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한발자국씩 앞으로, 그림이맘 이야기
그날 밤. 그림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오늘 하루를 되새겨본다.
부글 부글 끓는 내 마음때문에 차마 들여다보지 못했던 아이의 눈으로 치료시간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니 그때서야 볼 수 있었다.
어른인 나라도 답답할 것 같은 새하얀 벽에 한 평 남짓한 공간.
내가 아이였더라도 소리를 지르며 당장에 거기서 뛰쳐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그때서야 아이를 이해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밝고 따뜻한 공간이었더라면 아이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텐데...’
그 후에도 그림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림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림이가 환경에 굉장히 민감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때부터 난 아이가 머물게 될 공간을 한 번 더 살피며 공간과 장소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첫 치료센터 등록을 시작으로
오전에는 그림이가 일반 유치원을 들어가기 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조기교실을 다녔고,
오후에는 언어치료, 작업치료, 음악치료 등..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여러 치료실을 돌아 다녔다.
또 치료마다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다니느라 저녁이 다 되어서야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올 때면 나는 물에 젖은 스펀지가 되어있었고, 힘이 넘쳐 이곳저곳 오르내리고 돌아다녀 따라다니기 힘들었던 그림이마저도 내 손을 잡고 가만히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아이와 나의 시간표는 멈추지 않는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우리의 저녁 스케줄을 시작한다.
나의 스케줄 용어로는 목욕시간이고 그림이의 시간명칭은 물놀이 시간일 것이다.
이 시간도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쉐이빙크림 놀이로 오감발달놀이를 하기도 하고,
아이의 손기능을 조금 더 좋게 해주기 위해 손으로 조절하는 물놀이 장난감들을 잔뜩 사서 놀기도 하고, 물풍선 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 그림이는 내 마음에 응답해주는 듯
너무 좋아서 얼굴에 함박웃음을 달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온 몸에 크림을 묻히고 바닥에 누워 뒹굴거리기도 하고,
욕조에서 물을 밖으로 뿌리며 마음껏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옆엔 아이의 물장구를 맞으며 환하게 웃는 내가 있다.
아이와 나,
우리 둘에게 그 시간은 유일하게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이의 소리와 행동에 함께 반응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바쁘게 하루, 일주일, 한달.. 3개월, 6개월을 보냈다.
열심히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만큼의 큰 변화가 없었다.
시간과 노력에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이 내 머리에 곤두박질쳤다.
만삭이 된 지금까지 이렇게 열심히 오전, 오후로 치료실을 돌았고,
저녁시간 하나도 허투루 쓴 적이 없는데...
아이에게 변화가 없었다..
곧 둘째도 나오는데...
그렇게 초조하게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어렸을 적 ‘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남들보다 일찍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웅변학원, 무용학원, 영어학원.. 그 당시 있었던 학원을 모조리 다니게 했다.
그것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 시절의 나는 다짐했다.
‘내가 커서 아이를 낳으면 내 아이에게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행복하게 해줘야지’
그런데 내가 환경과 공간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그림이에게 시간을 줄 틈조차 없이 학원 돌려막기와 다름없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이 가져오는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치료비로 쓰고 있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내 기준의 명목으로.