들을까 봐 빨리 주제를 바꿨습니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이 대사는 최근에 일독한 <담론>의 문장과 연결됩니다.
'자기 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됩니다.'
학문도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맞은편에 있는 상대를 생각하면 그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습니다. 나의 이론과는 다른 상대의 이론, 상대의 생각, 기술 등을 이해하면서 내가 더 깊어집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문장을 이 영화의 Top Pick으로 선택하고 싶습니다.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이 다 묻어도 마다않는
자산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남았던 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남긴 이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무엇인가 범접하기 어렵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위치도 좋지만, 누구나 가깝게 언제나 다가올 수 있으며 다른 이의 시선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일상을 누리는 삶도 좋지 않을까요. 저는 어떤 삶을 추구하고 있는지 다시 돌아봅니다.
처음에는 흑백 화면으로 연출되어 수묵화 느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당시의 모습을 그림처럼 담으려는 의도였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유배지에서도 호기심과 지적 생산을 멈추지 않았던, 흑산을 자산(玆山)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정약전 선생의 뜻을 담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자칫 좌절하면서 좋은 날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도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저술하신 신영복 선생님과도 많이 닮아 보였습니다.
아우인 다산 선생과의 애틋한 우애와 서로 학문적으로 논하고 발전하는 지기(知己)가 되어주는 모습도 참 보기 좋고 부러웠답니다. 오래간만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좋은 영화를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